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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Fragment--> 매국노 이완용 별장처럼 사용 김백선(향토문화연구가) 양이 죽어가고 있다. 온천도 사양길이고 더불어 경제도 쇠퇴해 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역사속에 묻히는 온양이 아닌가 위기감도 든다. 더욱 경제의 쇠퇴와 더불어 정신마저 혼미해지고 있다. 다시 찾아야 한다. 굳건하게 다시 서는 온양, 살아나는 온양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양의 정신이며 기둥이 된 ‘온궁’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동안 왕의 온행에 대해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보도됐으나 일제에 의해 ‘침탈된 온궁’은 베일속에 묻혀있었다. ‘부활하는 온양’을 위해 6회에 걸쳐 아픈 과거의 역사를 곱씹어 보고자 한다. 광무 11년 6월에 ‘을사5적’의 원흉 이완용이 총리대신의 자리에 올라, 통감 이토오 히로부미의 꼭두각시가 되어 7월 29일에 고종 황제를 퇴위시키고 이어서 순종 황제를 협박하여 ‘정미 7조약’을 체결하고 그 조약에 따라 8월에 한국 군대를 해산함으로써 군대 없는 나라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09년 7월에는 ‘기유각서’에 따라 사법권마저 일본 정부에 넘겨주었다. 이로인해 훌륭한 민심이 퍼져 급기야 이재명의사에 의해 칼로 배를 찔리는 등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서울 인심이 극도로 흉흉하였으므로, 바늘방석에 앉은 듯, 심신이 몹시 불안하였던 이완용은 모든 사안을 총리대신 서리 박제순에게 위임하고, 극비리에 서울을 빠져 나와 온양 온천으로 내려왔다. 온양관에서 친일 관헌의 삼엄한 경호 아래 요양을 하고 있었으나, 이재명 의사의 저격에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경호대장의 철통같은 경비에도 불구하고 이완용은 실탄을 장전한 권총을 낮이나 밤이나 가슴에 품고 약 6개월 동안 온양 온천에 머물러 있었다. 어느 날, 밤중에 이완용이 자고 있는 온양관 침실 천장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이완용은 본능적으로 권총을 빼어들고 소리나는 쪽을 겨냥하고 있는데, 갑자기 쿵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기겁을 한 이완용은 천장을 향해 권총을 연발하였다. 총성에 깜짝 놀란 경호대장이 달려 들어와 천장을 향해 일본도를 휘두르니, 쥐똥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것이었다. 결국 쥐새끼 한 마리 때문에 일대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이완용은 너무도 어이없고 창피하여 그날 밤에 있었던 사건을 발설하지 않도록 함구령을 내렸으나, 오뉴월 방귀 새나가듯, 이 사실이 전국에 퍼져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며, 이 소문을 들은 월남 이상재 선생은 껄껄 웃으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어 비아냥거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쥐새끼 한 마리 때문에 각하께서 몹시 놀라셨다니, 참으로 안 되었소이다.” 융희 4년(1910) 3월이 되자, 풍전등화와 같이 위태로운 대한제국의 운명을 구하고자, 의병들이 전국 각처에서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에 대비하여 통감부에서는 이미 헌병 및 헌병 보조원 수만 명의 병력을 확보하였으며, 마지막 단계로 대한제국의 경찰권을 박탈하여 헌병경찰 제도를 계획하고 있었다. 6월 22일, 대한제국 허수아비 내각의 각료들은 통감의 관저로 불려가 경찰권을 일본 정부에 이양하라는 협박을 받고 돌아와, 다음날 아침에 총리 대신 서리 박제순이 각료회의를 소집하여 경찰권 이양 문제를 논의하였다. 이 때에 탁지부대신 고영희와 학부 대신 이용직 두 각료가 반대하므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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