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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만에 혈육 생사 평안도 고향 김문원씨…6 ․ 25때 헤어진 가족 연변서 “내레 학도병으로 내려왔시요. 부모와 형님 내외는 다 돌아가시고 동생 2명만 평안북도 강계에 살아있다고 확인했디요” 김문원(70) 옹의 고향은 평안북도 강계군 리서면 송하동. 해방을 맞이하면서 남이나 북이나 일대 격변기를 맞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김옹은 리서초등학교 6학년 시절, 해방을 맞았다. 새 세상에 대한 기쁨을 제대로 맛보기도 전 북한에 밀려든 사회주의 운동. 그 바람은 매우 거셌다. 소년당, 노동당, 여성동맹, 민청훈련소 등이 만들어지면서 사회주의 운동은 일대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일본어에 능숙했고 글을 알았던 김옹도 1950년 나이 20세에 민청훈련소에 차출됐다. 군사훈련을 받고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 반복되는 주입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6 ․ 25가 났다. 인민군의 지원병인 학도병으로 전장에 나서야 했다. 엄청난 지원공세에 힘입어 남으로 남으로 진격해 순식간에 대전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더 이상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해야 할 이유도 몰랐고 왕성한 청소년기, 부자유스럽게 사상교육과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 이북에도 다신 가고 싶지 않았다. ‘니거 내거 없는 세상’에서 사는 값어치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깊은 심적 갈등을 계속해온 김옹은 결단을 내렸다. 대열에서 이탈해 충북 옥천에 숨어들었다. 과수원에서 몰래 과일을 따먹으며 숨죽이면서 지내기를 3일. 결국 과수원 주인 할아버지에게 틀켜 “어린 학생이라 선처해 줄것”이라며 자수를 권유받았다. 그리곤 곧장 대전 경찰국에 자수했다. 전쟁만 끝나면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피붙이 하나 없이 남한에 산지 50년. 서른살이 다돼 대전서 정연옥(68)여사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들 딸 자식들도 낳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 늘 허전하게 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광부, 피복업, 축산업등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가족과의 상봉을 꿈꾸며 열심히 악착같이 살았다. 이북5도민회 아산시연합회(회장 김용섭)회원으로 고향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그러던 지난 해 가을, 김용섭 회장의 도움으로 통일원에 신청해서 중국 연변에 13일 정도 다녀왔다. 그리고 뜻밖에 동생 김순옥과 김문남의 생사를 확인했다. 그러나 김옹은 동생들을 만나지 않았다. 이북에 전사자로 기록돼 있는 자신이 돌연 살아 나타나면 혹시 동생들에게 피해를 입힐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 한가지. 기찻길, 버스길 놔두고 제3국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가슴 아팠다. 오직 통일된 그날까지 건강하게 살아 기필코 하나 된 하늘아래서 동생들을 진정 부둥켜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장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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