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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지역의 3.1운동사(온양면-1)

최초의 거사, 온양면 지역의 3.1운동

2018년 09월 07일(금) 15:04 [온양신문]

 

초등학생들이 독립만세운동의 불꽃을 피우다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는 지난 2017년 10월 17일부터 2018년 4월 26일까지 아산지역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위한 학술조사용역을 완수하고 그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연구내용 요약과 주제별 연구로 구성돼 있는데 그 내용은 ▲총론:아산의 3.1운동 ▲아산시 3.1만세운동 전개 지역 ▲각 지역별 현장조사 ▲아산 3.1운동관련 인명록 ▲아산 3.1운동의 계승과 활용방안 ▲아산지역 3.1운동 관련 기념물 설치장소 조사와 부록으로 돼 있다.
본지는 이 보고서를 인용, 아산지역의 3.1운동사를 소개한다. 전편 촌론에 이어 이번 회부터는 아산시 3.1만세운동 전개 지역을 소개한다.


아산시 지역 3.1독립만세운동의 불꽃은 1919년 3월 11일 온양공립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해 처음으로 피어올랐다.

온양공립보통학교, 지금의 온양초등학교가 있는 곳은 속칭 구 온양, 즉 당시 아산군 온양면 읍내리였다. 현재 흔히 읍내동 또는 구온양으로 주로 일컫는 이곳 읍내리는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가 있던 읍치였다.

3.1운동 5년 전인 1914년부터 치소로서의 기능을 잃게 됐으나 읍내리가 오랜 기간 동안 고을의 중심지였던 상징성은 1919년 3.1운동 당시에도 당연히 강하게 남아 있었다.

한편, 온양군 관아가 폐지되기 6년 전인 1908년 6월에 읍내리의 온양군 객사 건물에 온양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됐다. 당시에는 인근 지역에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이 학교의 학구는 온양면·송악면·배방면·탕정면 등 4개 면 지역이었다.

그 때의 학교는 4월에 새 학년도가 시작됐기 때문에 3월 하순에 졸업식이 있었다. 3월 11일(화요일)과 12일(수요일)은 학년 말의 시기였다. 3월 11일에 온양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몰려나와 학교 운동장에 모여서 대한독립만세(혹은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자 당시 학교장이었던 구로기 요스케(黑木儀壽圭)가 학생들을 회유 또는 설득해 만세를 부르지 말도록 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일단 자진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해산하고 끝낸 것이 아니고 3, 4학년 학생들이 학생들이 동맹휴교를 하고 장날인 12일에 시장에서 모여 다시 만세를 부르기로 했다.

장날 시위 정보를 입수한 일제의 온천 헌병대(온천리 헌병분견소)는 반장(분견소장) 이하 13명이 출동해 11일에 읍내리에 임시 파출소를 설치하고 엄중히 경계를 했다. 그들은 현재도 남아 있는 동헌 건물 또는 그 주변의 옛 온양군 관아 건물을 임시 파출소로 이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공립보통학교 3~4학년 학생들이 동맹휴교하고 12일 시일(장날-필자)을 기해 운동을 개시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탐지한 온천리 헌병분견소는 학교 부근에 임시 파출소를 설치하고 학생들 여러명을 구타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들이 다음날인 3월 12일에 시장으로 모여드는 학생들을 구타하기도 하며 시위를 막으려고 했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월 12일에 온양시장에서 만세시위가 불타올랐는데, 매일신보의 보도에는 오후 1시에 마침내 30명의 학생들이 시장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자료에서는 오후 2시 30분경 학생 30여 명이 시장에 있던 200여 명과 합세해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활보했다고도 한다.

두 자료에서 언급한 시간이 좀 다르다. 어쨌든 전날 학생들만 학교 운동장에서 거행했던 만세시위가 아산시 지역 독립만세운동의 시작에 그 의미가 있었다면 이날의 만세시위는 장날을 이용하고 장에 있던 군중 다수가 참여함으로써 본격적인 만세운동의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12일이 장날이 아니었다면 200여 명 군중은 매우 많은 수라 할 수 있다. 당시 매일신보의 보도 내용으로 보면 3월 12일의 온양시장 독립만세운동으로 일제 경찰에 의해 검거된 인원은 4명이었다.

주민이나 장꾼들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고 ‘학생 30명’이 만세시위를 했다고 하고 ‘주모자 4명을 검거’했다고 했으니 그날 검거된 4명은 모두 온양공립보통학교 학생일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만 검거됐는지, 학생들이 검거됐다면 어떤 학생들이었으며 어떤 탄압을 받고 피해를 입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2일의 시위와 관련해 학생만 언급하고 4, 5명을 구류 처분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밖에도 학생과 주민이 함께 시위를 했으며 5명이 검거됐다는 자료, 6명이 검거됐다는 자료도 있다.

그때 참여한 주민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파악되지 않지만 장날 시장에서 일어난 이날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읍내리 외에도 인근 각지에 거주하는 주민이었을 것이다. 그들 중 나중에 신원이 파악되고 온천리 헌병분견소로 불려가서 태형 처분을 당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일제가 보도를 통제하는 가운데 3월 12일 일어난 온양 만세운동의 규모를 자의적으로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신문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날 참여한 학생 수도 30명보다 더 많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3월 11일과 12일에 전개됐던 온양 읍내리의 만세운동은 아산시 지역 최초의 만세운동이 었다는 점 외에도 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지금의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보통학교 학생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었다.

전국적으로 보면 3.1독립만세운동에 보통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예는 매우 많은데 온양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시위는 전국에서는 일곱 번째, 충남에서는 3월 8일의 홍성공립보통학교에 이어 두 번째 학교가 된다.

오늘날의 초등학생은 흔히 어린이라 부르며 어린 학생들로 여겨지는데, 당시 온양 공보생들이 주도적으로 만세운동을 하게 되었던 배경, 그것도 청년이나 성인들보다 먼저 시작한 배경이 매우 궁금하지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사주 또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할 만한 사항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에 대한 반발이 바탕에 깔려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단통치의 공포 분위기 속에서 당시에 시행되고 있던 일제 조선총독부의 제1차 조선교육령 (1911년 8월~1922년 2월)은 일제의 ‘충량한 국민을 육성’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일제의 지시에 잘 따르고 수탈 착취하기 좋은 식민지인으로 만들고자 함이었으니 한 마디로 우민화 교육이었다. 어린 학생들이었다 해도 그런 식민지 교육의 문제점을 느끼고 반감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온양 읍내리의 경우 동학농민전쟁 당시 온양 일대의 동학교도들이 붙잡혀 감옥에 갇히거나 재산을 빼앗기기도 했고 정부군에 의해 체포된 동학농민군이 온양군 관아 인근에서 처형된 일도 있었다. 불과 17년 전의 일이었다.

또한 온천리에 있던 조선 왕실의 온양행궁이 1904년에 약탈적인 일본인 자본가들에 의해 강탈되어 여관과 목욕탕으로 전락됐고, 그 인근에 일본육군병원 온양분원, 헌병 분견소 등 일제의 침탈 기구들과 각종 시설이 들어서면서 일본인들의 온천리 일대 거주가 급속히 확대되는 한편 온양군 관아가 폐지되어 읍내리 일대는 일제에 대한 거부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강하게 형성됐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온양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읍내리에만 거주한 것은 아니지만 인근 마을 거주 학생들 역시 그런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3월 1일에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시위 방식의 저항운동이 시작된 것을 학생들이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하는 구체적 사항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음에 살펴볼 3월 14일의 온양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현창규(玄昌奎, 1897~?)가 서울의 3.1운동에 참여했던 것은 확인된다.

송악면 거산리 출신으로 온양면이 아닌 공주에서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추진한 박장래(朴璋來, 1899~1940)도 서울에 가서 3.1운동을 목격하고 자신도 나서게 되었던 점이 참고가 된다.

온양 지역 유림 중에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고 확인되는 사람은 아직 없지만 서울에 다녀 온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밖에도 천도교도나 장꾼 등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의해 온양 지역에도 3월 11일 이전에 이미 주민들에게 서울과 각 지방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어떤 경로로든 만세운동의 소문이 지역에 퍼지게 됐고, 그런 소문을 들은 학생들도 자신들의 생각과 의지를 표현하고자 스스로 나섰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보통학교 학생들의 입학 연령은 ‘8세 이상’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나이가 더 많은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앞서 살펴본 박장래는 온양공립보통학교 제4회 졸업생으로 1914년 3월의 졸업 당시 나이는 16세였고, 온양장터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태형 처분을 받은 제5회 졸업생 방장근(方長根, 1900~?)도 1915년 3월 기준으로 역시 16세였다. 지금의 중학교 2, 3학년에 해당한다.

↑↑ ▲온양초등학교 9회 졸업생들

ⓒ 온양신문

온양공립보통학교의 만세운동을 주도했을 것으로 보이는 당시 최고학년인 4학년 학생(9회 졸업생)들 26명도 1919년 3월 11일 기준으로 한국식 나이가 평균 16.2세였다. 지금의 초등학교 학생처럼 ‘어린이’만은 아니었다. 당시의 취학학생은 상대적으로 소수였고 최소한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똑똑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의 여러 가지를 고려해볼 때 3월11일과 12일에 일어난 보통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시위는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 충동적으로 일어났다고 볼 수 없으며, 당시의 학생들이 뚜렷한 민족의식과 독립의식을 바탕으로 자발적, 주체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학생들 중 누가 주도적 역할을 하였는지, 만세 시위를 하자고 학생들이 뜻을 모은 것이 3월 11일 당일의 일인지 그 전부터 상의를 했던 것인지 등은 알 수 없다.

임재룡 기자  skyblue62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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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각 지역의 3.1운동사(둔포면) [임재룡] 기자

아산 각 지역의 3.1운동사(탕정면) [임재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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