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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학 리더십 칼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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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28일(수) 13:48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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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완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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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영관(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장, 관광경영학과 교수) | ⓒ 온양신문 | 현충사의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한 이순신장군의 활약상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물들을 살펴보면 장군의 흔들림 없는 애국정신과 투혼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맞춤형 전법으로 왜군을 대파시켜 불패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아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병법의 기본원칙을 중시했다.
지형지물을 신출귀몰하게 이용했던 이순신의 빼어난 지략은 상상만으로도 리더십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장군은 한산대첩에서는 학익진전법을, 명량대첩에서는 일자진전법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근원적인 원인은 세종 사후 후계구도의 극심한 암투로 인해 조선의 국력이 급격히 약화된 것과 무관치 않다. 세종의 뒤를 이어 문종이 즉위했으나 2년 3개월 만에 병사하자 1452년 5월 단종이 12세의 나이로 보위를 물려받았다.
세종의 둘째아들 수양대군은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권과 신권을 장악하고 단종을 상왕으로 밀어냈으며, 1455년 6월 스스로 왕이 되었다.
세조의 쿠데타는 명분이 약했다. 충직한 신하들은 물론이고 백성들이 불만을 표출하자 세조는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세조 일당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가며 그들의 탐욕을 채워나갔다. 그 과정에서 조선왕조의 정통성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후 조선의 왕권은 쉽게 안정되지 못했다. 선조 대에는 훈구세력과 외척들을 대신해 사림세력이 조선왕조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붕당정치는 정치노선을 달리하는 신하들 간의 대립이었지만 최고 권력자인 왕이 신권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장한 측면도 있다. 문인들이 정치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자 무인들의 홀대는 심화되었고, 조선의 군사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사회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조선은 일본에 적수가 되지 못했으며 20일 만에 수도 한양이 함락되자 선조는 북으로 피난했고, 6월에는 평양마저 함락당해 선조 일행은 의주성으로 황급히 달아났다. 다행히도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있던 이순신장군은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전세를 조금씩 반전시킬 수 있었다.
이순신은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부임했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이었다. 평소에도 주변국의 정세파악에 집중했던 장군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자마자 조선 수군의 전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친화력의 달인이었고 장졸들과 지역주민은 물론이고 그를 아끼는 한양의 관료들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장군은 조선 수군의 전력이 왜군에 비해 열세였던 상황 하에서 적군의 동태 파악에 집중했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완벽한 전략을 수립한 후 전쟁에 임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첫 번째 승전보를 올린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한산대첩에서는 거북선을 투입하여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승리를 일궈냈다.
장군이 중시한 전략은 승리를 위한 완벽한 해법이었다. 이순신은 전쟁을 할 때마다 적군이 대응하기 어려운 독창적인 전법으로 왜군과 싸웠다. 그는 적군이 불시에 급습하면 후퇴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후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지 않는 것이었다.
명량대첩에서는 13척으로 압도적인 전력으로 무장한 왜군 전함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을 만큼 이순신의 전략은 주도면밀했다. 장군은 자신의 존재를 적군에게 과시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다. 그는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 비책을 세웠지만 장졸들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 그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할 수 있다면 의로운 일이라고 역설했다. 마침내 장졸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전쟁에 임했고, 13척의 조선 함대를 얕잡아본 왜의 수군 함대는 울돌목으로 겁 없이 밀려들어왔다. 울돌목의 거센 물살에 왜의 전함들은 순식간에 통제력을 상실했다. 조선 함대는 기진맥진해진 왜의 함대를 향해 포문을 열었고, 명량대첩은 조선 수군에게 통쾌한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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