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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버리면 마음도 밝아진다 사람들은 간혹 “나는 인덕이 없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 가족이나 또는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상대방이 전혀 고마움을 몰라주고 도리어 엉뚱한 말만 하고 있을 때 나는 인덕이 없다라고 한다. 때에 따라 공을 몰라주는게 아니라 도리어 음해중상까지 서슴치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억울하고 불쾌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 제3자 입장에서 살펴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또한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남을 칭찬해 주는 의식(意識)은 대부분 희박(稀薄)하다. 이러한 속성(屬性)에서 볼 때에 남을 위하여 선행을 하면 무척 자랑스럽다. 이러한 점을 상대방이 인식하지 못하고 도리어 흉을 보고 있다면 억울하고 때에 따라서는 분하기도 할것이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나는 인덕이 없다라고 한다. 인덕이 없는 근본적 원인은 상대방은 아니라 일부 책임은 자기에게도 있다. 선행을 자랑하는 그 순간부터 덕(德)은 소멸(消滅)한다. 좋은 일과 착한 일을 했으면 그것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지 않아도 타인이 그것을 먼저 알고 있으며, 천지신명이 알고 있다. 이것을 굳이 자기가 스스로 자랑하면 시혜(施惠)받는 상대가 때에 따라 거북스러워하고 좀더 정도가 지나치면 역으로 “누가 원해서 했나 스스로 해주고 자랑이야”라고 반감(反感)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언짢은 말을 하게되고 이말을 전해들은 순간 불쾌감을 느끼면서 “나는 인덕이 없다”라고 한다. 선심행위(善心行爲)중에서 반대급부(反對給付)를 전제한 섬심행위는 위선에 속한다. 때문에 반대급부를 전제하지 않는 선심행위가 진짜 선심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공치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 공치사를 하는 순간 그 “공”은 사라지고 만다. “공”을 말하지 않아도 이미 주변에서 알고 있다. 그것은 시간상의 완급(緩急)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함부로 공치사(功致辭)하다간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경우도 있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이 간혹 느낌이 있을 때 마치 도통이라도 한 양 과시하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 대각(大覺)과 소각(小覺)이 있으며 영통과 도통이란 말도 있다. 영통과 도통은 의제(擬制)라고 한다. 또한 어느 종교도 신안하면 환상적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누구나 몇번씩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을 마치 자기가 도를 통한 양 자기만이 영감을 받은 양 은근히 자랑하는 사람이 간혹 있으니 그야말로 가관이며 꼴불견이며 심양없는 사람이다. 이와 같은 것도 자기 “과시욕”때문에 주변사람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석가, 예수, 공자, 맹자, 수운같은 성현의 교훈을 한가지만이라도 실천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지 수도한다고 하여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그야말로 망상이다. 자기몸 하나 처신못하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정의도 모르고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사리사욕만을 추구하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바른 길을 찾아갈 수 없다. 인덕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자신의 그릇된 욕망부터 버리면 자연히 인덕을 얻게된다. 정치인은 진정으로 국민만을 생각해야 한다.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밝아지고 마음이 밝아지면 사리판단도 밝게 할 수 있다고 본다. 자기과시도 틀림없이 욕심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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