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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신성시한 온천 신단 김백선(향토문화연구가) 온양이 죽어가고 있다. 온천도 사양길이고 더불어 경제도 쇠퇴해 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역사속에 묻히는 온양이 아닌가 위기감도 든다. 더욱 경제의 쇠퇴와 더불어 정신마저 혼미해지고 있다. 다시 찾아야 한다. 굳 건하게 다시 서는 온양, 살아나는 온양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양의 정신이며 기둥이 된 ‘온궁’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동안 왕의 온행에 대해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보도됐으나 일제에 의해 ‘침탈된 온궁’은 베일속에 묻혀있었다. ‘부활하는 온양’을 위해 9회에 걸쳐 아픈 과거의 역사를 곱씹어 보고자 한다. 온천신단에서 매년 온천제 올려 신정관 구내 온천관 입구 우측의 여관 건물 모퉁이에 ‘온천 신단’이 있었다. 일찍이, 조선 왕조 시대에 군왕이나 왕후가 온궁에 행차하게 되면, 미리 예관을 보내어 신단을 마련하고 온천신에게 치제하였다. 그 자리에는 영목이라 부르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영목 아래에는 영석이라 부르는 바윗돌 하나가 서 있었다. 그 영목과 영석이 있는 온천신단은 매우 신성한 구역으로 숭배의 대상이었다. 언제부터 전래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온양 온천 주민들은 3년에 한 번씩 이곳에 모여 부락제를 지내는 민속이 있었는데, 1936년경부터는 매년 ‘온천제’라는 이름으로 제사를 지내 왔다. 신정관 경영자는 이러한 민속 신앙을 심리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하여 부의 축적 수단으로 삼아, 온천신단을 기자·치병의 신단이라 선전하고, 그 참배 요령을 제시하였다. 먼저 참배시각은 밤 12시경으로 모두다 잠든 고요함 속에 자식 낳기를 원하는 부부가 함께 참배해야한다. 신병이 있으면 혼자해도 무방하지만 부부가 함께 하면 효험이 높다고 선전했다. 신단 큰돌위에 촛불을 밝히고 영석앞에 제주를 올리고 엎드려 소원을 기도하고 두번절을 하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신관참배요령을 선전했다. 이러한 선전이 방방곡곡에 널리 퍼지면서, 온천욕의 특효를 체험하고, 아울러 온천신단의 영험을 얻으려는 욕객들이 온양 온천으로 구름처럼 몰려와 그야말로 성시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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