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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완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희미한 흔적, 궁밭 이야기

2019년 09월 28일(토) 13:19 [온양신문]

 

ⓒ 온양신문


↑↑ 맹주완

ⓒ 온양신문

1592년 왜군의 침략으로 선조 임금은 궁을 버리고, 백성도 버리고 압록강변의 의주로 도망을 쳤다. 궁을 버리고 도망친 왕은 1250년경에도 있었다. 고려시대 23대 왕을 지냈던 고종이다. 말을 몰아대며 속도전으로 승부수를 띄웠던 몽고군은 위세를 도고에까지 떨쳤다. 도고로 피난 온 왕을 위해 이궁(離宮)이 지어졌고, 지역 사람들은 물론 천안 사람들까지도 왕궁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왕이 인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왕의 호위 군사들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였다. 이때부터 왕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궁밭’은 한동안 도고의 별칭이 되었다. 고령의 어르신들은 지금도 도고를 궁밭이라 부른다.

700여 년 전 고종이 집무를 봤던 궁궐자리에 장항선 선로가 깔리고 도고역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역사 주변으로 상권이 형성되었다. 상권의 중심은 역시 장터였다. 궁밭 장이 서는 날은 송아지가 상품으로 걸리고 씨름판이 만들어질 정도로 힘 꽤나 쓰는 장정들과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얼마 전 지역의 고위인사가 되어 고향으로 부임한 친구가 유년시절의 추억담을 들려주었는데, 그의 얘기는 40여 년 전 궁밭 장에 대한 묘한 향수와 장의 분주한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장날에 동네 형을 따라 다니며 알바를 했는데, 뻥튀기 기계 4대를 하루 종일 돌려서 팔 빠져 죽는 줄 알았네.”

일본인들이 장항선 개설을 서두른 것은 쌀이며 온갖 물자를 수탈하여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해 갈 목적이었다. 수탈한 물자를 임시로 보관하기 위해 많은 역사에 창고가 지어졌는데, 노루지 들녘에서 불어오는 강풍에도 끄떡없는 커다란 미곡 창고가 도고역에 지어졌다. 2007년부터 여객운송이 주목적이 되면서 장항선은 직선화되었고, 옛 도고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지나가지 않게 되었다.

현재 미곡 창고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아 웃음을 만드는 공작소, 코미디홀로 변신했고 ‘괜찮아유~’ 개그맨 최양락 씨가 명예관장으로 위촉되어 여행객들을 웃기고 있다. 폐 선로에는 가족과 여행객들을 실은 레일바이크가 굴러가고 있다.

물탕마을, 도고온천은 신라시대부터 유황온천으로 이름난 곳이었는데 일본인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1970년대 고 박정희 대통령의 별장이 지어졌고, 당신도 온천욕을 위해 자주 찾았으며, 그렇다보니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일화들이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졌다.

‘짚동가리 주를 그분께 상납하여 사무관을 달았다’는 어느 공무원에 대한 해괴한 얘기며, ‘대통령 일행이 도고CC에서 골프를 즐기고 나오다가 기차 건널목에서 기차와 부딪칠 뻔한 사고가 발생하여 그때부터 차단기가 만들어지고 선로지기를 두게 되었다’고, 이야기꾼들에 의해 보태져서 궁밭 장날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삶이 무료했던 시절이라서 그랬던지 거짓인줄 알면서도 민초들에겐 쇼킹한 소식이었다.

조상들은 섣달그믐에 재수와 안녕을 위해 집안 고사를 올릴 때 장독대도 빼먹지 않았다. 궁중에는 장독대를 관리하는 상궁을 ‘장고마마’라는 별칭을 붙일 만큼 장독대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장독대를 채우는 옹기는 빈부와 계층에 관계없이 사용된 평등한 그릇이었다

한때 도고 갈티(금산리)에서는 몇 집이 옹기를 구웠고, 아산 전역은 물론 인접도시에까지 옹기를 공급하였다. 현재는 옹기 체험관에서 옹기 장인을 모시고 그 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아이들이 직접 옹기를 빚어볼 수 있는 귀중한 체험의 장소로 운용되고 있다.

도고는 물적 자원만 풍부했던 것이 아니라,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던 선각자들도 많이 배출하였다. 봉건사회의 모순과 지방관들의 폭정에 항거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로 접사 정태영은 도고, 선장, 신창 지역에서 봉기를 일으켜 내포지역 동학운동 확산에 기여하였다.

단종의 복위를 주도했던 사육신 중에 한 분이었던 박팽년은 유년시절을 도고 도산리 외가에서 보냈다고 한다. 죽음으로 끝까지 절개를 지켰던 충신 박팽년으로 인해 도고는 충절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는데도 모르는 분들이 많다. 흔적은 희미하지만 의미는 깊은 곳, 궁밭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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