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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양준호 회장이 떠난 무척 큰 빈자리 연초에 작고한 고 김동직 전예총아산지부장은 아산예총사(99년말 발간)에서 이번에 작고한 고 양준호 전 경남제약 회장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당시(80년대 후반) 이 고장 예술활동을 살펴보면 현재 수필가로 활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음악, 미술 등 예술 전반을 섭렴하고 계신 양준호 선생께서 미술동호인을 규합하여 ‘일요화가회’를 조직하여 이 고장 예술의 체면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 다른 분야는 동호인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양 전 회장의 기업가적 성공담이야 이미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일찌기 50년대 후반 ‘의약품 구하기가 어려운 그때 약학을 전공했던 내게 있어 제약이야말로 애국애족하는 길이라 확신’하고 지역에서 경남약국 문을 열고 제약업에 매진했던 것이다. 양 전 회장의 이러한 창업의지를 담은 경남제약은 이후 ‘티눈스립과’와 ‘레모나’ 등 지금도 국민 각계각층에서 희자되고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국내굴지의 제약회사로 성장하여 지역경제 뿐만 아니라 국가의 제약산업에도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기업인 양준호’의 면모지만 ‘문화예술가 양준호’의 또다른 면모는 그가 왜 여러 방면에서 흠모를 받고 있는지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가 남긴 작품집 ‘흔적’에서 보면 이미 55년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자신을 그린 자화상이 보이고, 이에 앞서 54년에는 네칸짜리 만화도 보이는데다가, 63년엔 동생과 함께 만돌린 연주회를 연 사실이 그가 직접 기록한 연보에서 나온다. 뿐만 아니라 97년엔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으로 문학까지 섭렵한 말그대로 팔방미인 문화예술가의 경지를 넘어선 것이다. 양 전 회장이 존경을 받는 이유는 이런 주목받는 문화예술가의 길을 걷되 개인의 명예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드러내놓고 무슨 무슨 기관이니 단체에 속해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고 오로지 뜻이 맞는 몇몇이 모여 취미생활이나 혹은 여가선용적인 측면에서 조용히 작품활동을 해왔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열악한 지역 문화예술의 저변을 간파하고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매년 문인협회에서 발간하는 동인지 설화문학을 보면 뒷면에 항상 경남제약 제품광고가 들어가는데 이것이 바로 광고형식을 빌은 양 전 회장의 따스한 마음 씀씀이였던 것이다. 그가 떠난 빈 자리는 너무나도 크다. 특히 아직도 열악한 환경과 의지부족으로 스스로 서지도 못하는 지역예술계를 생각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그의 타계는 암울한 전조로 여겨진다. 특히 연초에 지역 예총 창립에 결정적 토대를 놓았던 김동직 전 지부장이 작고하더니 이번엔 양 전 회장마저 떠난 아산예술의 반자리는 너무도 휭하다. 편히 쉬시라 말은 못하고 아직도 아랫세상 굽어 보아 주시라는 기구로 맺는 이 글 자체가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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