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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받을 복지 모델을 만들어갑니다"

동화작가 박은자가 만난 사람-조양순

2020년 01월 22일(수) 17:52 [온양신문]

 

↑↑ ▲조양순 원장

ⓒ 온양신문

L노인이 처음 왔을 때, 노인은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어깨는 30도로 숙이고, 두 손을 앞에 가지런히 모은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무엇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L노인을 모시고 온 L의 여동생이 말했다.

“오빠가 낮이나 밤이나 저 자세로 앉아만 있어요.”
여동생의 말대로 L노인의 자세는 좀체로 풀어지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모르고 있어서 시간을 맞춰 화장실에 모시고 가야 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갈 무렵 노인의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스스로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섰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누군가 질문을 하면 대답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은 먼저 말을 건다. 그렇다면 L노인은 한 달 동안 왜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은 것일까?

잠시 조양순 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수년간 혼자 지내시면서 말하는 것을 잃어버렸던 겁니다. 움직이는 것도 잊어 버렸고, 혼자 있으시면서 낮에는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 밤에는 주무시지 않았을 것이고요. 우울증과 치매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오빠를 모시고 있던 동생 분이 더는 감당할 수가 없어서 우리집주간보호센터로 모시고 왔는데요. 지금 L어르신은 밤에 쿨쿨 단잠을 주무신다고 해요. 언제 내가 말을 안했느냐 싶을 정도로 말씀도 너무 잘 하세요. L어르신 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치매증상이 있으신 어르신들이 우울증이 해소되고, 치매증상도 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만큼 우리집주간보호센터가 즐거운 곳이겠죠? 우리 어르신들이 제 시간에 충분한 영양이 담긴 식사를 하시고, 또 운동도 하시고, 종일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되니까 머리와 손을 사용하게 되면서 저절로 건강을 찾게 된 거지요. 그래서 가족 분들의 반응이 참 좋습니다. 센타에서 저녁식사를 하신 후에 양치질은 물론 다 씻고 가시니 집에 가서는 그저 편히 주무시기만 하면 되는데요. 하루 종일 공부 아닌 공부를 하셨으니 얼마나 피곤하시겠어요? 눕자마자 아침까지 쿨쿨 단잠을 주무시는 거지요. 실제로 어떤 분은 주간보호센터가 쉬는 일요일에는 늦잠까지 주무신다고 해요. 일주일 내내 학교 다니느라 피곤하셨다고 말입니다.”

조양순 원장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유치원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조양순 원장이 들려주는 어르신들 이야기는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 ▲우리집주산보호센터

ⓒ 온양신문

 

우리집주간보호센타에는 일곱 명의 직원들이 힘을 다해서 어르신들을 섬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밝지가 않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수업에 들어가기 전 뭘 교육해야 하고, 그 교육이 왜 필요한지를 알지만 요양보호사들은 그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사소한 것 하나라도 그 교육이 왜 필요한지를 알고 교육하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겠는가?

조양순 원장은 어르신들과 종이접기 하나를 하더라도 선생님들과 미리 종이접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개구리를 접으면서 노인들과 나눌 이야기를 미리 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종이접기를 하면서도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한다. 경칩을 이야기 하고, 봄을 기대하기도 하고, 봄날에 보았던 꽃들을 불러오는가 하면, 봄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 산에 진달래 피듯 이야기가 쏟아진다. 어렸을 적 개구리를 잡아서 뒷다리를 빼어 구워 먹었던 추억까지 소환시킨다.

어르신들이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집주간보호센터다.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는 선생님들 얼굴에는 아주 밝은 기운이 흐른다. 피곤하거나 지친 기색이 없다. 선생님들은 주무시는 어르신들을 자주 들여다본다. 주무시는 시간을 체크해서 오래 주무시는 일이 없도록 한다.

또한 화장실에 가는 시간을 체크하고 어르신들이 오줌을 싸는 일이 없도록 챙긴다. 결코 귀찮거나 냄새가 나기 때문에 챙기는 것이 아니다. 오줌을 싼 어르신이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말을 부드럽고 예쁘게 하는 것보다 비언어적인 요소인 얼굴 표정이라든가 손짓 하나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 조양순 원장,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 ▲특별한 웨딩

ⓒ 온양신문

우리집주간보호센터는 개원한지 1년도 채 안 된 곳이다. 그러나 어르신들께는 기쁨의 시간들이 참 많았다. 웨딩드레스를 입어보지 못하신 어르신들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혀드리고, 화장까지 곱게 시켜드리고 함께 사진을 찍었던 날, 할머니들은 마치 어린 신부가 된 듯 환하게 웃으셨다.

대부분 고단한 삶을 살아오셨기에 성탄 선물을 받아 본 적도 없고, 성탄파티도 한 적이 없다. 그런 어르신들이었기에 성탄절은 어르신들께 축제였고, 최고의 날이었다. 기쁨을 날마다 선물 받는 곳, 축제같은 날들이 날마다 이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집주간보호센타이다.

조양순 원장은 날마다 생각한다. 우리집주간보호센터 어르신들은 아파서 오신 분들이라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셨다면 오지 않으셨을 분들이라는 생각 때문에 늘 선생님들에게 당부한다.

“그냥 ‘네 네’ 건성으로 대답해서는 안됩니다. 어르신들은 사랑받고 싶고 관심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을 어르신들이 먼저 아십니다. 우리는 절대로 어르신들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집주간보호센터에서는 날마다 인지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일생생활동과 레크레이션은 이틀에 한 번씩 진행되고,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도 매일 갖는다.

↑↑ ▲김장 담그기

ⓒ 온양신문

요리활동은 2주에 한 번씩 하는데, 놀라지 마시라. 어르신들은 처음 먹어보는 유부초밥이나 파스타, 혹은 우동 같은 것을 아주 좋아하신다.

주 2회 진행되는 그리기 활동에도 어르신들은 상당한 흥미를 보이며 섬세한 부분까지 아주 열심히 색칠을 하신다. 조양순 원장은 어르신들이 선택한 색연필을 보고도 어르신의 지금 마음이 어떠한지를 안다.

↑↑ ▲1.3세대 통합 프로그램

ⓒ 온양신문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지만 자원봉사자들도 끊임없이 온다.
1365봉사자들, 어르신들은 손주 같은 아이들이 옆에 앉은 것만으로도 즐거워하신다. 어린 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의 손톱과 발톱을 깎느라 손을 잡아드리면 어르신들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해진다.

어르신들은 메니큐어를 바르는 일도 무척 좋아하시는데, 메니큐어를 바르는 동안 어르신들의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가끔씩 손주들 이야기도 꺼내 놓으신다. 음악하는 단체의 방문도 어르신들이 무척 좋아한다. 악기 연주는 물론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함께 춤을 춘다.

2주에 한 번 찾아오는 실버 노래 강사도 어르신들을 매우 즐겁게 만들어 준다.

↑↑ ▲동화작가의 스토리텔링

ⓒ 온양신문

매 주 수요일마다 찾아와서 조용조용 그림동화집을 읽어주는 동화작가도 있다. 귀를 쫑긋하고 열심히 듣는 어르신들은 공부 잘하고 순한 학생들 같다.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조용히 다가와서 말했다.
“나한테 한글 좀 가르쳐 줄 수 있어유?”
“그럼요. 지금 당장 시작 할까유?”
“내 이름만 쓸 수 있게 가르쳐 줘유.”
“왜 어르신 이름만 써유? 자녀들 이름도 쓸 줄 알아야지유.”
“그럼 얼마나 좋겄어유?”

조양순 원장이 말한다.
“어르신이 한글을 배운다고 하자 따님이 크레파스와 필통, 연필, 연필깎이까지 사다 드렸지요. 어르신으로서는 글씨를 쓰는 일을 매우 힘들어 하셨는데요. 지금은 한글을 읽고 쓰시게 되었답니다. 어르신이 젊은 날 면사무소에 갔다가 싸인을 하라고 해서 ‘잠깐만요’ 라고 말하고는 그냥 도망쳐 왔대요. 한글을 몰라서 말입니다. 한글을 모른다는 것이 평생 부끄러운 짐이었던 거지요.”

조양순 원장의 얼굴에 웃음이 지나간다. 틀림없이 한글을 배우던 어르신의 어여쁜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으리라.

조양순 원장의 말을 더 들어보자.
“복지라는 것, 또 어르신을 섬긴다는 것은 밥 드릴 시간에 밥을 드리고, 씻을 시간에 씻겨드리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요. 대화가 없는 곳에는 진정한 복지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어르신들이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좋아질 수 있 있다고 믿는 조양순 원장은 우리집주간보호센터 운영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어르신들이 즐거운 곳을 만들어가느라 애를 쓰는 조양순 원장, 그녀가 남긴 한 마디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저는 지금, 앞으로 제가 받을 복지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 ▲칠교놀이

ⓒ 온양신문


↑↑ ▲힘외 체조

ⓒ 온양신문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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