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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늘 어버이날에

2017년 05월 08일(월) 17:23 [(주)온양신문사]

 

↑↑ 강태혁(국립한경대 교수)

ⓒ 온양신문

‘어버이 날’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73년이었다. 당초 ‘어머니 날’로 기념하던 5월8일을 양성평등(?)의 주장에 따라 그 이름을 ‘어버이 날’로 바꾸었단다. ‘어머니 날’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56년이라 하니 이제 환갑이 지났다.

그 세월이 내 나이만 하다는 생각에 미치자, 내 어버이의 지난 삶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우리 세대에게 어버이는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어버이 들은 불운의 세대였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 나라는 남의 통치 아래 있었다. 어려서부터 그들은 내 땅에서 남의 나라처럼 살았다. 남의 말을 익히고 남의 글을 배우면서 학교를 다녔다. 아직도 말하다 보면 일본 말이 먼저 머리에 떠오르고 입가에 가물가물 맴도는 이유다. 까닭 없이 주눅 들고 이유 없이 매 맞으며 뜻 모르는 기미가요를 부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천왕폐하 만세를 외쳐야만 했다. 그래야 살아갈 수가 있었다. 그러니 불운한 세대였다.

이들은 갈등의 세대이기도 하다. 학교는 방향 없는 애국과 충성을 가르쳤다. 신세대 새로운 학문이라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 중에도 동경 유학은 수재들의 출세 길이었다. 배고픔을 참아가며 죽을 둥 살 둥 공부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들은 인텔리겐차가 됐다. 그 중에는 친일파라고 불리는 이도 있고, 좌익이라고 불리는 이도 있다. 남보다 더 배우고 더 땀 흘려 일했는데, 이제 와서는 매국이라고 욕먹는 이도 있고 부역했다고 손가락질 받는 이도 있다. 갈등의 골이 깊이 파인 세대인 것이다.

이 들은 혼돈의 세대이기도 하다. 어렵게 나라를 되찾았지만, 내 나라의 정체는 불분명했다. 앞서 선조들이 입어본 일 없는 민주주의라는 옷이 주어졌다. 일일이 지시하고 통제하던 일제가 패망하면서,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가 사회에 넘쳐났다. 짓눌렸던 자유가 절제 없이 폭발했던 것이다. 시장 경제 한다는 틈에 권력의 앞잡이는 약삭빠르게 큰 재산을 모은 이도 있었다. 농지 개혁한다고 소작 부쳐 먹던 다랑이 논을 다시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 400년을 지켜 온 유교적 선비정신도 윤리의식도 통하지 않았다. 일제의 강압도 없어지니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혼돈의 시대를 몸으로 살았다.

이들은 고난의 세대였다. 3년이나 계속된 한국전쟁 통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런 행운은 그러나 모진 고난을 강요했다. 나이 젊은 남자들은 국군으로 학도병으로 의용군으로 전쟁에 동원되어 피를 흘렸다. 남은 가족 들은 온갖 만행에 시달리며 눈보라 치는 피난길에 나서야 했다. 비극적 전쟁의 참화를 온몸으로 겪었고, 전쟁폐허를 삶의 터전으로 다시 일궈내야 했던 고난의 세대이다.

이들은 희생의 세대이다. 군사독재 아래 산업화의 역군이라는 솔깃한 말에 취해 한 눈 팔 겨를 없이 일했다. 간호원으로 독일 간 큰 딸이 안쓰러워 부쳐준 돈 쥐고 엄마는 울었고, 광산 속에서 시꺼먼 얼굴로 석탄 캐다 찍은 둘째 사진을 품에 안고 가슴앓이 했다. 걱정 말라고 애써 안심시켜 놓고 베트남 전쟁에 간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월남에서 돌아 온 김상사 노랫가락을 위안삼아 평생을 청상으로 살았다.

평화시장, 방산시장 골방에서는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 샤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흘러도 미싱을 잘도 돌렸는데, 주머니는 항상 비어 있었다. 고향에 두고 온 남동생 학비주려 가불한 것 제하면 이번 달 월급도 받을 게 없었다.

그렇게 우리 어버이들은 숱한 변곡점을 굵직하게 견디며 살았다. 그런 그들의 삶이라서 더욱 값지게 보이고, 그런 삶의 터전이기에 그만큼 소중한 것이리라. 그 삶의 터를 이어서 살고 있는 우리라서 행복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아오는 동안 전쟁에 내몰리지도 않았고, 내 나라 말하고, 내 나라 노래 부르고, 내 학교에서 내 꿈을 펼쳐 살아 온 세대이다.

그것은 우리 어버이들이 첨병되어 가림막이를 해 주었기 때문 아닌가? 이념의 갈등으로, 전쟁의 상흔으로, 산업전선의 역군으로 젊음을 뜨겁게 불사르며 길을 내주었던 우리의 어버이들이 이제 어깨는 좁아지고 허리가 구부러지고 걸음걸이조차 자유롭지 않다. 오늘 어버이 날, 나의 어버이들을 다시 기려보는 이유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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