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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각 지역의 3.1운동사(온양면)

온양면 지역의 3.1운동(2) 전형적인 만세시위

2018년 09월 14일(금) 15:34 [온양신문]

 

온양면 읍내리의 온양시장 장터에서는 3월 14일에 다시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틀 전인 3월 12일의 온양시장 만세시위와 다른 점은 주동자들이 있어서 사전에 미리 준비됐으며 기미독립선언서가 배포되고 태극기가 등장한 전형적인 만세시위였다는 것이다.

↑↑ ▲온양초등학교 역사관

ⓒ 온양신문

이 날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대표적 인물은 현창규였다. 현창규는 당시 23세로 온양면 신인리에 살았는데 서울에 올라가 3.1운동에 참여했다. 서울에서 당시 천도교 지도자(도사)였던 권병덕(權秉悳, 1968~1943)을 만났고 그의 권유 또는 지시로 온양에 내려와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고 전해진다.

그가 왜 서울에 올라갔는지 알 수 없다. 앞서 살펴본 송악 거산리의 박장래처럼 3월 3일로 예정돼 있던 고종의 장례식을 보기 위해 올라갔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참여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현창규가 실제로 당시 52세의 천도교 지도자 권병덕을 만났다고 한다면 그 사실 자체와 권병덕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후대에까지 전해진다는 점 등으로 보아 현창규가 천도교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에 갔다가 우연히 천도교 지도자를 만났고, 그렇게 만난 사람의 권유로 위험 부담을 안고 독립선언서를 받아 와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현창규가 서울에 언제 갔고 언제 온양으로 돌아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3월 11, 12일에 일어난 온양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와 관련해 그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없고 그와 관련해 추정할 만한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다. 그가 학생들에게 사주했다고 볼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3월 1일에 독립선언을 했고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며 학생들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줬을 가능성은 있다고 추정할 뿐이다.

현창규는 서울의 3.1운동에 직접 참여한 뒤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온양으로 내려왔다. 그는 같은 마을 신인리에 사는 서만수(徐萬壽, 당시 31세), 옆 마을 법곡리에 사는 권태원(權泰源, 당시 37세), 김치삼(金致三, 출생년도 불명)28) 등과 온양시장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했다.

서만수, 권태원, 김치삼과 현창규는 나이 차이가 적지 않다. 이들이 큰 부담과 위험이 확실히 예견되는 거사를 함께 준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인근에 살기 때문이라고 하기는 나이 차이 문제가 아무래도 어색하고 무리가 있다. 현재로서는 천도교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3.1운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세력이 천도교였으며, 신인리에서 북쪽으로 불과 2㎞도 안 되는 지점인 용화리 숫골에는 당시 온양 지역 천도교 지도자인 이규호(李圭鎬,1861~?)가 살고 있었고 온양의 각지에 천도교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창규 등 주동자들은 3월 14일에 온양장터로 가서 미리 준비해 온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만세시위에는 온양공립보통학교 학생 100여 명과 군중들이 참여했고 이들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날의 시위를 보도한 신문 기사는 ‘학생 100여명이 14일에 시장을 돌아다니며 한국국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던 중 시민들도 참가하여 시위운동을 했다고 한다. 기사의 내용 그대로라면 학생들이 주동자들과 함께 먼저 만세시위를 시작하고 주민들이 이에 호응해 동참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의 만세시위는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가 배포됐으며 수백 명이 참여했다는 기록으로 보면 학생들 외에도 일정 규모의 군중이 모인 상태에서 시위가 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배포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의 숫자, 태극기의 경우 서울에서 가져온 것인지 혹시 주동자들이 준비 과정에서 만든 것인지 등은 알 수 없다. 일부는 서울에서 가져왔다고 해도 온양에서 주동자들이 독립선언서를 베껴 쓰고 태극기를 그려서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와 관련된 사항들은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 ▲온양시장의 현재 모습

ⓒ 온양신문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은 신문기사 중의 ‘시민들’인데 시장에 있는 사람들, 즉 온양 시장에 있던 점포 등의 상인들과 근처의 주민들을 가리키는 정도의 의미로 본다. 그런데 이날은 온양 장날이 아니었다. 참여 인원이 수백 명이라고 할 때, 보통학교 학생 100여 명 외에도 적어도 100명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모인 셈이다. 외지의 장꾼들은 없었고 온양시장(장터)의 상인과 읍내리 주민들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전에 준비했던 점을 고려하면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산군지’(1983)에는 보통학교 학생 100여 명과 천주교 및 천도교 신자들이 합세해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고 기록돼 있다. 천도교 신자와 달리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파악되지 않는다. 이는 당시 매일신보 기사 제목이 ‘아산 예수교도 불온’으로 돼 있고 기사의 끝부분에 ‘공세리 야소교인 중에도 불온한 운동이 있었으므로’라고 되어 있어서 착오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참여했다면 개신교 신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온천리 헌병분견소 헌병 6명과 수비대 10명이 출동했다. 발포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희생자는 없었지만 그들에 의해 만세시위가 해산 당했고 수모자(주모자) 22명이 체포됐다.

3월 14일에 22명이 체포됐음에도 불구하고 이튿날인 15일에도 약 100명이 온양장터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현창규 등 주동자들은 이미 전날 체포됐기 때문에 15일의 독립만세시위는 누가 주도했는지, 학생도 참여했는지 등의 구체적인 사항은 확인되지 않는다.

특별한 점은 이날 시위 해산을 위해 출동한 군대와 관련된 사항이다. 14일에는 온양 이외에 영인면 아산리에서도 낮과 저녁에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밤에도 경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온천리 헌병분견소 헌병들 만으로는 시위 해산에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15일의 온양장터 만세시위는 보병의 응원을 받아 해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충청남도청관(도장관, 즉 도지사에 해당함-필자)의 청구에 따라 15일 오후 평안철도엄호대에서 아산에 장교 이하 10 명, 온양에 하사 이하를 파견했다. 이날 온양에 파견된 군대 병력이 몇 명이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전날인 14일의 시위 해산을 위해 출동한 헌병 외의 10명의 ‘수비대’가 15일의 평안철도엄호대와 동일한 것인지, 천안에 있던 철도수비대 병력이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병력인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15일 이후 소요가 진정되자 파견부대는 3월 17일에 철수했다.

임재룡 기자  skyblue62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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