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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강했다면… ‘약해서 끌려간 것이 분하고 억울’ 일제 강점하 강제 동원 피해자 인주면 박봉식씨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을 신청한 박봉식씨(79)는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시상황을 생생히 기억했다. 1943년에 전북 정읍군 신태인읍에서 신태인남공립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징병신체검사를 받아 19세의 나이로 진해에 있는 해군 4기생으로 징용되어 한달 동안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곳에서 일본천황에서부터 분대장까지 이름을 외우고 수기법을 배우는 등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는데 심한 구타의 두려움속에서 긴장하며 교육을 받아 지금도 당시를 생생히 기억한다며 그 자리에서 시범까지 보였다. 기초 교육을 받고 배치된 부대는 해군시설부대로 당시 진해와 평택, 중국 상해 3군을 지휘하던 해군 소장의 관사가 인접해 있던 곳이었다. 후에 이 관사는 이승만 박사의 별장으로 쓰였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박씨는 돌에 화약을 심어 폭파하는 작업으로 굴을 파서 일본해군 비밀무기고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채찍질을 당하고 주야로 쉴 새 없이 과도한 노역을 강요당했으며 실수를 하거나 불만을 표시할 경우 구타는 물론 밥을 굶기는 치욕적인 인격모독까지 당했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 박씨는 다친 곳이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몇몇 동기들은 작업과정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기도 했고, 2년이 지난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서야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떤 형태의 보상을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보상액수는 생각을 안 해봤지만 수치를 정한다면 당시 머슴으로 일하던 사람들 용역비가 1년에 120원이었으니까.. 현재 환율과 비교해서 일했던 시간, 2년 2개월 어치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강제 징용에 대한 피해는 신체적인 피해 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 느꼈던 공포와 치욕, 인격적 모독에 대한 것도 있기에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보상의 문제가 되고 있는 보상금 지불 국가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당시 신청을 했던 다른 많은 피해자들이 우리나라 정부에서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 언론에서 보도된 김종필씨 사례에서 밝혀졌듯이 정부가 대일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금으로 국가 발전에 투자했고, 이제는 발전된 국가의 정부가 됐으니 우리나라가 지불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그때 보상했으니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차피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 강하지 않은 담에야 보상을 받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말해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 못지않게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현했다. 현재 박씨는 트럭운전을 하고 있는 둘째 아들 박희백씨와 함께 부인과 두 손자와 함께 인주면에 살고 있다. IMF이후 둘째아들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가 최근에 풀려 일을 시작했고 2년전 며느리가 불치병에 걸려 죽는 바람에 손자들을 돌보러 부인과 함께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박씨는 근근이 이어가는 생활에 불안함을 나타내고 있다. “6월말까지 조사를 한다는데 빠른 시일 내에 조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상처를 오래 방치하면 곪듯이 빨리 보상이 이뤄져야한다. 또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나이도 많다.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들도 많이 봤다. 후손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죽기 전에 보상을 받아야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거 같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박씨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일제강점하 피해 진상규정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더 많이 알려서 피해자는 물론 그 후손들이라도 마땅한 보상을 받게끔 시(市)를 통한 신청이 이뤄져야 한다. 그들도 억울한 피해자니까 챙겨줘야 하지 않겠냐.”며 행정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조사를 당부했다. <안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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