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6-11-03 오후 05:56:05  

전체기사

사설

온천동메아리

기고문

기획기사

종합

칼럼

행복한아산

아산의 야생화

아산의 길

커뮤니티

뉴스 > 기고/칼럼 > 사설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292호 (01. 7. 28.토) 무기력 조정, 온궁 강탈에 속수무책

2007년 06월 17일(일) 21:13 [(주)온양신문사]

 

 

무기력 조정, 온궁 강탈에 속수무책

김백선(향토문화연구가)

 

  온양이 죽어가고 있다. 온천도 사양길이고 더불어 경제도 쇠퇴해 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역사속에 묻히는 온양이 아닌가 위기감도 든다.

더욱 경제의 쇠퇴와 더불어 정신마저 혼미해지고 있다. 다시 찾아야 한다. 굳건하게 다시 서는 온양, 살아나는 온양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양의 정신이며 기둥이 된 ‘온궁’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동안 왕의 온행에 대해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보도됐으나 일제에 의해 ‘침탈된 온궁’은 베일속에 묻혀있었다. ‘부활하는 온양’을 위해 6회에 걸쳐 아픈 과거의 역사를 곱씹어 보고자 한다.

해가 바뀌어 광무 9년(1905) 새해가 됐다.

  정월달 추위도 사라진 음력 2월 초하루에 일본인 3명이 온양 온천 마을에 나타나서, 사방 수천 보에 표목을 세우고, 그들이 획정한 범위 내에 있던 이좌형, 박봉교 등의 가옥을 철거하여 옮겨가라고 협박했다.

  이 때에 온천 이웃에 거주하던 정준호 등이 이 급박한 상황을 온양 군수 권중억에게 보고하였고, 군수는 이 사건을 즉각 상부에 보고하였더니, 이 번에도 내부대신으로부터 그 표목을 모두 뽑아버리라는 지령이 내려왔다.

  온양 군수가 이 지령을 일본인에게 제시하고 표목을 제거하려 하니, 일본인들은 더욱 기고만장하여, “내부대신의 지령이 비록 이러하나, 우리는 이미 궁내부에서 인가한 완문을 가지고 있으니, 그대로 시행할 뿐이며, 다른 부에서 내린 지령은 알 바가 아니오.”라고 하면서, 안하무인의 오만한 태도였다.

  기가 질린 온양 군수는 이 번에도 그냥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화창한 4월이 되자, 작년 7월에 온양 온천에 와서 ‘운형궁 기지’라는 표목을 세우고 돌아갔던 그 일본인 특공대원 13명이 다시 내려와 구온양에 상주하면서 다시 온궁 주변 마을에 나타났다.

“우리는 이미 궁내부에서 인가한 완문을 가지고 왔으니, 그대로 시행하겠다.”하면서, 이번에는 온궁 주변의 거주민 이좌형, 박봉교 등의 가옥을 강제로 철거하려고 하였다.

  이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면서 철거에 응하지 않으니, 그들 특공대원들은 방안에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정없이 민가에 불을 질렀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갇힌 집주인은 쫓겨나 굶어 죽느니, 차라리 불에 타 죽는 편이 낫다고 반항하며 나오지 않으므로, 이웃 노인들이 달려들어가 억지로 끌어냈다.

  이 때에 이미 마을 청·장년들은 모두 ‘러·일 전쟁’에 노력 동원 중이어서 집에는 노약자와 부녀자만 남아있었으므로,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일본인의 만행에 속수무책이었다.

  온양 군수로부터 이러한 급보를 받은 외부대신은 다시 일본 영사관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즉각 중단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간교한 일본 공사는 여전히 다음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회신을 보내왔다.

“온양에서 있었던 일본인의 행동은 한결같이 후생주의에 의하여, 귀국인의 기득권에서 기인된 것이니, 곧 귀국의 궁내부 인가 및 운현궁의 정확한 권리자에게서 얻은 것입니다.”

  이러한 일본 공사의 회신을 받은 외부대신은 5월 1일에 궁내부대신 민영철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공문을 보냈다.

“행궁이 지극히 소중하니, 회사를 인가하여 수호하게 하고, 자혜로움에서 연유한 이용후생 또한 좋지 않은 것은 아니오나, 사리사욕의 모리 간상 도배가 악폐를 지어, 외국인으로 하여금 제멋대로 점유하고 행사하도록 하였으니, 예종석 등을 잡아다가 인준한 당해 완문을 반납하도록 독려하고 이를 취소하여 간사한 싹을 끊어 타당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아무런 힘도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궁내부로서는 일본인의 손에 들어간 완문을 회수할 능력이 없었고, 예종석 등 친일 모리배는 이미 일본인의 비호를 받고 있었으므로, 체포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일본인의 각본대로 온궁 강탈은 빈틈없이 진행될 뿐이었다.

  음력 7월이 되자, 일본인들이 또다시 온양 온천에 몰려와서, “온양 온천 지역은 궁내부에서 특하한 ‘제수사 기지’이다.”라고 선전하면서, 온궁 주변 일대에 다시 표목을 세우고 온양 온천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음력 7월 15일에는 일본인 쯔나도 토꾸사이가 표목을 세운 안쪽의 대지나 전답에 관련이 있는 주민들을 불러 모아놓고 표지 한 장에다 글을 써 주면서 말하기를, “내가 지금 궁내부의 특허로 ‘제수사 기지’에 이미 표목을 세웠는데, 당신들의 표지가 없어서는 아니 되겠기에, 지금 이 표지의 견본을 작성하여 주는 것이니, 내가 써 준 표지의 사연대로 모두 일정하게 기록해서 제출하시오.”라고 협박하였다. 다시 말하면, ‘제수사 기지’에 편입되는 토지는 무조건 그 수용에 응하겠다는 각서를 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민 소유의 전답은 극소하였고, 전후좌우의 토지와 수목들이 모두 경향 각지의 사대부와 양반댁 소유였으므로, 그들은 소작인이거나, 관리자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함부로 표지를 작성해 줄 수도 없고, 무지한 시골 백성으로서 일본인의 서슬 퍼런 강요를 회피할 계책도 없어서, 표지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앉아 무르익도록 논의한 끝에 얼버무리는 말로 표지를 작성하여 주었더니, 일본인 후지모또 사까에란 자가 표지를 물리치면서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당신들이 제출한 표지 사연의 의미는 내가 써준 표지 견본 내용과는 다르니, 아무런 소용이 없소. 그러니, 내가 써 준 표지 견본의 사연을 보고 그대로 다시 써서 내야 하오.”

  마침내 주민들은 온양군 서면 온천동장 정성호와 소임 이승삼으로 하여금 온양 군수 권중억에게 소장을 내어, 이 억울하고 딱한 사정을 호소했다.

소장을 접수한 온양 군수는 그 내용을 외부대신에게 보고하였고, 외부대신은 8월 2일에 궁내부대신 이재극에게 ‘제수사’의 설립 인가 여부를 조회했다.

  외부대신의 조회에 대하여, 궁내부대신 임시서리로 있던 예식원, 장례경, 이 원일은 8월 5일에, “궁내부에서 내국인 예종석, 김유성에게 ‘온천 제수사’ 설립을 인허한 사실은 있으나, 일본인에게 ‘제수사 기지’를 인허한 사실은 없습니다.”라는 조복을 외부대신에게 보냈다.

  그러나, 허수아비에 불과한 대한제국 내각에서 왕복한 공문서는 휴지 조각에 불과하여, 일본인들의 마수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온천동민들은 일본인들이 제멋대로 사정한 어처구니없는 헐값 보상금 몇 푼을 손에 쥐고 돌아오면서, “백주 대낮에 날강도 같은 왜놈들, 땅 한 평에 10전도 안쳐주다니, 이런 죽일 놈들이 있나.”

  눈물지으며 돌아온 가난한 농민들은 정든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새로운 삶의 땅을 찾아 정처 없이 먼 곳으로 떠나야 했다.

  1911년 4월 7일, 경성에서 발행된 일본인 타구찌 순지로가 저술한 ‘조선일반’ P. 129를 보면, 온양 온천을 강탈한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변명하고 있다.

  “온양 온천은 공주가 서남쪽으로 90리이고, 천안역이 동북쪽으로 35리인 유명한 온천인데, 조선 세조가 속리산에 행행하였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것을 발견했다.

  일찍이 궁전을 지었는데, 지금은 잔지만 있고, 이전의 황실 소유로 누대를 계승해 왔다.

  욕장은 왕년에 대원군이 수복하였고, 광무 8년(1904)에 내지인 쯔나도 토꾸사이가 이것을 매수하여 명치 40년(1907) 4월에 욕실 및 가옥을 개선했다.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는 내용이다.

온양신문 기자  
“지역정신 온양신문”
- Copyrights ⓒ(주)온양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온양신문사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온양신문사

 

 

[기고] 고령 보훈가족의 재가복지 현장 체험활동을 다녀와서 [온양신문사] 기자

[사설] 지역에 동화(同化)하고자 하는 노력 [온양신문사] 기자

[사설] 극단적 사회, 이성(理性)을 찾고 사고(思考)를 키우자 [온양신문사] 기자

[기고] 매너운전이 교통안전을 만든다 [온양신문사] 기자

[사설] ‘참 고맙고 든든한 호루라기 아저씨’ [온양신문사] 기자

[사설] 장항선 폐철도 활용…타지역 연계땐 ‘대박’ [온양신문사] 기자

[사설] 과장된 AI 공포, 삼계탕·오리찜 문제 없어  [온양신문사] 기자

이전 페이지로

 

 최근기사

 

220만 삶 ‘AI 대혁명’ 불지핀 ..  

‘충남 일자리 정책 이끈다’ 제4..  

충무교육원, 이순신 나라사랑 교..  

“글로벌 기업 투자, 3력·광속으..  

지역 국회의원과 ‘13.5조 확보’..  

민선9기 공약실천계획 도민과 함..  

아산시, 지역사회보장계획 평가 8..  

아산시, 도고면 기곡리 침수 대응..  

어르신 목욕·이용 편의 높인다…..  

도고면 행복키움추진단·파라다이..  

[시대진단] 다수결이면 다 정의로..  

충남교육청, 다문화 교육 연구학..  

충남교육청, 2026년 성과관리지원..  

“11월은 ‘정리정돈의 달’, 현..  

충청광역연합의회 제12회 정례회 ..  

아산시시설관리공단, 자원순환의 ..  

충남교육청 학생건강교육센터, 김..  

선문대 치위생학과, 한국치위생과..  

수피아사회적협동조합, 베이커리..  

‘그대! 80개의 나래를 펴라’  

회사소개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구독신청 - 기사제보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배너모음

 상호: (주)온양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312-81-25669 / 인터넷신문사업 등록번호: 충남, 아00095 / 제호: i온양신문 / 주소: 충남 아산시 남산로8번길 6 (온천동 266-51) / 발행인,편집인: 신민철
등록일 : 2010년 9월 24일 / mail: ionyang@daum.net / Tel: (041) 532-2580 / Fax : (041) 532-458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민철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