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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메아리 리 한 구 온양신문대표이사 우이독경과 마이동풍 우리나라 속담에 ‘쇠 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란 말도 같은 맥락이다. 아무리 상대를 위하여 좋은 말, 좋은 충고를 해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 사용하는 말이다. 사기(史記)를 보면 ‘마이동풍’이란 말은 이백(이태백)의 시(詩)에서 나왔다고 한다. “추운 밤 홀로 잔을 드는 왕십이(王十二)의 심사(心思)에 답하노라”는 시구(詩句)속에 있는 말이라고 한다. 이백의 친구 왕십이는 불우한 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백은 술을 들고 만고의 시름을 잊어 버리자고 충고의 시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그 글중에 “지금은 투계(鬪鷄=닭싸움)의 기술이 능한 사람이 군왕의 총애를 받는 시대라네. 그들이 두 팔을 내젓고 거리를 활보하며 돌아다니고 곁에는 오랑캐의 침공에 서푼어치의 공을 세웠다고 충신인양 의기양양하여 돌아다니는 자들의 세상일세. 그렇다고 자네나 내가 그런 사람들을 흉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북창(北窓)에 기대어 시를 짓고 노래를 지어보세. 우리의 글이 아무리 좋아도 지금 세상에는 한 잔의 냉수만큼도 여겨주지 않는 세상일세..”라고 했다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현실과 유사한 점이 있다. 정계(政界)에 머물러 있거나 정계에 “뜻”을 둔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기자랑과 자기과시에 광분하고 있으며 쥐꼬리만큼의 업적도 최대한 과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애국자 아닌 사람이 없으며 애향지사(愛鄕志士)가 아닌 사람이 없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그대로라면 얼마나 좋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애국자는 묵묵히 자기 직업에 충실하는 사람이고 그사람이야 말로 진짜 애국자다. 이백이나 왕십이가 살았던 문인(文人)을 알아주지 않는 시대와 같이 지금도 학자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서 유사(類似)한 학자들은 자꾸만 학자의 길을 외면하고 정치쪽으로 슬그머니 기울어지고 있다. 그래야 입신양명(立身揚名)과 치부(致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과거사가 또한 그러한 풍조(風潮)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려천박(智慮淺薄)한 사람들은 자연히 그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진짜 학자들은 욕심에서 해탈(解脫)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고난(苦難)을 극복(克服)하면서 자기의 길을 가고 있으니 얼마나 장한 일인가? 천지공도(天地公道)에 준(準)한 인간공도(人間共道)에 충실(充實)하면서 새(鳥) 우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비(雨)오는 소리, 바람부는 소리, 춘하추동 계절변화에 적당히 적응하여 그림 그리고 글짓고 노래지어 심지상통(心志相通)한 지우(知友)와 교신(交信)하면서 시국관을 나름대로 표현하니 열린 “귀”는 깨닫고 둔한 “귀”는 마이동풍이라 경투만리모선각(鏡投萬里眸先覺)이란 말도 있다. 즉 “거울 빛을 만리 밖에 던지니 눈딱지가 먼저 깨닫는다”는 말이다. 지각 있는 사람들은 말로 듣고 글을 보아 알아차리건만 무가내하(無可奈何)라 할 길 없다. 정신 배 고픈 것을 모르고 육신 배 고픈 것만을 아는 세상 인심이다. 욕심이 지나치면 귀와 눈이 어두어진다. 그래서 진정한 충고를 외면하게 된다. 5·31선거에 출마했던 사람들도 이랬다 저랬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바보스러운 지경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다시 말하자면 ‘마이동풍’이요 ‘우이독경’이라 하겠다. 일부 시인이나 학자들은 시상(詩想)에 관한 사색(思索)으로 비정상적(非正常的) 세태(世態)의 흐름을 비판하고 또는 단념(斷念)하고자 노력하니 극락이 별도 천지에 있는게 아니고 자기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진정한 생활을 하는 그분들이야 말로 진정한 생활이 아닐까? 한다. 욕심을 버리면 매사가 밝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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