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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메아리 리 한 구 온양신문 대표이사 온궁복원은 이순신장군정신 되살리는 길 “온궁”은 우리나라의 귀중한 사적지다. 조선조의 태조대왕, 태종대왕, 세종대왕, 세조대왕, 장조대왕(사도세자), 정조대왕께서 내왕하신 온궁이다. 절대적인 사적지가 일제로부터 강탈당한 수모를 설욕하고 복원하여 뒤 사람들에게 국가의식과 민족의식을 확실히 전해주는 것이 현재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하겠다. 일제는 1904년(광무8년) 7월 4일 ~ 1905년 8월 5일까지 약 1년동안 일본인 불량배 13인을 교사(巧詐)하여 온궁을 강점하고 운현궁 기지라고 억지 주장하면서 표목(標木)을 세우고 온궁 대문에 ×字로 횡목(橫木)하고 쇠 쪼각을 겹쳐대어 조선인 출입을 못하게 했다. 운현궁 기지로 착각한 그들은 뒤늦게 제수사(足齊壽社) 기지로 개칭하고 이 지역 주변의 주민 이좌형(李佐衡), 박봉교(朴奉敎)등의 가옥을 강제로 철거케하고 온양군 서면 온천동 동장 정성호(鄭成好)와 주민 이승삼(李升三), 김수성(金修聲), 예종석(芮宗錫)등의 경작 토지를 강제로 빼앗아 양도 받은양 합법을 가장하고 온궁주변 토지를 이런 방법으로 탈취 했던 것이다. 일본인들의 불법 행위에 대하여 당시 온양군수 권중억(權重億)은 상부(중앙)에 보고하고 수차 조치를 구했다. 이 보고를 받은 외무대신 이하영(李夏榮)과 궁내부대신 이재긍 그리고 전임 외무대신 민병석(閔丙奭)과 전임 궁 내부대신 민치호(閔致昊)등은 일본인들에게 온궁 사용인가를 해준 사실이 없다고 했다. 다만 온양의 행궁은 5백년간 수호한 곳으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엄숙한 곳을 함부로 침범 하느냐?고 일본공사에게 항변 했다 한다. 그러나 친일 내각의 중심 인물들은 무 반응이였다고 한다. 이와같은 사실은 규장각 문헌에 상세히 명시된바 있다.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사적인 온궁을 점진적으로 헐어내고 우리문화를 말살하고 자기들 취향대로 새로운 건물을 신축했다. 신축건물에 신정관(神井館)이란 간판을 내걸고 방축동에 있는 마산(馬山) 저수지를 신정관의 부설 유선장 지역으로 조성하여 그곳을 신정호(神井湖)라고 했다. 마산 저수지 중앙지점에 마산이라고 하는 부락이 있었으나 저수지로 수몰되고 그 부락명을 따서 마산 저수지라고 했다한다. 지금도 각 지도에 표시된 이름이 마산저수지로 명기하고 있다. 또한 이곳 행정 구역 명칭은 방축리 또는 방축동이라고 했는데 예전에는 바다의 조수가 점양리를 거쳐 초사리 앞까지 드나들고 주변 전답이 포락됨으로 방축(防築)을 해야함으로 부락이름을 방축리(방축동)이라고 했다. 1986년도 온양시로 승격되면서 원래 명칭을 버리고 신정관과 신정호 명칭을 인용하여 신정동이라고 했는데 신정과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 지명은 그 지역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신정동”이라고 개칭 한것은 잘못된 지명이다. 요즘 관계 공무원들이 얄팍한 상식으로 살펴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지명을 요리저리 개칭하는 버릇이 있어 문제다. 그래서 역사의 “뜻”을 소멸 시키고 있다. 신정동이라고 개칭한 것은 치욕적인 왜색을 탈피하지 못한 일본 의지를 그대로 받아들인 꼴이다. 온궁에는 진짜 “신정비”가 있으며 이비에 의해 “신정관”이라고 왜놈들이 명의를 도용한 것이다. 1904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백년동안 “온궁” 사적지에 관하여 공식적으로 거론한 흔적은 찾아 보지 못했다. 다만 야사적으로 일부 유지들이쑥덕쑥덕 말을 한것 뿐이다. 얼마전에 도의원 김광만씨가 온궁터를 사적지로 지정해 줄것을 관계당국에 공식으로 품신했다는 소식이 있다. 뜻한대로 사적지로 지정될것인지? 알수없으나 공식으로 요청했다는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며 우리는 박수를 보낸다. 사적지로 지정될 경우 주변 2백m 이내의 사유재산은 재산권 행사에 제한을 받게 된다고 일부 주민들이 반대 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 준하여 상응한 보상이 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시 당국도 이에 관하여 찬성 쪽으로 확실하게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우물쭈물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온적 의사표시를 했다하니 흐뭇하지 못하여 섭섭하기까지 하다. 온궁이 사적지로 지정되고 부활한다면 관광온양의 역사와 명성은 확실할것이다. 복구비 90%가 국고 보조라면 시 당국이 확실하게 추진을 희망한다고 해서 손해 볼 일이 있는가?말이다. 매년 행하는 4·28은 이순신 장군의 탄신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인지? 행사 자체를 하기위한 행사인지 알송달송하다. 이순신 장군의 탄신 기념과 더불어 그 어른의 충절의 “뜻”과 배일정신을 본받고 그 “뜻”을 승계받아야 할 것이다. 분명 그 어른은 왜적이 쏜 총탄을 맞고 전사하셨다. 그러한 일본이 대륙정책의 야심으로 야기한 청일전쟁에서 승전한 지명 “아산”을 영원하기 위하여 선호한 곳을 아무런 비판과 생각없이 도리어 덕수이씨 문중일각과 주체성 없는 일부 시민들이 아산명칭을 취택하려함은 이순신장군의 정신과 모순된 일이라 하겠다. 지명이 나쁘고 미운게 아니라 일제의 침략 행위가 미워서 하는 말이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극심한 피해를 당했음을 망각한것 같다. 역사의 자취를 살피지 않고 지역적 이기주의에 쏠려 덮어놓고 주장한 것이 도리어 역사적 울분과 한(恨)을 외면했다고 볼때에 오늘의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영혼을 무엇으로 위안해 드려야 할지 송구스럽기만 하다. “온궁”사적은 수원의 사적보다 몇배 더 크고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동안 외면 했기 때문에 낙후됐다. 이 책임은 온양의 우리에게 있음을 통감해야 한다. 전번에 밝힌바 있지만 한일합방후 일제는 온양군과 신창현 아산현을 강제로 통합하고 통합된 명칭에서 온양명을 배제하고 자기들이 야기한 청일전쟁에서 승전한 아산명을 취택하여 아산군이라고 했다. 일제는 온양의 “온궁”문화와 역사를 의도적으로 말살하기 위한 작위적 자취가 분명했다. 1995년도 온양시와 아산군이 통합할 당시 아산군 의원들이 온양을 배제하고 아산시 명칭으로 경정한것은 마치 일제의 의지(意志)를 비판없이 그대로 승계 받아 주장한 꼴이 됐다. 아산은 아산이고 온양은 온양이다. 아산이 온양이 될수 없고, 온양이 아산이 될수 없다. 이것은 각자가 알고 있지만 옮길수 없는것이 이치(理致)다. 한끼 굶어 배고픈 것은 알고 있지만 정신 배고픈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이라 하겠다. 성령과 육신은 나눌수 없는 하나다. 어느 한쪽이 없으면 그것은 “곳” 죽음을 의미한다. 정신 차리지 못한 우리는 껍대기만 있는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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