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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메아리 역사에 떳떳한 온양 명칭으로 바꿔야 한다 리 한 구 온양신문 대표이사 너,나 할것없이 우리가 아산(온양)에서 대대로 오랜세월을 살고 있으면서 내고장 아산(온양)의 지명 변칭(變稱)과정을 모르고있다 다만 몇몇 사람이 알고 있을뿐이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백제초기에는 탕정군 이라고 명명했으나 신라 문무왕때 탕정군명이 폐칭됐다가 고려초기에 온수군으로 개칭하고, 고려현종 9년에 천안부에 예속되고, 고려명종 2년에 감무(監務)를 두고, 조선태종 14년에는 온양과 신창을 통합하여 온창군으로 개칭했다가, 조선태종 16년에 온양과 신창을 분리하여 온수현으로 했다. 조선세종 14년에 온양군으로 승격했다. 1914년 3월1일 일제시대때 온양군과 아산현 신창현을 강제로 통합하여 아산군으로 했으며 같은해 11월1일 조선총독부령으로 온양면에서 온양읍으로 승격했다. 군(郡)명칭은 역시 아산군으로 했다. 일제는 청일전쟁때 아산만에서 대첩하고 대첩한 역사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군명칭을 온양을 배제하고 아산으로 했을뿐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군청명칭 이외의 기타 각기관의 명칭은 모두 속지명인 ‘온양’으로 했다. 1986년 1월1일에 온양시로 승격되고 1995년 1월1일자로 온양시와 아산군이 통합되면서 아산시로 개칭하게 됐다. 온양시의원들은 ‘온양시’로 하자고 고집하고 아산군 군의원들은 ‘아산시’를 고집했다. 끝내 합의를 보지못하고 표결한결과 아산군 의원수가 온양시 의원수보다 많아 아산시로 결정된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시 국회의원이 온양시의 인구수보다 아산군의 인구수가 많으므로 아산쪽에 힘을 실어준것이기 때문이라고 근거없이 지금도 나름대로 쑥덕대고 있다. 아산의 중심도시는 신창, 음봉, 둔포, 영인, 선장, 배방, 인주등이 아니고 온양이다. 생활중심지가 온양이다 이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때 왜놈과 전쟁하다 왜놈이 쏜 총탄에 맞아 전사하셨다 만일 이순신장군의 영혼이 계시다면 “아산"이란 명칭을 좋아하셨을까? 아산의 지명이 싫어서가 아니라 일본역사관이 미워서 하는말이다. 침략주의자요 우리나라문화를 말살하는 일본이 청일전쟁때 아산만에서 청군을 크게 물리치고 대첩함을 영원히 기념하기위한 그 지명인 “아산"명칭을 선호했다. 청일 전쟁당시 영인, 인주, 신창, 염티, 둔포쪽 주민들이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한 일은 규장각 문헌에 수록됐다고 한다. 이치욕을 설욕하기 위해서도 아산시 명칭을 선호 할 수 있겠는가? 온궁의 5백년 역사가 담긴 찬란한 온천문화와 세종대왕이 지어주신 유서깊은 온양의 명칭을 헌신짝버리듯 버리고 정신상 흠집있는 아산으로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한 고집스러운 사람들이 역사를 모르고 외면한것은 아닌지? 두고두고 생각해봐야 할일이다. 지역이기주의때문에 그러했는지 결과적으로 역사적 비판을 받지않을 수 없다. 천원군을 천안으로, 정주를 정읍으로, 금성을 나주로, 이리를 함열로 환원하듯이 우리지역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칭으로 환원해야 좀더 번영한다고 본다. 그 작업은 누구보다도 시 의회에서 소정의 절차를 먼저 서둘러 실천하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조그마한 지역이기주의를 버리고 더큰 모두를 위하는 길로 방향을 조정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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