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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메아리 리 한 구 본보대표이사 물의 교훈 우리 인간은 항상 물을 접하고 살고 있지만 물의 고마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물이 없으면 식물이나 동물들은 죽는다. 또한 물은 우리에게 말없이 많은것을 가르켜 준다. 첫째 고지(高地)에서 저지(低地)로 흐르며 때로는 수평(水平)을 이루는것이 본성이다. 사랑은 위로부터 아래로 시헤(施惠)하며 아래는 위에 대하여 경위(涇渭)지심으로 공손(恭遜)함을 표시하고 생(生)에 관한 가치관은 만민이 평등하다. 사람아래 사람없고 사람위에 사람없는것과 같이 다 똑같이 평등하다. 허나 인위적 작용에 따라 지나치게 상하를 구별하고 아래를 무시하는 습성이 오래전부터 누적된것도 사실이다. 둘째 물은 한울에서 내려 강산에 있는 삼라만상의 생명을 소생시키고 방울방울이 모여 흐른다. 흐르다가 장애물이 있으면 그것에 대항하지 않고 피해서 옆으로 흐르며 아주 막히면 수평을 유지하면서 땅속으로 스며들고 허약한 지층을 요리저리 해처가며 지상으로 용출(湧出)하기도 한다. 때에따라 낭떨어지가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폭포수가 되어 점점 바다쪽으로 향하여 흘러간다. 인간들이 생활함에 있어 여러가지 고충이 있는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때로는 어려움을 피해가기도 하고 때로는 비장한 결심으로 단안을 내야할때도 있다. 물은 참으로 부지런하다. 인간도 물과같이 부지런해야 하거늘 불로소득(不勞所得)만 하자는 무리들이 있다. 셋째 물은 실개천에서 하천으로 하천에서 강(江)으로 강에서 바다로 흘러가는데 바다는 강물이 아무리 많이 흘러들어와도 오지못하게 거절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씨는 협소하여 자기기분에 상치되면 거절하는것이 일수다. 천지공도(天地公道)에 준하는 인간 공도(人間公道)가 있는데 이 인간공도에 위배되지 않는한 거절하거나 기피(忌避)할 이유가 없다. 평소생활 정치에 있어 풍수해(風水害)에 대한 특단(特段)의 조치가 사전에 없는한 거대한 홍수의 급류를 인간의 “힘”으로는 막지못한다. 바로지난해 2002~03년에 관동지방에서 발생한 홍수사태가 그것이다. 급히먹는 음식에 “체”한다는 말도있으며 졸부귀불상(猝富貴不祥)이란 말도있다. 보수와 개혁 모두가 당위성 있는 주장이지만 그러나 급진적 개혁은 홍수의 급류(急流)로 주변 류역(流域)이 황폐화(荒廢化)되듯 국민의 생활에 혼탁이 있을까? 우려된다. 서서히 차근차근 추진하는것이 무엇보다 상책이라고 본다. 현재의 개혁주장은 덕치시대로 가는 새로운 철학이 없다. 다만 과거와 유사한 잘못된 전철을 답습하고 그주변을 맴돌이 하고있는 인상이다. 욕심이 전제된 사람들이 자기욕구에 장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상대를 격멸(擊滅)하고 심지어 살해까지 하는 습성이 만연하고 있다. 공중전화를 오래한다고 하여 여학생을 살해까지 하는 세상이 됐다. 물은 흔들리면 흙탕물로 변하고 흙탕물이 되면 물속을 볼수 없다. 그러나 물이 요동하지 않고 조용하면 거울처럼 맑아지고 맑아지면 투명하여 물속사정을 이것저것 관찰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같이 어떠한 사정에 따라 마음이 동요하고 마음이 심히 동요하면 마음이 탁해 진다. 마음이 탁해지면 사리판단을 하지 못함은 물론 선악과 이해득실의 판단이 흐러질뿐만 아니라 자칫 판단을 잘못하면 일생일대의 중대한 일을 망칠 수도 있다. 동요하는 마음을 나름대로 안정시키는 방법은 수양과 수도를 하여 무아무욕의 경지에 들어가는 즉 마음을 비워(空)야 한다. 알고보면 역대의 위인들이 마음공부(心學)를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볼수있는 물은 양수고 볼수없는 공기는 음수다. 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고 지상의 동물은 공기를 떠나면 죽는다. 물은 우리 인간에게 좋은 교훈을 줄뿐만아니라 생명의 근원이다. 때문에 물을 무시하지 말라. 동학계(天道敎)사람들은 매일 오후 9시가 되면 청수(정안수) 한그릇을 봉존(奉尊하고 기도를 한다. 물에는 산해진미(山海珍味)가 그속에 다 있으며 만물의 생명이 그속에서 약동(躍動)하고 있음을 헤아리고 생각하고 생각하게 된다. 동학의 2세 교주인 해월 최시형 선생은 백여년 전에 말하기를 빨래하는 표모(漂母=여인)들은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도 아껴써야 한다고 했다.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삼경사상은 자연보호의 원리라하겠다. 또한 제사때 제물을 진설하지 않고 청수 일기만 봉존하고 추모의 정을 표하는 묵염을 한다. 제물을 진설할때는 향벽설(向壁設)이 아니라 향아설(向我設)을 한다. 유교의 습성으로 보면 이상하겠지만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는것은 벽의 지방이 아니라 바로 자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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