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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가 우리의 구심체다” 종교인이 명예와 부, 권력을 추구하면 비참한 결과 초래 역동하는 아산, 비전은 무엇인가 인취사 혜민스님 우리 민족이 가야할 좌표들이 항상 마음을 사로 잡고 있었는데… 글쎄요? 예를 들어 봅시다. 인체 해부학적으로 사람이 다 건강한데 어느 한군데가 병이 들었다고 하면 말이 안되죠. 사람이 죽어갈때 의사가 진단을 내리지만, 폐가 나쁘다든지 어느 기관이 나쁘다고 합시다. 그러면 세포막을 희생시켜 한곳으로 몰아 넣어 건강을 회복할려고 합니다. 더이상 쏟아 부을게 없을때 죽어갈 것입니다. 국가의 경제, 문화,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따로 떼어 놓고 발전시킬수는 없는 것입니다. 온양이라(아산)는 지역만을 따로 떼어 놓고 발전시켰다고 봅시다. 전체적인 모양새가 우스울 겁니다. 까뮈의 작품속에 오랑이라는 도시가 흑사병으로 외부와 폐쇄되다보니 오랑이란 도시는 온갖 알력이 파생되게 되었죠. 정상적일때는 모든것이 순조롭게 돌아가지만 비정상적일때는 서로를 물고 뜯는 괴리가 있게 되죠. 권력부리며 외치는 이웃 돕기는 무의미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해야 되는 일과 우리 민족이 가져야 되는 마음가짐 -우리 민족이 해야 되는 일이 참 많습니다. 정치·경제·문학·국방등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것민이 살아 남는 길입니다. 뭉칠려고 할때는 그 어떤 구심점이 있습니다. 역사, 문화의 구심점으로 뭉쳐야 합니다. 얼마전에 온양온천역 광장에서도 촛불시위를 했죠 종교적인 엄숙함까지 서려 있는 촛불시위는 참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문화적인 긍지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머리는 노랑색 빨간색으로 물들이고, 가슴에 성조기가 그려진 티셔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서 젊은이들이 외쳐대는 소리는 무엇일까요? 현란한 간판, 외국 근로자들에게 주었던 어려움들, 그 모든것들이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남게 됩니다. 「통일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전쟁을 피해야 하고 전쟁없는 평화통일을 이루어 세계 인류 평화에 기여해야 합니다.」 ‘통일은 대륙 민족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한 시작이다.’ 오천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 대륙을 호령하던 민족이었는데 우리는 설움을 가진 과거가 있습니다. 이 설움을 우리 후손에게는 물려 줄 수 없습니다. 통일의 구심점으로 뭉쳐야 합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보다 더한 우리는 배달민족입니다. 그런데 배달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나 철학이 없습니다. 우리들 가슴에 와 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7천만 우리 민족이 하나됨을 보여 줄때 통일은 자연적인 것입니다. -통일은 국민 모두가 원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쉽지 않은 부분이죠. 뭉쳐야 되는 것도 이론상으로 잘 알지만 생활속에서 실천 되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남여 두사람이 가장 행복한 관계라면 한없는 존경심이 참으로 중요하다. 조국이 통일되어 비단 이불 덮고 자겠다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주고 생명까지도 기꺼이 줄수 있는 존경심이 있을때 아름다운 사랑인것입니다. 조건과 이유가 있을때 서로간에 금이 가고 불행해질수밖에 없습니다. 소유욕을 가지려는 사람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부처님의 경우는 그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엘리트였습니다. 엄격한 계급사회인 인도에서 모든것은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모든 영화를 버리고 수다라(천민)을 받아들여 제자로 삼았으며 평생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인도는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성제가 남아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지배욕 때문에 그렇습니다. 종교인들이 명예와 권력과 부를 추구한다면 가장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부자를 원한다면 부자로 살아야죠. 부의 축적을 가장 멀리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종교적인 탐욕을 버리고 사회를 병들고 썩게 하고 수렁에 빠지기 쉬운 것들로 하여금 싸워 이겨야 합니다. 편하게 살면서 어찌 그들과 함께라 할수 있나 탐욕을 버릴줄 아는 지혜를 가진 종교인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실상 많은 사람들이 종교인을 따라 비슷한 생활을 할려고 노력하고 있잖습니까? -조국이 통일 되기전에는 절대로 이불을 덮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이불을 덮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주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요? 10년전에 어느 절에서 이불을 보내 왔기에 그냥 다락방에 넣어 두었죠. 그런데 쥐가 아방궁을 차린거예요. 그 이불속에서 새끼까지 함께 살더라구요. 그래 너라도 잘 먹고 잘 살거라 하고 그냥 두었어요. 이불은 덮지 않아 춥지만 감내해야 되겠죠. 아픔을 같이 나눠야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편하게 살면서 어찌 그들과 함께라는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국이 통일되어 비단 이불을 덮고 자고 싶습니다. -제자리에 앉아 있는 종교인들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요? -왠지 인스턴트 인생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철학도 없고 역사도 없는듯 종교인들이 부를 축적하고 탐욕을 가지면 않되죠. 허구나 위선으로 쌓여 있으면서 부르짖는 불우이웃돕기 찾아내는 수고도 없이 앉아서 누릴 권력을 다 누리며 외쳐대는 불우이웃돕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종교인이 위선자가 되서는 안된다 슈바이쩌 박사는 의사이면서도 파이브 올겐 제작을 했습니다. 성당을 찾아다니며 연주도 해주고 올겐 수리도 무상으로 해주는 실천이 있는 성자였습니다. 종교인은 예수를 대신해서, 혹은 부처를 대신해서 살아야 합니다. 위선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곳 인취사에는 연꽃이 많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종교적인 의미가 있나요? 불교하면 연꽃을 떠올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흙탕물에서 나와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연꽃이 참 좋습니다. 연뿌리 3개로 시작 된것이 지금은 연꽃 군락지가 되었습니다. 연꽃차 보급에도 정열을 쏟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고 모든것은 자연으로 귀의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바칠수 있는 신앙, 아무 미련없이 바치고 싶습니다. <박선자기자> 인취사를 나서며 연꽃이 만발했을 연못들을 둘러보며 스님께서 따라 주셨던 연꽃차의 향을 다시한번 음미해 본다. 어찌도 그리 작은 체구에서 세상을 호령할 듯한 정열과 위엄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 흠뻑 취해 한글자 한글자 비문 작업을 하시는 스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스님께서 들려 주신 싯귀를 머릿속에 되뇌어 본다. 거기에 있었네 세월이 가버린 줄 알았는데 거기에 있을 줄이야 물잠자리, 물방개 다, 거기에 있었네 가물거리던 그 모습들이 그대로 있었네 누가 세월을 유수 같다 했던가 그속에 모든것이 그대로 인것을 본래부터 그자리인것을 -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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