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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메아리 리 한 구 온양신문대표이사 대장부 ‘대장부’하면 일반적으로 사내다운 사나이를 지칭한다. 즉 남자로서의 기상이 넘치는 사내가 대장부요 여자는 여장부다. 여자쪽으로 본다면 여걸(女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편으로 노래가사에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가 이만하면 만족하지”란 노래도 있다. 이것으로 보아 대장부는 분명히 양분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맹자(孟子)가 대장부에 대한 정의를 말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그 점을 알아야 한다. 맹자 역시 공자와 마찬가지로 천하를 떠돌며 자신을 써 줄 사람을 찾아 다녔다 한다. 천하를 떠돌던 그가 희망을 걸 수 있는 인물로 제나라 선왕을 생각했다 한다. 맹자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선왕은 그를 객경(客卿)이란 벼슬자리에 임명했다. 이 자리는 일년 봉록이 10만석에 해당되는 자리였다. 맹자가 봉록을 받지 않고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킨 것은 ‘혹시나 선왕이 나라 일을 맡겨 줄까’ 기다린 것이다. “걸주(桀紂)가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은 까닭이다. 그 백성을 잃은 것은 민심을 잃은 까닭이다. 그 백성(국민)을 얻으면 곧 천하를 얻을 수 있다. 국민이 갖고 싶어하는 것을 베푸는 것이다” 즉 시정방침을 요란스럽게 늘어만 놓고 시행하지 못하는 공약(空約)정치를 하면 않된다. 공손연이란 사람은 유명한 세객(說客)이다. 참으로 말을 잘한다. 장의란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천하를 한손에 쥐고 흔들었던 변설가들에 대해 맹자의 관점은 달랐다. “그들이 어찌 대장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여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대는 예(禮)를 배우지 않았는가? 대장부는 대저(大抵) 천하의 넓은 집(宇宙)에서 살며 천하의 큰 길(天道)에 섰(立)다. 천하의 큰 덕(德)을, 천덕(天德)을 행하여 이루어지면 백성(국민)과 더불어 즐기고,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 즐긴다. 부귀를 가지고 내 마음을 그릇(誤)된 길로 유도하지 못하며 위세와 폭력으로도 내마음을 꺾지 못한다. 아무리 가난하고 천한 자리에 있더라도 내마음을 옮겨가지 않는 것이 바로 대장부의 마음 가짐이며 처신이다” 황석공(黃石公)=(장양(張良)의 스승)의 소서(小書)에서 보면 ①명성쇠지원(明盛衰之源)하고 ②통성패지단(通成敗之端)하고 ③심치란지기(審治亂之機)하고 ④지거취지절(知去就之節)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관한 뜻을 다시 풀어보면 ①첫째는 성쇠불상(盛衰不常)이고 ②둘째가 성패유수(成敗有數) ③셋째가 치란파측(治亂 測)이고 ④넷째가 거취유의(去就有義)다. 이것을 알기 쉽게 다시 풀이하면 ①인간사와 자연은 성(盛)하고 쇠(衰)하는 것이 늘 떳떳하지 않고 일성일쇠(一盛一衰)하는 이치가 있으며 ②이루고(成) 패(敗)하는 것은 운수(運數)가 있기 때문에 사람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셋째로 치란파측(治亂 測)은 정치를 함에 있어 아무리 잘하고자 해도 성쇠불상(盛衰不常)과 성패유수(成敗有數)가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으며, 넷째로 거취유의(去就有義), 즉 벼슬자리에 나가고 그자리를 물러날 때는 반드시 의(義)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진퇴(進退)에는 상당한 명분과 의(義)가 있어야 한다. 명분없는 진퇴는 어리석은 행위 뿐일 것이다. 그야말로 대장부는 천하의 넓은 집(宇宙)에서 살며 천하의 큰 일(生生眞理)에 뜻을 세우고 천하의 큰 덕(德)을 행하여 이루어지면 백성(國民)과 더불어 즐기고 뜻을 얻지 못하면 산전(山田)을 일구어 조밥을 먹을 지언정 자기지조(志操)를 지키다가 여생을 다하는 것이 대장부의 길이다. 오직 어진자는 성패유수하고 성쇠불상하고 치판파측하고 거취유의하는 이치를 밝게 알고 있으므로 구차스럽게 옳지 않은 시대에 나가 팔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하지?”란 노래가사가 있듯이 무심코 불러보는 노래지만 그 노래가사 속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한다. 염세자(厭世者)의 넋두리가 아니다. 근세사(近世史)에 있어 남북을 통한 우리나라에서 대장부 다운 대장부가 몇사람이나 있는지, 전세계에서 대장부 다운 사람이 몇사람이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마도 잡탕들이 우굴대고 있는 듯 하여 심회(心懷)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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