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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승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아산 선비들의 독서

2019년 08월 24일(토) 14:20 [온양신문]

 

↑↑ 김기승(순천향대 교수)

ⓒ 온양신문

조선 후기 실학자 동사 안정복은 그의 저서 '상헌수필'에서 옛 성현의 정신과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독서가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독서는 많이 읽어야 그 뜻을 알 수 있으며, 널리 보아야 그 변화를 통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일만 권의 책을 읽으면 붓 끝에 신기가 있는 듯하다.” “글을 일천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 “묵은 글을 싫증 내지 않고 일백 번을 읽는다.” “5천 권의 책을 읽지 않은 자는 내 방에 들어오지 말라.”라는 옛 말을 인용하면서 독서는 분량도 많아야 할 뿐만 아니라 폭도 넓어야 한다고 하였다.

안정복에 의하면, 동악 이안눌은 '두율(杜律)'을 1만 3천 번, 독계 오건은 '중용'을 1만 번, 판서 임유호는 왕발의 '등왕각서'라는 짧은 글을 1만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친구인 상사 신후담은 '중용'을 1만 수천 번, '서경'과 '주역'은 수천 번, '시경', '논어', '맹자'는 1천 번을 읽었으며, 수십 번에서 수백 번 읽은 책은 24 종에 이르렀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리석고 멍청했던 김득신은 1만 번을 읽어야 책읽기를 끝냈는데, 「백이전」을 너무 좋아해서 무려 1억 1만 8천 번을 읽었다고 한다. 머리가 나쁜 김득신의 1만 번 독서법은 그를 당대의 최고 문장가로 만들었다.

안정복이 꼽은 독서광으로는 아산과 인연이 깊은 동명 정두경이 있다. 정두경은 고려 초기 탕정후(湯井候)로 봉해져서 온양 정씨의 시조가 된 정보천의 후손으로 본관이 온양이다. 그는 아산에 유배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아산의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아산의 문풍을 진작하여 ‘아산의 8대 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다.

정두경은 17세기 인조와 효종 연간에 사마천의 '사기'를 일만 번이나 읽은 다독가이며 최고의 문장가로 소문이 났다. 이에 안정복의 할아버지의 스승인 하계 권유가 정두경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였다고 한다. 정두경이 책을 읽으라고 해서 읽다가 의문이 있는 곳에서 질문을 하면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라고 반문하였다. 이에 권유가 “이러이러한 말 같습니다.”라고 하면 정두경은 “좋다.”라고 하여 질문할 때마다 좋다는 말로만 대답하였다.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때쯤 정두경이 보이지 않아 고개를 들었더니 방 윗목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가 권유와 눈이 마주지차 “좋고도 좋구나. 글 뜻은 굳이 알 필요가 없고, 그저 많이 읽기만 하면 된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안정복은 할아버지의 스승인 권유의 정두경에 대한 경험을 말하면서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다독(多讀)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온양 출신의 정두경이 다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글을 읽는 것을 글 읽기 이외의 또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글 읽는 것 자체를 즐겼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자가 말했듯이 “아는 자는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공자는 살구나무 그늘에 앉아 제자들이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정두경은 권유가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으니 독서를 음악과 춤처럼 즐기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18세기 아산의 이름 난 독서광으로는 외암 이간을 꼽을 수 있다. 1703년 외암 이간이 27세 때의 일이다. 외암 이간은 한번 뜻을 갖고 강학을 하면 밤새도록 자지 않고 책을 읽었다고 한다.

하루는 풍천 임씨의 사위가 되어 아산에 살게 된 고박재 조태만(趙泰萬)이 온양의 외암 이간 집에 들렀다가 밤이 깊도록 들어가지 않은 채 책 읽는 소리를 들었다. 이간이 낮부터 밤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문을 열어보니 조태만이 있었다. 이에 왜 들어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조태만이 대답하기를, “형이 책 읽는 소리가 너무 좋아서 즐겁게 들었다. 만약 들어가면 형이 책 읽기를 그만둘까 두려웠다.”고 했다.

이렇듯 외암 이간은 책을 읽고 친구들과 강론하기를 즐겼다. 몇 년 후 이간은 홍성 남당리의 한원진과 인성과 물성이 같은가와 다른가에 대한 논쟁을 벌였고 이 논쟁은 기호학파 학자들 사이의 대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이간이 촉발한 인물성동이 논쟁은 호락논쟁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조선시대 유학사 3대 논쟁의 하나가 되었다.

독서는 개인과 세상을 바꾼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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