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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지역의 3.1운동 100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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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지역 3.1운동의 배경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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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0일(금) 12:14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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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러, 일본 등 외세에 시달린 아산
의병·독립군지부 등 조직적으로 외세에 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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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온양신문 | | 3·1운동은 서울에서 독립선언서의 발표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독립운동으로 시작됐지만 각 지방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각 지방마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특히 아산지역에서는 반외세·반제국주의를 주창한 동학농민혁명이 있었다. 동학이 아산에 전래된 최초 시기는 안교선(安敎善)과 그 친인척들의 활동으로 보아 1880년대 초반에 어느 정도 세력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산은 내포지역과 함께 덕산 등지에서 활동한 덕의대접주(德義大接主) 박인호(朴仁浩)와 예산 등지에서 활동한 예산대접주(禮山大接主) 박희인(朴熙寅)이 이끄는 두 포(包) 소속이었으며 공주 교조신원운동, 보은취회를 거쳐 동학교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1894년 1월 고부봉기를 거쳐 3월에 전면 봉기한 호남 중심 1차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내포지역은 당진 합덕과 서산 원벌에서 부분적으로 봉기했으나 동학교단이 기포령을 내리지 않아 조직적으로 호응하지는 않았다.
전봉준 등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했고 청은 조선에서 일본에게 밀린 세력을 만회하고 종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파병했다.
청군 선발대는 5월 5일 아산 백석포에 도착했고 5월 7일 본진이 상륙했는데, 통령 섭사성은 보병 1천명을 거느리고 하륙해 아산읍으로 향하고, 마군(馬軍) 100명과 제독 섭지초가 거느린 보병 1천500명과 마군 150명이 하륙했다.
이때 청병의 아산지역 주둔은 지역민들에게 인, 물적 징발을 강요했다. 6월 27일 청군이 패퇴할 때까지 주둔한 청군에게 막대한 금액을 식비로 지급했고, 3만 2천918명이 군역에 동원돼 군역 대상자들은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군역으로 동원되는 부담을 강요당했다. 이때 우·마필의 먹이로 지급한 콩이 4만 4천678되로 248석 3두 2되나 됐다. 당시 생산량이나 5월이 춘궁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민들의 경제적 부담은 엄청난 것이었다.
청군이 아산에 진주하는 것을 사전 인지한 일본군은 5월 8일 인천에 정박한 군함에서 상륙해 곧바로 3천여 명 병력으로 서울에 진을 쳤다. 이후 6월 6일에는 고종에게 내정개혁안 5개조를 제시하는 등 내정간섭을 하다가 마침내 6월 21일에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갑오변란을 일으켜 김홍집 친일내각을 출범시켰다.
곧바로 일본군은 4천500명을 아산으로 출동시켰고, 6월 3일 아산 풍도 바다에서 청국 군함을 격침시키면서 청일전쟁을 개시했다. 6월 27일 성환 전투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청군 주둔지 아산현까지 들이닥쳤다. 패퇴한 청군은 온양을 지나 공주로 갔다가 청주 등을 거쳐 평양으로 패퇴했다.
일본은 아산만으로 개선해 백석포 일대에 웅장한 개선문과 환영장을 만들고 정부대표로 군국기무처 의원 이윤용(李允用)을 파견하고 강제로 주민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환영식을 거행하게 했다. 또한 아산리 산 위에는 ‘아산일청전적기념비(牙山日淸戰戰蹟戰記念碑)’를 건립해 위세를 떨쳤다.
청의 주둔과 청일전쟁의 전화(戰禍), 일본군의 횡포는 아산지역에 반외세의 감정을 갖게 했다.
특히 러일전쟁 기간에 유서 깊은 온양온천이 일본인 소유로 강탈당했다. 1904년 궁내부 허가를 빙자한 일본인들은 왕실의 휴양지로 온궁(溫宮)까지 건축해 운영하던 온천 시설을 모두 철거했을 뿐 아니라 인근 민가를 빼았고 토지 경작을 금지한 후 온천장을 신축했다.
대한제국의 외부(外部)는 온천의 운영권이 민간에게 있으므로 궁내부의 허가를 받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처사라며 엄중히 항의했으나 일제의 비호를 받은 일본인들은 이를 묵살하고 끝내 강점했다.
항일 의병 활동기에는 신창면 원당리 출신인 성재한(成載翰)은 1906년 3월 15일경 광수봉기 때 운량관(運糧官)으로 활동했다. 온양 출신인 곽한일(郭漢一)은 화서(華西) 계열의 유학자로 5월 28일 이후 조직된 홍주의진에서 활동하고 10월 민종식(閔宗植), 이용규(李容珪) 의진에 참모로써 활동했으며 11월 17일 이용규, 이남규(李南珪) 부자와 함께 체포됐다.
1909년에는 홍재선(洪在善) 의병이 온양 등지에서 활동했다. 일제 강점기인 1912년 11월 고종의 밀지를 받은 임병찬(林炳瓚)이 각처에 격문을 발송하고 1913년 2월 4일 아들 임응철(林應喆)에게 곽한일, 전용규(田瑢圭), 이명상(李明翔), 김재순(金在淳) 등과 협의토록 했다.
그는 3월 23일 이명상, 이인순(李寅順) 등과 논의해 각 도와 군의 대표자 302명을 선임했고, 충청도 대표로는 유준근(柳濬根), 각군 대표자로 43명을 선정해 독립의군부를 조직했다. 온양 대표자로는 이붕렬(李鵬烈), 유진원(兪鎭元)이 선임됐다.
독립의군부는 전국의 각군에서 일제히 국권 반환과 일본군 철수를 요구하는 장서투서운동을 전개하고자 했고 거사 2일 전에 각 군의 사직단 터에 태극기를 게양해 민심을 움직이고 투서한 후 향약을 실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원대표 김창식(金昌植)이 청양에서 체포되고 조직 일체가 일제에게 탄로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한편 1916년 7월 김경태(金敬泰), 김재창(金在昶)과 함께 부여 이철영(李哲永) 집에서 조선총독의 부여 시찰 정보를 입구하고 총독과 고관을 처단할 계획을 추진하다 실패하고 피신해 있던 김한종(金漢鍾)은 1917년 채기중(蔡其中)의 소개로 박상진(朴尙鎭)을 경주에서 만나 대한광복회에 가입하고 충청도지부장이 됐다.
그는 장두환(張斗煥)을 가입시키고 예산, 홍성, 청양지역을 중심의 회원을 모집해 60여명에 달한 대한광복회 충청도지부원을 확보했다.
회원으로 아산지역 인사는 강석주(姜奭周), 강정균(姜正均), 성달영(成達永), 성문영(成文永), 신태응(申泰應), 이각렬(李珏烈), 이종대(李鍾大), 정우풍(鄭雨豊), 조병하(趙炳夏) 등 9명이다.
강석주는 인천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충청도지부의 군자금 모집, 자택에서 도고면장 박용하(朴用夏) 처형을 위한 사형선고문 작성, 박용하를 처단한 김경태의 은신과 도피 자금 제공 등에 활동했다.
성달영은 홍주의병에 참가하였고 군자금 모집에 활동했다. 이어 천안으로 이사해 천안 거점을 확보하고 박용하 처형을 위한 모의와 처단 당일의 거처 장소를 제공했다.
충청도 지부는 160여 통의 고시문을 발송하는 등 군자금 모집에 노력하는 한편 도고 주민들을 괴롭히는 친일면장 박용하를 처단했다. 김한종은 장두환에게 박용하의 처단을 설명해 동의를 얻었고, 장두환은 김경태에게 실행을 지시했으며, 김경태는 임세규와 성문영 집에서 사형선고문에 박용하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이들은 박용하의 집으로 가서 의연금을 내겠으니 연기해 달라는 박용하를 처형했다.
이상과 같이 반침략·반외세의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의 피해, 온양온천의 강탈, 항일의병활동, 독립의군부의 조직, 대한광복회 충청도지부의 활동 등은 아산지역에서 항일 의식을 형성하는 기반이 됐고 이를 통해 항일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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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룡 기자 skyblue6262@naver.com “지역정신 온양신문” - Copyrights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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