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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지역의 3.1운동사(온양면-3)

대대적인 봉화만세운동이 전개되다

2018년 09월 27일(목) 11:01 [(주)온양신문사]

 

온양면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5일을 끝으로 2주 남짓한 기간 동안 만세시위가 일어나지 않은 휴지기가 있었으나 3월 말부터 새롭게 봉화만세운동으로 다시 불타올랐다.

3.1운동이 초기에는 비폭력 만세시위 형태였다가 일제의 식민통치기관이나 시설 파괴, 일제 헌병 경찰 등에 대한 폭력적 대응 등 점차 강력하고 폭력적(무력적)인 모습으로 변화됐던 것과 병행해 봉화만세시위가 전개됐다.

아산시 지역에서는 각지의 대대적인 봉화만세시위와 함께 신창면이나 선장면에서 면사무소, 주재소, 학교에 대한 파괴 활동이 있었고 염치, 배방, 탕정면 중 어느 곳에서는 일본인 상점 몇 호에 석유를 부어 방화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그 지점은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봉화만세운동이 충남 지역에서는 주로 3월말에서 4월초에 걸쳐 일어났다. 이러한 형태의 만세시위를 연구자들이 흔히 횃불시위라고 한다. 그런데 ‘불을 들고’라는 표현도 있지만 대부분 ‘불을 놓고’ 또는 ‘불을 피고’, ‘구화(.火)를 놓고’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기본적으로 봉화처럼 산봉우리에서 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멀리까지 보이도록 하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모닥불보다는 규모가 컸을 것이며 대보름 때의 달집태우기 정도였을 것으로 본다. 물론 요즘 행사 차원에서 매우 크게 만든 달집과는 다르다. 아산에서는 주로 산 위나 바닷가에서 불을 피우고 시위를 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시위형태의 표현과 용어의 통일을 위해 봉화만세운동, 봉화만세시위라 부르기로 한다.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아산시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31일부터 봉화만세시위로 다시 불타올랐다. 아산시 지역의 경우 3월 31일에 50여 곳에서 봉화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4월 1일에도 봉화만세시위가 확산되어 수모자(주모자) 12명이 체포됐다.

아산시 지역의 봉화만세운동은 4월 2일과 3일 걸쳐 계속됐다. 그런데 아산시 지역의 전체 3.1독립만세운동 중 가장 많은 곳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했던 3월 31일의 아산시 지역 봉화만세운동에 대한 주요 기록들이 아래와 같이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1. 3월 31일 하오 8시에 아산군 배방면, 탕정면, 염치면 각리 거민이 모여 산상에 불을 들고 소요했고 4월 1일에는 앞의 3면과 온양 신창 둔포 각 면에서도 또한 산에 올라 불을 놓고 시위운동을 함으로(이하 생략)-매일신보 1919년 4월 5일자

2. 31일은 온양 북방 1리의 수개 소에 구화(.火)를 놓고 폭행하므로 군대와 협력해 발포로 해산시켰고 사상은 없었다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민족운동사료’

3. 충남 아산군 / 50여개 소에서 군중이 구화를 놓고 소요하므로 온양의 헌병과 응원대가 협력해 진정시켰다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민족운동사료’

4. 3월 31일 동군(아산군-필자) 염치 배방 및 탕정의 각 면민이 부근의 산상 50여개 처에서 구화를 놓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운동을 개시하므로써 헌병이 출장해 곧 해산시켰다 - 국회도서관, ‘한굳민족운동사료’

5. 충남 아산군 염치 / 산상 50여개 소에서 구화를 놓고 소요 / 특무조장 이하 17명이 헌병과 협력하여 해산시켰음

6. 충남 온천리 부근 / 약 600의 군중이 소요 / 천안에서 특무조장 이하 17 파견 하사 이하 10명이 응원 - 국회도서관, ‘한굳민족운동사료’

7. 온정리에서는 3월31일 밤에 염치 배방 온정의 각 면민 2천5백명 이상이 부근 산상 50여개 소에서 봉화를 올리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8. 온정에서 2,500명이 수개 소에서 횃불을 들고 시위를 거행하였고 이에 일병이 출동해 발포가 이루어졌다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 7, 8의 ‘온정(溫井)’은 ‘탕정(湯井)’의 오기로 봄.

위의 자료들을 근거로 전체적 상황을 살펴보면 3월 31일 밤 8시에 당시 아산군 염치면, 배방면, 탕정면을 중심으로 각 지역 총 50여 곳에서 주민들이 산 위에 올라가 봉화를 올리고, 즉 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했다. 전체 참가 인원은 2천500명 정도였다.

이러한 대대적 봉화만세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하여 온천리 헌병분견소의 헌병과 17명 정도의 군 병력이 출동했으며 해산 과정에서 발포가 이루어졌고 여러 명이 검거됐다.

온양면에서는 파괴나 폭행은 없었으나 인근 지역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만세운동 방식인 봉화만세운동이 전개됐다. 온양면의 봉화만세시위가 명확히 확인되는 것은 4월 1일이고, 밤 8시경 산에 올라 봉화 불을 피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날의 온양면 봉화 만세시위와 관련해 누가 주도적으로 활동했고 참여인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앞에서 3월 31일과 4월 1일의 군내 각지 봉화만세운동으로 인해 아산군 지역에서 12명이 체포됐다고 하였는데 온양면에서 체포된 사람은 확인되지 않는다. 구체적 기록이 확인되지 않고 현재 읍내동 일대에 거주하는 주민 중에서 읍내동 근처에서 불을 피우고 만세를 불렀다는 사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람도 없다.

온양면의 봉화만세운동과 관련해 주목되는 산, 읍내리 북서쪽 1㎞ 남짓한 위치, 아산초등학교 서쪽, 아산중앙도서관 바로 남쪽에 있는 산이 매봉재(151.8m)이다. 이 산을 ‘봉화산’이라고도 한다.46)

위치와 높이를 감안하면 이 산에서 불을 피울 경우 주변의 읍내리, 법곡리, 용화리, 신인리는 물론 온천리, 장존리, 좌부리 등 당시 온양면의 각 마을에서 볼 수 있을 만한 곳이다.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현재로서는 4월 1일 당시에 온양면에서는 이 매봉재 (봉화산)에서 불을 피우고 만세를 불렀다고 추정한다.

4월 2일과 3일에도 ‘각면 각리에서 오후 8시에 산 위에 올라 불을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야단’이었다고 한다. 온양면에서도 역시 그 이틀 간 봉화만세시위가 계속 되었을 것으로 본다. 매봉재(봉화산) 외에 인근 다른 산에서도 봉화만세시위가 전개됐을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까지는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 ▲서쪽에서 바라본 용화동 남쪽 매봉재(방화산)의 모습

ⓒ 온양신문

위에 나열한 기록 중 ‘2. 31일은 온양 북방 1리의 수개 소에 구화(.火)를 놓고 폭행하므로~’와 ‘6. 충남 온천리 부근 / 약 600의 군중이 소요~’라는 기록과 관련된 구체적 장소를 특정하기 어렵다. ‘온양 북방1리’의 대략적 위치는 읍내리를 기준으로 한다면 매봉재나 연산 일대가 된다. 온천리 일대를 기준으로 하면 1973년까지 탕정면에 속했던 권곡동, 모종동 지역이라 할 수도 있다.

김진호는 염치라고 했는데 같은 기록 중 발포가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봉화만세시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3월 31일에 약 600명이 봉화만세시위를 했고 일본군이 출동했다고 하는 ‘온천리 부근’에 대해 김진호는 특별한 언급이 없고 조형렬은 송악면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외지인의 기록이기 때문에 지명이나 거리 기록에 오류가 적지 않기는 하지만 송악 지역을 온천리 부근이라고 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며, 탕정면 지역이었던 권곡동이나 모종동 일대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아니면 더 넓게 보아 염치, 탕정, 송악을 포함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배방면 을 제외했다고 해도 2천500명과 600명이라는 숫자 차이가 문제가 된다. 현재로서는 명확히 어느 지역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계속>

임재룡 기자  skyblue62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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