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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이란 누구인가? 장영실선생은 아산장씨이며 동래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서부터 그 뛰어난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 스스로 물리의 변화과정을 터득하여 가히 천기에 비길만한 심오한 경지에 이르렀다. 이를 아신 태종은 친히 어전에 불러 그 재주를 시험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장차 크게 쓰일 인재가 될 것이라고 칭찬하셨다 한다. 세종임금이 즉위하여 널리 인재를 등용하는데 힘을 기울여 과거제도 외에도 재능있는 자는 그 출생에 구애하지 않고 등용하게 되었다. 이 즈음 선생의 뛰어난 재주는 마침내 천청을 움직여, 1423년에 상의원 별좌에 발탁됐다. 1423년에 호군에 승진하고, 1434년에 동활자인 경인자를 보완하여 금속활자 갑인자를 주조했다. 그 뒤 채방별감이 되어 제련을 감독하고 관측기인 대소간의 천구의, 혼천의 등과 일구와, 흠경각 안에 자격루를 제작 설치했다. 여기에는 사신과 12신, 고인과 종인, 사신과 옥녀 등이 저절로 움직여 돌게 하였으며 그 정확도는 천시와 조금도 차가 없었다. 의기를 만들어 천도의 영허를 알게하고, 사계절의 경치와 인물과 조수 초목의 모양을 새겨 사계절을 안배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농사짓는 법을 알게 하였다. 이러한 일은 비록 대왕의 예산에서 나왔다 하겠으나, 그 성려의 소재를 미리 알고 기교와 정채를 더한 것은 선생의 뛰어난 독창력에 의한 것이다. 1440년에는 명나라에 유학 후 1441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했다. 그 공으로 상호군에 승진했다. 1435년에는 박연과 함께 악사로서 성률과 악기에 대하여 고치고 바로잡았다. 이와같이 선생의 제작 발명은 천문기기, 측우기, 활자, 성률 제련 등 다방면에 걸쳤으며, 국가 민족을 위한 이용후생에 그 공적은 실로 동서고금을 막론해 독보적 존재라 할 수 있겠다. 비록 이와같이 과학의 씨는 일찍 뿌려졌으나, 이를 계승발전 못한 것은 외계와 단절되어 관념학에만 치우친 정치빈곤에서 연유한 것으로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민 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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