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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호 (01. 7. 28.토) 현충사와 동아일보

2007년 06월 17일(일) 21:10 [(주)온양신문사]

 

 

리한구 칼럼

현충사와 동아일보

 

  요즘 동아일보 등 몇몇 신문사들이 사주와 중역들이 세금포탈 및 비자금 조성 혐의로 이리저리 조사를 받고 있어 안타깝다.

  특히 동아일보는 민족의 애환과 맥을 같이한 우리의 민족지라고 할때 더욱 안타깝다. 위법하면 당연히 법의 제재를 받아야 하지만 법에 따라 조사하는 측과 조사를 받는 측 모두가 “돈”때문이다.

  1930년대의 사람들과 현실의 사람들이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 차이가 “돈”때문일까. 그래서인지 “돈”만 있으면 무엇이던 할 수 있다는 풍조가 세상에 팽배하여 각종 범죄가 끊임없이 속출하고 있다. “돈”은 좋기도 하면서 나쁘기도 하다.

  우리사회에서 누구보다도 청렴해야할 위치에 있는 신문사 사주들이 세금을 포탈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쾌하다. 물론 끝까지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동아일보와 우리고장의 이순신장군 사적지에 얼켜있는 일부 문헌을 다시한번 여기에 밝혀보자.

  춘원(春園) 이광수는 고하(古下) 송진우(宋鎭禹)선생이 동아일보 사장에 있을때 편집국장으로 있었으며 고하 송진우선생은 언론을 통하여 민족자주의식을 일깨웠던 우국지사였다. 춘원은 사장의 지시에 따라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유적지를 순례하고 그 기행문을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으로 민족정기를 회복하려고 온 겨레가 궐기하던 시기에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13대 종손 이종옥(李種玉)씨가 서울 동일은행(東一銀行) 본점에서 1,300원을 대출 받은 사실이 있었다. 그 당시 화폐가치로서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그 많은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희사했다는 풍문도 있었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1,300원 이외에 다른 부채로 인하여 아산군 음봉면 산정리에 있는 충무공 묘소 일원의 선산과 위토 약 12,000평이 동일은행에 저당되었으며 채권자인 동일은행은 10년이 지난 뒤 원리금(元利金)이 2,400원으로 동일은행은 이종옥씨가 채무상환을 못함으로 경매에 붙인다고 통고했다.

  이 사실이 1931년 5월 13일자 동아일보 사회면에 보도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 후 5월 15일자 동아일보 지상에는 위당(爲唐) 정인보(鄭寅普)선생이 이충무공 묘산 경매문제라는 제목으로 피눈물 어린 논설을 발표했으며 이어 민족의 수치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이 논설과 사설이 기미년 3·1만세운동 이후 잠자고 있던 애국심을 일깨워 전국민이 분기했다.

  5월 17일에는 서울협성실업학교 황대벽교사의 자녀인 13세 영소(永昭)군과 6세 영희(永姬)양 남매가 2년간 모은 벙어리 저금통과 편지 한 통을 동아일보사에 접수시켰다. 벙어리 저금통을 열어보니 1전 또는 5전짜리 동전이 가득했는데, 모두 4원36전이었다.

  접수자는 그중에서 1전은 도로 저금통에 넣어 돌려주고 4원35전을 성금으로 접수하고 갸륵한 두 어린이의 미담을 5월 18일자 동아일보 지상에 보도했다.

  이러한 기사가 전국의 독자를 더욱 감동시켜 각계에서 성금이 답지하기 시작했고 5월 20일부터는 해외동포들도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성금을 보내왔다.

  같은해 5월 23일 우국지사 15인이 “충무공유적보전위원회”를 조직하니 그 명단은 위원장은 윤치호, 부위원장은 송진우, 위원은 한용운, 조만식, 안재홍, 정인보, 김병로, 박승빈, 유억겸, 최규동, 남궁훈, 유진태, 김정우, 정광조, 윤현태였다.

  동아일보 및 애국단체의 활동에 호응하여 각지에서 민족적 의분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으며 경매에 붙여진 이충무공 묘소를 되찾는데에 써달라는 의연금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답지했으며 학생들은 용돈을 아껴 성금을 냈으며 손때 묻은 동전 몇닢을 아낌없이 보내왔다.

  온겨레의 뜻이 혼연일체가 되어 모은 성금으로 1931년 6월 10일 동일은행 부채 원리금 2,272원22전을 상환하고 이충무공 묘소와 위토의 저당문서를 회수한 후에 정인보, 백관수, 유억겸 등 세 위원이 백암리 이충무공 종손 이종옥에게 문권을 돌려주고 이어서 현충사 중건(重建)사업에 착후했다.

  또한 1930년 봄 고영환(高永煥)씨가 온양온천 대동여관(大同旅官)에 1년동안 투숙하면서 이충무공 고택을 찾아가 이순신장군의 유품을 살펴보고 기행문 원고를 동아일보사에 보냈으며 그 기행문이 5월 12일부터 3회로 나누어 연재됐는데 그 기행문이 전국의 독자로 하여금 충무공의 얼을 더욱 추앙케 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이와같이 민족이 어려움에 있을때 활약하고 계도했던 동아일보가 세금포탈이라는 혐의를 받고 조사를 당하는 꼴은 차마 볼 수 없다. 언론사가 아니라면 좀 봐달라는 하소연도 해볼만 한데 그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야속하고 안타깝다.

  아무리 지난날 민족과 국가를 위해 정론직필했다고 하여도 현재에 이르러 위법했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조사하는 사람들이 전공을 생각하여 좀 봐줄 수 있지만 아무도 이에 관하여 말할 수 없다.

  누구든지 법을 내세워 털면 먼지가 나게 마련이다. 그동안 세무조사를 당한 사람 중 무사한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권력과 상쇄(相殺)작용한 사람분일 것이다.

  흥망성세는 윤회하는 것. 지금의 권자도 뒷날 약자가 됐을때 국익을 위한 세무조사가 없겠는가?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세상사며 앞날을 장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온양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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