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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혹의 나이에 희망의 씨앗을 싹 틔우다

2019년 03월 29일(금) 17:51 [(주)온양신문사]

 

↑↑ 김하운(천안보호관찰소 책임관·보호주사보)

ⓒ 온양신문

“정신과 약을 먹으면 내 자식이 멍해져서 바보가 될 거예요. 상태가 더 악화되면 당신이 책임질 수 있어요?”

매우 화가 난 상태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나에게 고함을 치는 분은 치료명령 대상자 김ㅇㅇ 씨의 모친이었다. 김ㅇㅇ 씨 역시 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냐며 막무가내로 따지면서 “엄마의 지시에 따라 나는 약을 먹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무작정 소리만 지르던 그녀와 다소 지능이 떨어져 보이는 김ㅇㅇ 씨와의 첫 만남은 이렇듯 요란스럽게 시작되었다.

자녀를 보호하고자 하는 모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으나 앞으로 난황이 예상되었다. 치료명령은 실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조건으로 주취·정신질환의 치료를 성실히 받는 신설제도이다. 그런데 병원치료와 투약을 거부하다니… 더구나 그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부친을 폭행한 알코올의존증후군과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는 양극성정동장애를 겪고 있는 정신질환 대상자였다.

사무실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고난 며칠 뒤, 나는 현장지도 차원에서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김ㅇㅇ 씨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나는 그와 그의 모친이 치료를 거부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협소한 공간의 작은 아파트에는 파킨슨병으로 몸져 누워있는 김ㅇㅇ 씨의 노부가 있었다.

출장 당시 김ㅇㅇ씨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모친과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후 모친을 통해 김ㅇㅇ 씨가 어려운 형편 속에서 선천성 자폐를 앓으며 불혹의 나이까지 지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치료명령의 이행이 자녀분의 재범을 예방하고 실형을 면하는 바른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김ㅇㅇ씨는 혼자 보호관찰소로 출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와 면담하기 위해 주거지 출장을 실시하며 그때마다 대상자의 모친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대상자의 치료를 위해 한 달 동안 세 번을 김ㅇㅇ씨의 집으로 찾아가 모자를 설득하며 막무가내로 통원치료를 거부하는 김ㅇㅇ 씨에게 서면으로 경고장을 고지하기도 하였고, 법원에 특별준수사항(치료약 복용 여부 확인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의뢰하는 복약(소변) 검사에 응할 것)을 추가 신청하여 판사의 결정문을 전달하면서 강하게 지도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결국 모자와 함께 대동하여 치료명령 협력 병원으로 향해 첫 진찰을 받는 데 성공했다. 담당 원장은 친절하게 모친을 안심시켰고, 김ㅇㅇ 씨의 상태를 면밀하게 진찰하였다.

그러나 김ㅇㅇ 씨의 정신질환이 심각하여 종합심리검사(비용 30만원)가 필요하고, 장기간 약물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진단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범죄자라서 차별대우를 받을 줄 알았는데 너무 친절하게 진료해줘서 고맙네요. 근데 교통비와 병원비는 어떻게 해야 하죠?”

진료 후 한층 경계를 푼 김ㅇㅇ 씨는 모친과 경제적 문제로 걱정을 나눴다. 그들의 치료의지를 확인한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병원까지 태워다 줄 것을 약속하고, 기관 자체 수용비 등으로 심리검사 비용 등의 지원할 계획을 세웠다.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김ㅇㅇ 씨의 진료비 부담을 경감시킬만한 방안을 강구 중, 우선 법무보호복지공단에 의료비 지원을 의뢰하여 병원비 20만 원을 지원 받았고, 또한 관할 보건소에 재가 정신질환자 의료비 지원을 신청하여 매월 3만원 이내에 병원비를 지원 받도록하여 원활한 치료 받도록 하였다.

김ㅇㅇ 씨와 함께 병원을 가는 차 안에서, 병원 원무과에서 접수표를 들고 진료 순번을 기다리면서, 동사무소에서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순번을 기다리면서 그의 굴곡진 인생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엔 그가 자폐를 안고 불혹에 가까운 세월을 견디며 얻은 마음의 병을 그저 들어주며 위로하기만 하였으나 어느 순간 나 역시 그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보호관찰관과 치료명령 대상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그와 소통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김ㅇㅇ 씨의 병원치료가 두 달 차에 접어들 무렵, 여느 때처럼 김ㅇㅇ 씨의 집을 방문 했을 때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김ㅇㅇ 씨와 피해자인 부친이 서로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김ㅇㅇ 씨는 파킨슨병으로 팔다리를 떠는 부친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인상이 한층 더 좋아졌다는 나의 말에 김ㅇㅇ 씨가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새해를 맞아 불우한 대상자들에게 기증된 쌀 20kg를 내려놓고 가볍게 발걸음을 돌리는데 뒤에서 쌀을 옮기는 김ㅇㅇ 씨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김ㅇㅇ 씨의 모친이 보인다. 이제는 그녀의 모습이 자녀를 매우 아끼는 여느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보호관찰관으로 근무한지 어느새 21년이 되어간다. 이 중 18년 이상을 소년원에서 근무하며 방향을 잃은 어린 학생들을 수도 없이 바로잡아왔으나, 나와 나이가 비슷한 성인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굴곡진 인생이 나의 열정을 이끌어냈고, 나의 열정은 그의 아픈 마음을 조금씩 치유하며 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의 희망. 그리고 나의 희망. 불혹의 나이에도 우리의 희망은 숱한 역경 속에서 더욱 강하게 싹 트일 것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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