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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메아리 리 한 구 온양신문대표이사 덕(德)치 세상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사람을 지칭(指稱)하여 친구(親舊)라고 하며 또는 죽마고우(竹馬故友)라고도 한다. 또한 여형약제(如兄若弟)라 하여 형제처럼 친한 사이가 있는가 하면 삼손우(三損友)라 하여 사귀어서 손해가 되는 벗이 있다. 즉 첫째가 편벽(偏僻)한 사람, 둘째가 편영(便 )한 사람, 셋째가 선유(善柔)한 사람인데, ①“편벽”한 사람은 남의 비위를 잘 맞추어 아첨하고 또는 뒤 힘도 없으면서 발끈하게 성질을 잘내는 사람 ②“편영”은 말로는 모든 일을 잘 할 것 같으나 실은 그러하지 못하고 실속없는 재주를 부리며 ③“선유”한 사람은 마음이 너무 착하여 줏대가 없고 남에게 곰살스럽고 이용을 잘 당하며 경박하게 처신하는 사람이다. 간담상조(肝膽相照)란 말도 있는데 이말은 아주 친한 교우관계를 나타낼 때의 말이다. 서로 꾸미고 감춤이 없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귄다는 “뜻”이다. 간(肝)과 담(膽)까지 보일만큼 친하다는 말이다. 사람은 역경(逆境)이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비로소 참다운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에 서로 그리워 하고 즐거워 하며 사양을 하면서 손을 마주잡고 간이나 쓸개를 드러내 보이고 하늘을 가리키며 배반치 않을 것처럼 맹세하지만 일단 이해 관계가 생기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거들떠 보지 않는다. 함정에 빠진 그사람을 구해주기 보다는 오히려 함정으로 밀어넣어 서슴치 않고 돌을 던지기 까지 하는게 요즘 세상의 인심 풍토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의 주변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상업하는 사람이나, 공직에 있는 사람이나, 자유업을 하는 사람이나,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이나, 특히 정치인 등을 막론하고 사회적 생활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바로 신의성실(信義誠實)이다. “성실”’은 정성스럽고 참됨을 지칭하는 뜻이다. 즉 신의성실은 언행일치로 믿음과 의(義)를 소홀히 하지 말고 있는 정성(精誠)을 다하여 착실하게 그리고 참되게 하라는 뜻이다. 이와같이 한다면 우리사회는 지상천국(地上天國)처럼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물욕과 명예욕에 교폐되어 자신도 모르게 현실과 같은 복잡 미묘한 양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하더라도 아무리 좋은 글이 있어도 그것을 그대로 지키지 못하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삼강오륜(三綱五倫)은 공자의 인륜정칙(人倫正則)에서 밝혀준 덕목(德目)으로서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야말로 우이독경(牛耳讀經)격이다. 왜 이지경이 됐을까? 그동안 짧게는 일세기동안 정치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싸움질만 하고 어진 정사를 베풀지 못하고 입신양명에 치우치고 사리사욕에 치중하고 인성(仁性)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자비(慈悲)와 박애(博愛) 참으로 좋은 말이며, 사람이 모두 그런 마음가짐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종교에 입교한 사람들이 무려 수 십만, 수 백만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면 착한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반비례로 악(惡)]한 사람이 더욱 많아지는게 탈이다. 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도 유도(儒道), 불도(佛道), 예수교가 나온지 수 천년이 지나므로 운(運)이 다 했나보다. 그러나 사람이 아주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처음에는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지만 막상 죽을지경이 되면 “하늘님”을 찾게 된다. 그래서 림사호천(臨死呼天)이라고 했나보다. 전지 전능(全知 全能)한 하늘을 섬기듯 사람을 하늘같이 섬기면 얼마나 좋을까 한다. 법치보다 덕(德)치의 세상을 갈망(渴望)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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