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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관이 일제 권력핵심 장소로 이용 김백선(향토문화연구가) 온양이 죽어가고 있다. 온천도 사양길이고 더불어 경제도 쇠퇴해 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역사속에 묻히는 온양이 아닌가 위기감도 든다. 더욱 경제의 쇠퇴와 더불어 정신마저 혼미해지고 있다. 다시 찾아야 한다. 굳건하게 다시 서는 온양, 살아나는 온양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양의 정신이며 기둥이 된 ‘온궁’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동안 왕의 온행에 대해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보도됐으나 일제에 의해 ‘침탈된 온궁’은 베일속에 묻혀있었다. ‘부활하는 온양’을 위해 7회에 걸쳐 아픈 과거의 역사를 곱씹어 보고자 한다. 1931년 6월 17일, 제6대 조선총독으로 우가끼 카즈시게가 부임하였다. 육군 대장에 올라 육군 대신을 역임한 바 있는 전형적인 무인으로서 앞으로 닥쳐올 전쟁을 예측하고 있었다. 이에 대비하여 그는 부임하자마자, ‘자력갱생’이라는 구호를 표방하고, 농업을 진흥시켜 한반도를 일본군의 병참 기지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아니나다를까, 그가 부임한 지 3개월 후인 9월에 만주 사변이 일어나고 한반도는 만주로 들어가는 일본군의 군수품 보급 기지가 되었다. 우가끼 총독은 군수 물자를 원활한 조달을 위하여 쉴 사이 없이 한반도 농촌 방방곡곡을 누비며 농업 진흥을 독려하였고, 1932년 7월에는 아산 지방의 농촌을 시찰하기 위하여 온양 온천에 내려와 신정관에서 1박하게 되었다. 이 무렵에 천안에 와 있던 이와사끼라 하는 일본인 건달이 있었는데, 성환 북쪽 안궁리 방면 하천 주변에 사금 매장량이 풍부하고, 그 부근 야산 일대에 금맥이 있는 것을 탐지하고 그 곳에 금광을 개설하고자 하였으나, 자금이 한 푼도 없는 데다가 지주와 산주들이 채금을 거부하므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와사끼는 신정관에 유숙하고 있는 우가끼 총독에게 자금 지원을 호소하고자 면회 신청을 했으나, 비서관이 거절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밤새도록 신정관 담장 밑에 잠복하여 총독이 밖에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새벽이 되자, 우가끼 총독이 수행원도 없이 혼자 잠옷 바랍으로 나와 신정관 구내의 정원을 산책하는 것이었다. 천재일우의 호기였다. 이와사끼는 민첩하게 총독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담대하기로 이름난 무골 우가끼 총독이었지만, 돌발적인 사태에 순간적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태연한 척 하면서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이것을 각하께 드리려고 합니다.” “그게 무엇인가?” “소인이 금광 사업 관계로 함경도에 갔다가, 구해온 백두산 호랑이 가죽입니다. 받아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오, 그런가? 나를 따라 오게.” 섬나라 일본은 예로부터 호랑이가 없었으므로, 한국산 호피는 최고급의 귀중품이었다. 따라서, 한반도에 나왔다가 귀국하는 일본인 고관들은 이 땅의 토산물로서 호피를 구하여 가지고 돌아가 그들의 상관에게 선물로 바치는 것이 관행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일본 국내의 건달패 사냥꾼들이 엽총을 둘러메고 한반도로 대거 몰려와 호랑이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던 시기였으므로, 우가끼 총독 역시 호랑이 가죽이란 말에 군침이 돌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이와사끼는 신정관에서 극적으로 총독을 만나 호피를 진상할 수 있는 행운의 기회를 만든 것이다. “이와사끼군, 자네 요즈음 무슨 애로 사항은 없는가?” “예, 각하! 아닌게 아니라, 좀 송구한 말씀입니다마는, 소인이 최근에 성환에서 매장량이 풍부한 노다지 금맥을 발견하여, 곧 금광회사를 설립하려고 하는데, 사업 자금이 부족하여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오오, 그런가? 성환은 일·청전쟁때에 우리 대일본제국의 황군이 청병을 섬멸한 곳인데, 그 유서 깊은 전적지 성환에서 노다지 금맥을 발견했다니, 갸륵한 일이구먼. 암, 도와주고 말고. 돌아가는 즉시 총독부체 사업 계획서를 올리도록 하게.” 이날 새벽, 우가끼 총독은 이와사끼의 말과 행동에 감탄하여 마지 않았다. 그 당시 일본 군벌들은 만주와 중국 대륙을 정복하기 위한 침략 전쟁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우가끼 총독 자신은 ‘자력갱생’을 표방하고 한반도의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하여 전쟁 물자 보급에 사력을 바치고 있었는데, 성환에서 노다지 황금을 캐내어 황국에 보답하겠다니, 이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두말할 것 없이 즉석에서 사업 자금 지원을 쾌락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호피 뇌물이 맺어 준 기연으로 이와자끼는 조선 총독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1933년 6월에 ‘성환 광업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 두 사람만이 아는 1급 비밀이었으나, 그 비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우가끼 총독과 이와사끼가 신정관 여관방에 단 둘이 앉아 귀신도 모르게 주고 받은 호피 뇌물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뿐 아니라, 총독이 뇌물로 받은 그 호피는 본래 신정관 지배인이 뇌물로 사용하려고 구입하여 소중하게 간직하던 것인데, 이와사끼가 이른 새벽에 잠입하여 훔쳐내다가 바로 그 날 새벽에 우가끼 총독에게 진상한 것이라는 웃지 못할 해괴한 풍문까지 돌았다. 이리하여, 우가끼 총독이 호피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어느 일본인은 천신만고 끝에 호랑이 가죽을 구하여 뇌물로 바치고 판사에 임명되었다고 하며, 세상에서는 그 사람을 ‘호피 판사’라 부른다는 소문도 퍼졌다. 풍문이야 어떠하든 간에, ‘성환 광업 주식회사’ 사장 이와사끼는 값싼 조선인 노동력을 동원하여, 12년 동안 성환 일대 야산의 노다지 금맥을 샅샅이 찾아내어 채굴하였고, 안성천 남쪽 안궁리 일대의 하천에다 사금 채취선을 설치하고 모래 속에 섞여 있던 풍부한 사금을 샅샅이 채취하여 거부가 됐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자, 이와사끼는 금광 회사의 낡은 장비를 팽개치고 현금과 금괴만 꾸려가지고 황망히 성환을 탈출하여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제 강점기에 금광에 종사한 바 있는 채금 기술자 모씨가 광복 이후에 일본인이 버리고 간 성환 광업 주식회사를 인수하여 운영해 보았으나, 채산성이 맞지 않아서, 몇 년 후에 폐업과 동시에 폐광이 되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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