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천동 메아리리 한 구 본보 대표이사 민족관이 살아있는 아산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현실 문제에만 치중하다 보니 민족사의 과거사나 미래에 관한 생각을 아득히 망각 했거나 심려할 여유조차 없는듯 했다. 복잡한 생활과 어려움 속에서 이것 저것을 하다보니 그럴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아산은 타 지방에 비하여 애국애족한 선열들의 행적이 대단했음을 뒤늦게나마 알수 있었다. 즉 충청지역 독립운동사 학술회에서 김진호씨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3·1독립 만세 운동 당시 애국 운동을 하다가 왜경과 일본 헌병으로부터 검속되어 고문, 또는 투옥되고 형무소 생활까지 당한 사람이 선장면에서 무려 115인이요 송악면에서 41인이요 온양에는 18인 아산(영인)에서 17인 염티에서 2인 인주에서 1인 신창에서 1인으로 나타 났다. 이러함에도 이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았으며 전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일제시대 때의 문서에서 밝혀진 것이다. 가장 인원이 많았던 선장면은 만세운동에 앞장서고 30개월간 형무소 생활을했던 규암 정규희 선생외 몇 사람만이 세상에 알려진것 뿐이다. 금년봄 선장면 일부 유지들이 민간적 차원에서 3·1만세 운동을 전개했던 선장 장날인 4월 3일에 비석을 세우고자 했으나 시의원 선거로 인하여 연기되고 8·15경축일을 기하여 다시 입비할것을 택일 했으나 시의원 선거 와중에서 발생한 시시비비와 기타 의견상충으로 무산됐다. 참으로 떳떳하지 못한 일이다. 민족과 국가 그리고 조국의 장래를 위해 뒤사람들에 대한 계도와 교육적 목적으로 “꼭” 추모해야할 중대한 문제인데 개인적 입신양명 문제등으로 시시비비 하다가 무산됐다면 마치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젯밥”에만 마음이 있는 듯 한 “꼴”이다. 천안의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했다는 “류관순”열사에 비하여 뒤지지 않는 선장의 만세운동이였다. 그동안 교육계나, 행정기관 그리고 문화제 관계기관에서 외면한채 긴 세월을 그대로 보낸점이 한없이 부끄럽다. 뒤늦게나마 아산시에서 민간유지들의 “뜻”을 받아들여 3·1만세운동 기념비 입비사업에 참여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시작이 곧 성공이란 말이 있다. 아무쪼록 민, 관이 일체가 되어 교육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에 사는 우리들의 절대적인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민족관 없이는 조국관도 없다. 민족관 없이는 국가와 자기조상과 자기자신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합중국이 아니라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