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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석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마음의 빚 - 이성렬 이야기

2019년 09월 11일(수) 14:55 [온양신문]

 

↑↑ 천경석(아산향토연구회)

ⓒ 온양신문

추석 명절을 바로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게 되는 일이 ‘마음의 빚’이다. 그동안 보듬어주셨던 지역의 어르신들이나 선배님들에 대한 마음의 빚. 보답하기는커녕 감사의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건만 그중에는 이미 다시는 뵙지 못하게 되신 분들로 있다.

많이 부족함에도 믿어주고 지지해줬으며 크게 잘못했음에도 용서하고 받아들여 줬던 학생들, 후배나 동료들에 대한 빚. 돌이켜보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기도 하다.

그중에서 최근 들어 좀 더 무겁게 느껴지는 마음의 빚은 여러 지역 활동가들에 대한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질 것이고, 좋아져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기 좋은 아산’을 만들기 위해 박봉과 과로, 불리하고 힘든 여건 속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애쓰고 있는 지역 활동가들에게 특히 부채 의식을 갖게 된다. 굳이 덧붙이자면, 그분들 대부분은 아산 출신이 아니고, 알아주거나 고마워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더욱 그렇다. 어떻게 갚아야 할까.

전혀 다른 각도에서 혼자 마음의 빚을 느끼고 있는 역사 인물이 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주요 이유가 되는 분, 송악 외암마을 출신의 퇴암 이성렬(李聖烈)이라는 분이다.

10여 년 전에 온양문화원에서 『아산 인물록』이라는 자료집을 엮어 아산 지역 역사 인물을 개략적으로나마 정리했던 적이 있다. 그때 아산의 주요 근대인물 편에 들어갔어야 할 이분을 빠뜨렸다.

당시 여러 공식 자료들에 ‘안성 출신’이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관직 이력 외에 아산과 관련된 이야기가 알려진 바도 없었다. 정해진 기간에 끝내야 하는 일이어서 개개인을 별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데다, 여쭙고 확인할 분도 마땅치 않아서 조금 고민하다가 수록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 필자를 아껴주시는 외암마을 출신의 선배님, 이원직 전 순천향대 부총장님에게서 그분이 외암마을 출신이고 실제로 외암마을에서도 살았었다는 말씀을 들었다.

일단 자료에 안성 출신이라고 되어 있어서 제외했다고 변명을 하기는 했지만 순간 잠시 아득했었다.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았다는, 알아드리지 못했다는 죄송함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조선 말기 외암마을에는 비슷한 면이 상당히 많은 두 분이 계셨다. 퇴암 이성렬(李聖烈, 1865~?)과 퇴호 이정렬(李貞烈, 1868~1950)이다. 예안이씨 19세이고, 다소 복잡하지만 두 분 모두 계자(양자)로 갔으며, 양자로 간 집을 기준으로 동 고조 팔촌 간이다.

이성렬은 외암마을 입향조 이사종의 후손이고 외암 이간의 6대손이다. 이정렬은 먼 일가친척이며 보은 외속리면 출신으로 이상규의 계자로 외암리에 왔다. 이성렬의 삼종숙부(9촌)이자 계부인 이상유도 당숙에게 계자로 들어갔지만 두 분의 계부인 이상유와 이상규는 친부(이원집) 기준으로는 형제간이고 어머니 한산이씨가 명성황후의 이모인 점은 같다.

이성렬은 1888년(고종 25) 별시 문과에 급제했고, 이정렬은 1891년(고종 28) 증광 문과에 급제했다. 그 뒤 이성렬은 왕실과 관련된 궁내부와 중앙정부인 의정부의 관직, 그리고 주로 관찰사로 부임했던 지방관 등 다양한 관직을 역임했다.

이정렬은 주로 궁내부의 여러 관직에 있었다. 이성렬은 조선시대 참판에 해당하는 탁지부 협판, 지금의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냈고 경효전 제조와 의정부 참찬, 궁내부 특진관 등을 역임했다.

참고로, 이정렬이 이조참판을 지냈다는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다. 참판 급에 해당하는 궁내부 특진관과 봉상시 제조 등에 제수되었으며, 계부 이상규가 내부 협판으로 증직되었다.

정확한 시점은 불확실한데, 두 분 모두 을사늑약(1905) 이후인 1906년경 관직에서 물러났다. 형님뻘인 이성렬이 조금 이른 시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정렬은 이후 외암마을에 머물면서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자금으로 집(현 “참판댁”)을 새로 짓고 칠은계(七隱契)도 조직하였다. 퇴호 이정렬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독립운동을 후원했다고 하는데 후손의 전언 외에 근거 자료가 아직 확인되지 않아 안타깝다.

이성렬은 을사늑약 직후 최익현으로부터 의병 참여를 종용하는 편지를 받았다. 그때 바로 동참하지는 않았으나 얼마 뒤 바로 관직에서 물러나 경기도 여주에 자리 잡고 홍주의병으로 잘 알려진 민종식(閔宗植) 등을 만나 의병을 준비했다고 한다. 정확한 시점과 왜 여주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데, 이성렬은 이때부터 의병 활동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힘썼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성렬이 살던 집은 지금 외암리 교수댁 자리에 있었다. 이즈음에 자신의 집을 같은 집안이며 성균관 교수를 역임한 이용구에게 급하게 팔아 군자금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생가의 친형님인 이장렬(李璋烈)이 옥천군수를 역임해서 그가 살던 집의 택호를 ‘옥천댁’이라 했는데 지금의 참판댁 바로 아래 붙어 있는 이른바 ‘작은 참판댁’ 자리다. 이 옥천댁도 비슷한 시기에 팔고 가족이 모두 떠났다고 한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의 구체적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나 근거 자료가 확인되지 않아 몹시 아쉽다. 이성렬은 군자금을 전달한 이후 ‘일본군에게 의병 명부를 빼앗겨서 의병 여럿이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 자신의 불찰을 깊이 후회하고 단식으로 자결하였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가 순절한 일시도 알 수 없으며 막연히 1907년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외아들 이용상(李用庠, 1887~?) 등 후손은 참으로 어렵게 살게 되었다. 퇴암 이성렬의 묘는 송악 마곡2리 바누실 뒷산에 있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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