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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호 (01. 5. 30.수)온주아문 현판 필자는 김정백선생

2007년 06월 16일(토) 12:20 [(주)온양신문사]

 

 

온천동 메아리 리한구 온양신문 대표이사

온주아문 현판 필자는 김정백선생

 

  “온주아문(溫州衙門)에 관하여 아산군지나 온양시지를 살펴 보아도 형성 내력과 원인을 밝혀둔 문헌이 없다. 다만, 아산군지에 “신라 문무왕 3年(서기 663년)에 군명(郡名)을 “주”라고 한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을 뿐이다. 온주아문의 소재지는 현재 아산시 온양 읍내동 153번지에 있으며 옛 온양군 관아 동헌 앞에 세워진 문루(門樓)다.

  이 문루에 걸려있는 “현판” 액자에 온주아문(溫州衙門)이란 글자의 필자(筆者)는 낙관에 호(號)를 만제(晩齊)라 하고 이름을 김정백(金正伯)이라고 되어있다. 도대체 김정백선생이 누구이며 그 후손이 누구인지 궁금했던 것은 자타가 같을 것이다.

  어느날 향토사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김종환씨가 말하기를 “내가 어렸을때 때 당숙 김환식씨 말에 의하면 “온주아문 현판은 김종환씨 증조부가 쓰신 것이라고 말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필자는 2001년 5월 21일 김재만선생과 같이 온주아문을 찾아가 현판을 자세히 살펴보니 거기에 낙관한 인형에 호(號)는 만제(晩齊)요, 이름은 김정백(金正伯)으로 뚜렷하게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김종환씨가 보관하고 있는 김씨댁의 보록에도 본관은 경주요, 이름은 김상학(金商學)이요, 자(字)는 정백(正伯)이요, 호(號)는 만제(晩齊)로 되었으며 성균관 생원으로서 명필대가(名筆大家)라 적었다.

  보록(譜錄)에 등재된 이름과 “온주아문” 현판에 낙관된 이름이 일치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김정백선생은 현종 4년(서기 1838년) 11월 17일에 탄생하시고, 61세인 고종 36년(서기 1899년) 4월 16일에 환원하셨다.

25세쯤인 고종 8년(서기 1891년)경 충청도 조(이름 미상)감사가 관내 유생을 대상으로 서도대회를 개최했는데, 여기에서 장원한 사람이 곧 김정백선생이었으며 당시 퇴락된 온주아문의 현판을 고종 8년(서기 1891년)에 다시 마련하고 보수했을때 그 글을 쓰도록 했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세종 22년(서기 1440년)과 세종 24년(서기 1442년) 3월에도 온양온천에 행행하여 휴양하고 상경하셨다.

  이 시기에 세종대왕은 충청감사에게 온궁을 신축하라고 하명 하시고, 백성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궁의 규모를 줄여 신축하도록 배려하신 것은 규장각 문헌에 나타나 있다. 이 무렵 종6품의 현감이 배치되어 있던 “온수현”이 “온양군”으로 개명되고 승격되어 종 4품의 군수가 배치되었다. 온궁건물을 신축할때 승급된 온양군 동헌 앞에 “온주아문”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문(衙門)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이조때 상급의 관아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했다. 온수현이 온양군으로 승격한 것은 사실이다.

  규장각에 보관된 온양군의 지도와 건물 배치도(붓으로 그린 지도)를 보면 온주아문(溫州衙門)이라고 된 것도 아니고 문루(門樓)로 표시됐다.

  세종대왕때 온궁에 세워진 신정비는 임사홍의 아버지 임원준선생이 비문을 지었으나 그 후 대왕대비였던 정희왕후(세조대왕의 왕후)는 초라해진 신정비를 다시 만들어 그 자리에 세우라고 하명하여 새로 세운것이 지금의 신정비다.

  그와 같이 온주아문의 현판 역시 퇴색하여 고종 18년에 다시 한 것이 현재의 아문 현판이다.

  당시 충청도에는 주(州)가 다섯 곳 뿐이다. ①청주 ②충주 ③공주 ④홍주 ⑤온주 그래서 “온주아문(溫州衙門)”이란 이름으로 된 것 같다. 즉 상급관아로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신라 문무왕 3년(서기 663년) 당시 군명을 “주”로 호칭했다고 하여 아산군지는 “온주아문”의 명칭을 지칭하고 있으나 지금으로부터 1438년전에 축조된 “온주아문”이라고 간접적으로 주장한 셈이다.

  이것은 건물감정전문가의 감정결과가 있어야 할 것이며 다만 필자는 서기 1442년쯤 온궁 건축시 승격된 온양군의 “온주아문”이 더불어 건축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뿐이다. 보수는 전기한 바와 같이 고종8年(서기 1891년)에 한 것이다.

온양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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