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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각 지역의 3.1운동사(신창면)-2

봉화시위 최학서…유관순 부친과도 연결돼

2018년 12월 24일(월) 11:30 [(주)온양신문사]

 

▲황산리 상봉-보갑산-황산 시위

↑↑ ▲황산

ⓒ 온양신문

신창 3.1운동에서 주목되는 새로운 증언은 황산리에서도 봉화시위가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시위를 주도한 인물은 최학서(崔學西)이다. 그는 천안 병천 시위에 참여했다가 고향 신창으로 몸을 피했다.

고향에 온 최학서는 윤병오(尹炳午), 주낙빈(朱洛斌), 강석지(姜錫智), 윤병도(尹炳燾)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계속하기로 결의하고 황산, 창암, 점량, 기산, 초사, 신인리 등 동리와 연락하여 4월 3일부터 3일 동안 황산리 상봉-보갑산-황산에서 지역주민 수백 명과 함께 농악을 치며 야간 산상봉화시위를 선도했다고 한다.

최학서는 그 후 주동자로 붙잡혀 혹심한 고문을 받아 빈사상태로 귀가 조치됐다. 그 후유증으로 1923년 2월 17일 4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한다.

▲최학서

최학서는 1878년 8월 22일 충남 아산군 신창면 황산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고향 황산리에서 사서삼경과 오늘날의 산수인 산학을 배우고, 20세에 결혼해 농사를 짓고 있었다.

1910년 일제가 우리 국권을 빼앗고 나라가 식민지가 되면서 땅 가진 사람에게 많은 세금이 부과되자 이듬해인 1911년 그의 나이 33세에 고향의 밭 7천 평과 논 26마지기를 처분해 천안군 병천의 아우내 장터 구 삼거리에 방앗간을 열었다.

처음에는 물방앗간으로 시작해 점차 도정기를 도입하고 방앗간을 확장했다. 인근 병천과 오창 쌀의 질이 좋고 아우내장은 인근 지역의 물산이 모이는 곳이라 사업이 번창했다. 방앗간이 효율성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일감이 늘어났다. 사업이 번창하자 1917년 천안에 미곡상회를 또 하나 열었다. 이듬해인 1918년 봄에는 서울에 점포를 마련해 본격적으로 양곡유통업을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조선의 쌀값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1914년부터 1916년까지 1석당 12원에서 16.7원으로 오르더니, 1918년 8월 이후 일본 국내에서 제1차 세계대전 특수를 타고 일기 시작한 미곡투기로 인해 이전의 배 이상 쌀값이 뛰었다. 이 추세는 3.1운동 때까지 계속되어 43원 57전까지 올랐다.

이런 경기를 타고 최학서의 방앗간과 양곡상은 번창했다. ‘최씨 방앗간’으로 불린 이 방앗간 에서 일했던 고치삼씨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방앗간과 양곡상이 번창해서 명절이나 마을 행사가 있을 때마다 농악패들에게 쌀과 돈을 희사해 마을 발전기금으로 쓰게 했고, 어려운 이웃 구제도 많이 했다.”

그러나 일본 상인들은 병천에 까지 들어와 미곡을 매점했고, 양곡의 거래와 철도 운송에도 일본인 자본가의 견제와 총독부의 통제로 인해 사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는 손해를 보면서 천안과 서울의 점포를 정리해야 했고, 바로 이런 경험을 통해 식민지 지배의 모순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빼앗긴 국권을 되찾아야만 우리 민족의 생업이 보호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독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에 나설 생각을 품게 됐다. 최학서는 그때 41살의 장년이었다.

어느 날 수신면의 유지 김교선이 찾아와 만났고, 며칠 후에는 갈전면 유지 조인원, 유중권(유관순 열사 아버지), 김구응 씨 등이 찾아와 그후 자주 모여 독립운동을 의논하게 됐다.

최학서는 만세운동에 필요한 자금으로 백미 10가마를 출연했다. 이에 만세운동을 추진하던 유지들은 각자 힘닿는 대로 금품을 출연하여 준비물을 만들고, 거사 당일 만세꾼들에게 장국밥과 술을 대접하자며 논의가 아연 활기를 띠게 됐다.

유관순은 마을과 마을을 다니며 마을 어른을 만나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설득했다. 최학서는 약속한 운동자금의 일부는 현금으로, 나머지는 방앗간 창고에 있던 쌀로 내 놓았다. 지도자들은 각기 맡은 태극기 등 준비 물품들을 준비했다.

이렇게 하여 1919년 4월 1일 병천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가 일어나게 됐으며, 여기에 아산 신창면 황산리 출신의 최학서가 주요 주도 인물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했다. 아우내 만세시위는 많은 사상자를 낸 큰 시위였다.

임재룡 기자  skyblue62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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