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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메아리 리 한 구온양신문대표이사 곡학아세 곡학아세(曲學阿世)란 말이 있다. 중국사기(中國史記)를 보면 전한(前漢)의 경제(景帝)는 어질고 지혜로운 인사를 널리 구했는데 그중 “원고생”(轅固生)이란 시인(詩人)이 있었다. 경제는 덕(德)의 향기가 높은 늙은 시인을 몹시 총애하였다. 어느날 경제의 모친인 두태후가 원고생에게 노자에 대한 것을 물어왔다. “박사께선 노자(老子)를 어찌 생각하십니까?” 하니까 원고생은 말하기를 “노자 따위는 머슴이나 노예와 같은 형편없는 잡배(雜輩)입니다. 그자의 그럴 듯한 변설은 하나같이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천하대사를 논(論)하는 인물로는 가당치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두태후는 노발대발하고 원고생을 당장 감옥에 처넣고 매일매일 돼지 죽이는 일을 시키라고 했다. 아흔이 넘은 노인에게 돼지 죽이는 일은 힘에 버거운 일이다. 그러자 경제는 예리한 칼을 모후 몰래 보내여 쉽게 돼지를 잡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다. 경제는 뒤에 그를 다시 불러들이니 소장파의 대표격인 공손홍(公孫弘)이가 “시골구석으로 다시 보내 증손자의 재롱이나 보게 하십시요”라며 극력(極力)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경제는 주위에서 어떤 말을 해도 원고생을 등용했다. 원고생에 자기를 반대했던 공손홍에게 말하기를 “지금 학문이 몹시 어지러워 지고 있네. 이대로 가다가는 현인들이 세운 금자탑은 요사스런 학설과 주장에 밀려 쓰러질 판이야. 그대는 학문이 높고 심지(心志)가 곧다고 들었으니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히지 말고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부하지를 말게” 라고 했다 한다. 이것이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의 원류(源流)라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 학자들은 자기 학문에 열중하면서 그 길로 매진하는게 아니라 정치쪽으로 슬그머니 기울어지고 있다. 어느 정도 자기 학문에 틀이 잡힌 듯하고 사회적으로 괄목(刮目)하게 되면 슬쩍 정치쪽으로 기울어진다. 학문쪽이냐? 정치쪽이냐? 어느쪽이 소중하냐 하면 학문쪽이라고 중심(中心)있는 인사는 말한다. 정치하는 사람도 잘 해야 하지만 조변석개식으로 변화하는 정치마당은 마치 난장판과 같은, 그야말로 시중잡배들의 난상토론장(爛商討論場)으로 둔갑한 느낌이다. 치고 받고 하면서 국민들의 이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곳이 좋다고 학자의 길을 버리고 가고 있다. 학자의 길을 버리는 자가 바보냐? 학자의 길을 택하는 자가 바보냐? 둘 중 어느쪽이건 바보는 바보가 있을 것이다. 그곳은 명예도 돈도 일시에 달성할 수 있는 한탕주의 목적때문일까? 귀중한 학문을 헌신짝 처럼 버리고 가듯 하니? 같은 학자의 길을 가던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정치쪽으로 돌아간 학자가 갑자기 장관 관권에 따른 회사의 사장 또는 대표이사를 하게 되니까 혹(或)할 수 밖에… 학자의 길은 사회보장제도가 허약하고 정부기관에서 볼 때는 찬밥 대접하듯 하고 흥청망청 하는 경제적 예산여건이 좋은 곳…심주(心柱)가 허약한 사람의 마음을 여지 없이 어지럽게 하니 자연 그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달프고 외로운 학자의 길은 나름대로 위대한 길이다. 그 위대한 길을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아도 뜻있는 인사들은 알고 있으며 이해할 것이다. 물거품과 같은 허욕의 세태에서 일부 학자들의 변질적 태도는 그야말로 “곡학아세(曲學阿世)”가 분명하다. 그 사람들을 살펴보면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공서양속(公序良俗)과 위법행위를 심심찮게 범하고 있다. 그 책임은 우선 그부모와 교육자와 사회가 공동으로 져야 한다. 또한 결과적으로 모든 책임은 정치하는 정치꾼들에게 있다. 도(道)가 무엇인지 덕(德)이 무엇인지 정치철학(政治哲學)이 무엇인지 배워야 하는데 이를 외면하고 그저 명예와 물욕에 도취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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