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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유인형의 ‘살며 생각하며’ 온양의 후배들에게 캐나다서 30년만에 담시 귀국했다. 어제는 온천초등학교를 찾아가 옛 느티나무를 쓰다듬어 주었다. 학교 앞에서 어린 후배들과 같이 앉아 떡볶이도 사먹었지. 그땐 오징어 꼬리나 조각난 빵조각을 늘 사먹었는데 요즘은 입맛도 바뀐것 같다. 할아버지가 아이들과 함께 떡볶이가 뭐냐구? 글쎄 바로 어제 같은데 참으로 눈 깜짝할 순간에 할아버지가 된 기분이구나. 다음에 온양중학교를 찾았으나 중학교는 흔적도 없다. 온양고등학교는 옛그대로이나 뒤에 건물이 많아진 대신에 운동장이 좁아 졌더군. 교문은 그대로 변하지 않았다. 정문입구에서 올라가며 심었던 나무도 그대로 있더라. 옛날엔 그렇게 멀어만 보이던 거리가 다시 찾아와 걷다보니 너무 짧고 협소하더라. 그러니까 내가 바라보는 눈높이가 변해 버린거겠지. 좁은 곳에서 북적거리며 살다가 몇시간을 달래도 지평선이 나오면 우선 공포감이 생긴다. 내가 사는 알버타주엔 5천개가 넘는 호수가 있다. 호수의 나라지만 낚시터를 찾으려면 두시간 이상은 달려야 한다. 글쎄 남한땅 넓이의 100배가 넘는 나라라면 감이나 잡히겠나? 그렇게 광활한 곳에서 살다가 다시 옛고향을 찾으니 반대로 공포증을 느끼게 된다. 누구나 사람은 태어나서 편안한 고향땅에 살기를 바란다. 지극히 수동적이며 보수적인 한국인 생리로선 이민은 우선 겁부터 낸다. 그러니까 너희들처럼 자신감에 차있으며, 선배 경험에 귀담아 듣는, 온양후배들만이 가능한 길이라 믿는다. 너무 뒤진 얘기이나 이민이란 도피가 아니라 한국땅을 넓혀 나가는 진출이란걸 말하고 싶다. 개척과 도전이란 이민길은 멀고 험난한 길이다. 물론 땀흘려 노력하는 것 만큼은 틀림없이 보상받게 되는 복지사회인 캐나다로 철저한 준비 후에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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