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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택시영업권은 생존권이다 천안지역 택시업계의 뻔뻔한 정도를 보면 어안이 벙벙해 진다. 이것이 법치주의 국가에서 상대편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문명인들의 소행인지를 의심케할 정도다. 남의 땅에 와서 역사를 자기이름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하더니 이제는 개통식을 열고 잔치를 열겠다며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하는 저의에 무슨 망령인지를 모르게하고 있다. 남의땅에서 개통식을 하겠다는 천안시의 주장에 충남도는 ‘사이좋게 같이하라’중재했다는 소식에 충남도의 중재노력은 그야말로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는 충청도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탁월한 능력의 중재라고 비웃음을 사기에 딱 알맞춤이다. 왜 원칙을 두고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지 한심하기 그지 없다. 이를 두고 전영준 사수투쟁위원장의 비유가 걸작이다. ‘격앙된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데놓고 노래하고 춤추라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천안의 몰염치에 충남도의 ‘좋은게 좋은거’라는 식의 중재능력이 양자치단체간의 감정의 골만 깊게 패어가고 있다. 가뜩이나 역명칭으로 격앙된 시민의 정서에 택시영업권 주장으로 기름을 붓더니 개통식도 같이하라는 몰인식의 정도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월급이 아까울 따름이다. 이러다가 택시 영업마저 둘다 같이 하라고 하지 않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식이다. 택시영업권은 단순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에 관한 문제이며 명백히 존재하는 실정법상의 명시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겨가며 자신의 이익만을 쫓겠다는 행동은 제국주의적 포장된 야만 속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지자체의 질서는 물론이고 사회적 토대마저 붕괴하는 행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두차례에 걸친 아산지역 운수종사자들의 결연한 생종권 사수의지를 정확히 인식해야 충남도의 최소한의 존재 이유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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