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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한구의 내고장 유래와 역사 “신선의 손바닥” 선장면, 선장8경…시상 절로 돋궈 선장면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선장면은 삼봉산(三峰山)에서 힘차게 뻗어 내려온 산세가 일단 뭉쳐있으며 옛 등대가 있던 곳에서 주위의 전망을 살펴보면 마치 왼손을 펼쳐 보는 것과 같은 형세다. 그래서인지 신선의 손과 같다고 하여 즉 ‘선인앙장(仙人仰掌)’ 혈이라고 했으며 또한 면 소재지명을 선장면이라고 명명(命名)했나보다. 그리고 선장면사무소에서 좀더 올라가면 삼거리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군덕 387번지라고 하니 우연한 것이 아니다. 둘째, 지금의 신덕리1구에 해당하는 곳인데, 당시 아카시아숲을 지칭하여 ‘평장무림(平場茂林)’이라고 했다. 즉, 산악지대가 아니고 평평한 곳에 무성하게 자란 아카시아숲이 평야지대에선 상당히 멋있게 보인 것이다. 셋째, 인주면 해암리에서 석양에 돌아오는 조각배 범선(어선)을 선장면 가산리2구 방아내 나루에서 본 경치는 참으로 아름다우며 한폭의 그림을 보는것과 같다. 그래서 ‘해암기범’이라고 했나보다. 넷째, 신창면 가내리(여무실)에서 동쪽에 떠오르는 달의 경치는 볼만하다. 시인은 시상을 생각하게되고 주객은 술 생각이 나고 고향 떠난 사람은 고향의 부모, 동기간을 생각하게 되고 시집온 새댁은 친정부모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는 고로 ‘연당명월(蓮堂明月)’이라고 했나보다. 다섯째, 선장면 대흥리 1구에서 가산리2구 쪽으로 내려가는 산 끝부분 봉우리가 칼과 같다고 하여 그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은 맑은 바람의 경치라고 하여 ‘검봉청풍(劍峯淸風)이라고 한다. 여섯째, 훤히 트인 서들(소둘)평야와 멀리는 신평의 뿌리(한뿔)를 ‘양우일각(兩牛一角)’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멋있는 지형 표현이다. 일곱째, 멀리 행당섬 위에 머물고 있는 구름이 저녁노을에 황적색으로 물들어있는 광경은 황홀하게 느껴져 ‘행당묘려(杏堂妙麗)’라고 했다. 여덟째, 이곳 선장면의 명산이요, 제일 높은 산이다. 불과 100m미만이지만 봉우리가 셋이기 때문에 삼봉산이며 푸른 요람이라고 하여 ‘삼봉청람(三峰靑藍)’이라고 했다. 선장사람들은 선장 8경을 내세워 지역의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 선장 8경을 나름대로 살펴보면 화상과 시상의 경지를 이해할 수 있으며 영감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아무튼 선장에 8경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와 더불어 선장에는 민족과 국가관이 투철한 애국지사들이 있으며 인맥의 경지에서 귀감과 모범이 된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지도자가 있는 곳에 훌륭한 사상에 따라 훌륭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때문에 선장은 반드시 훌륭한 지역 발전을 할 것이다. 먼저 말한바와 같이 선장은 지리적 여건에 따라 손과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며 ‘손’은 무엇이든 만지며 만들고 있다. 엄지손가락에 해당한 곳이 군덕, 돈포, 신덕 대정쪽이며 검지에 해당한 곳이 궁평, 가산, 신문리쪽이며 중지에 해당한 곳이 대흥리와 홍곶쪽이며 약지쪽은 신동, 가내리가 된다. 새끼손가락쪽은 벌터, 신성리, 죽산, 너더리쪽이 된다. 모두가 나름대로 역활을 하고 있다. 특히 장심은 군덕 일부와 선창 1,2,3구가 선장면 소재지를 직접 감싸고 있다. 그야말로 중심 역활을 하고있는 실정이다. 지명은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선장이 된 것이다. 어떠한 지역이건간에 그 지역 역사와 지형에 따라 지명이 마련된다. 평택과 안성은 원래 충청도 구역이었으나 일제시대 안성천을 경계로 경기도 땅이 된 것이고 백제 초기때 삼국의 전란이 격심할때 뺏기고 뺏을때 아산과 평택 관계를 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명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지금의 아산이 평택에게 흡수당하겠는가. 경우상으로 보아 말이 안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애향지심에 기인한 기우적 주장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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