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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환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선장 3.1운동의 순국자, 최병수 열사

2019년 10월 02일(수) 16:07 [(주)온양신문사]

 

↑↑ ▲김일환(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 교수)

ⓒ 온양신문

2019년은 폭압적인 일제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며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타오르는 만세시위에 우리 아산주민들도 적극 동참하였다. 3월 11일 온양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4월 4일 선장만세시위까지 관내 12개면에서 쉼 없이 시위를 이어나갔다.

일제헌병경찰은 3월 31일 염치면 백암리의 봉화시위를 진압할 때부터 총기를 발사하는 강경책을 쓰기 시작했다. 백암리 방화산 산정에서 횃불만세시위를 하던 주민을 향해 실탄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어 4월 2일 학성산에서 횃불시위를 마친 신창면 주민들에 의한 주재소, 면사무소, 신창보통학교 교사(校舍)에 투석한 시위사건 때도 실탄을 발사하였다. 마지막으로 4월 4일 선장면 군덕리 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가 일어났을 때 총격으로 순국하는 사례가 나왔다.

선장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아산지역 3.1운동의 대미를 장식하는 조직적인 시위사건으로 1명이 순국하고, 7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6명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선장장터 만세시위는 그 규모와 내용면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일제의 공식문서에는 주동자로 2년6개월의 실형을 받은 정수길, 서몽조, 임천근, 김천봉, 오상근 등 다섯 분의 재판기록과 태형을 맞은 즉결처분자 110분에 대한 수형자명부가 남아있을 뿐 총격으로 순국한 인물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건의 자세한 진행과정과 내용은 구전으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전해질 뿐이었고 일제의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던 당시에는 순국자를 기리는 행사나 기념물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 ▲최병수 열사의 순국 장소(현 선장파출소) <사진=필자 제공>

ⓒ 온양신문

4.4선장 만세시위에서 순국한 인물이 최병수(崔炳秀) 열사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해방이후였다. 1959년 11월 12일 순국선열유족회가 창립되고 5.16군사쿠데타 이후에는 군사정부가 국가유공자 유가족을 돌보는 군사원호법을 제정하여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순국선열유가족을 돌보는 사업을 진행하자 순국선열유가족들의 신청이 쇄도하였다.

최병수 열사도 맏아들 최희문(崔熙文, 54세) 씨가 나서 부친의 행적을 정리하고 순국선열로 추창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최희문 씨가 1962년 12월 순국선열유족회장 앞으로 순국선열유가족등록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최병수 열사의 행적이 구체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최희문 씨는 부친의 행적을 「투쟁약사(鬪爭略史)」라는 문건으로 정리하며 사건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당시 4.4만세시위의 주동자로 생존해 있던 정수길(丁壽吉, 丁奎熙), 임천근(林千根, 林化喆) 두 분 선생의 인우보증을 받아 최병수 열사의 순국사실이 역사적 사실로 공인되었다.

↑↑ ▲시위를 주도했던 정수길(丁壽吉) 지사<왼쪽>와 김천봉(金千鳳) 지사<오른쪽> <사진=필자 제공>

ⓒ 온양신문

확인된 사건의 진상은 다음과 같다. 1919년 4월 4일 오후3시에 선장면 군덕리 시장에 수백 명의 시위군중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몽둥이와 돌을 들고 가까운 선장 헌병주재소 경내로 압박해 들어갔다.

당시 주재소는 일본인 도가시 슈타로(富樫周太郞) 소장과 조선인 헌병보조원 손갑동(孫甲童), 이기환이 지키고 있었다. 시위대의 위세에 놀란 도가시는 직접 총기를 발사하여 주재소 구내에서 최병수 열사가 순국하였다. 그는 숨이 끊기는 순간까지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한다.

이때 그의 부친 최순(崔淳)선생도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는 일경에서 파악된 110명의 즉결처분자 중에 첫 번째로 온양 헌병분견대로 끌려가 태형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고령으로 과태료 10엔(円)을 내는 벌금형에 처해졌다.

아들의 처참한 죽음을 목도하고도 숨죽이고 어린 손자들을 돌보며 살아야했던 최순 선생은 1923년 11월에 별세하였다. 아들 최병수 열사의 사망으로 호주가 손자 최희문 씨에게 상속되었다. 최병수 열사를 총격한 도가시 슈타로는 이후에도 계속 선장면에 정착해 살며 1939년에 선장면 면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지역유지로 행세하고 있었다.

1960년 4.4만세시위를 기념하는 3.1절 기념행사에서 선장면민들은 최병수 열사의 유가족인 아들 최희문 씨에게 표창을 하였다. 이듬해 1961년 3.1절에는 정수길 선생이 주도하여 ‘고최병수선생추모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본격적인 기념사업을 시작하였고 1963년 국민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최병수 열사의 주검은 순국 후 일제의 반대로 신통리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해방 후에 도고면에 있는 선산으로 이장되었다. 2018년에는 다시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옮겨 영면하고 있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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