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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장터서 울려퍼진 3 ․ 1운동 최병수 열사 독립선언서 낭독…끝내는 외병에 순국 1919년 3월1일. 조국해방의 뜨거운 가슴으로 독립만세의 함성이 들불처럼 일어나 한반도를 들끓게하던 그때. 전국에 걸쳐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그 당시, 선장면 대정리에서도 독립을 향한 거사가 소리없이 준비되고 있었다. 최병수 선생. 전국적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거세어지고 있던 독립만세운동에 힘을 쏟으면 조선의 독립을 이룰 수 있을거라 여긴 최병수 선생은 선장 도고 신창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사람들을 모았다. 정수길 김천봉 서몽조 임천근 오상근 등 동지들을 찾아다니며 독립만세시위의 취지를 알리고 애국할 수 있는 자신감을 힘없는 백성들에게 불어넣어 주었다. 선장면 도고면 신창면 등 3개면의 3 ․ 1운동 총책임자로 나선 최병수 선생은 거사를 행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그리고 한반도에 널리 울려 퍼질 독립선언서를 준비했다. 마침내 1919년 4월 4일 선장면장터. 최병수 선생은 3개 면민 1천여명을 장터로 모이게 하여 군중의 최선두에 서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리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군중을 선도했다. 사람들의 물결을 타고 선장 헌병주재소에 이르러 헌병주재소에 방화를 기도하다 최병수 선생은 끝내 몰려든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 주재소로 연행됐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헌병주재소 안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쳤던 최병수 선생은 일본헌병의 야만적인 발포로 35세의 일기로 장렬히 순국하셨다. 당시 유족들은 일본헌병들의 온갖 협박 속에서도 열사의 시신을 인수해 선영에 모셨지만 뒤늦게 이를 안 일본군에 의해 임시로 공동묘지에 봉안하게 되는 수모를 겪었다. 8 ․ 15 해방을 맞이해 후손들은 다시 선영인 도고면 향산리 산 42번지에 열사를 안장했다. 지난 1963년 최병수 선생은 당시 대통령권한대행 박정희 국가 재건최고회의장으로부터 건국공로훈장증을 추서받았으며 1979년 7월 6일 보훈처는 최병수 선생 묘소에 선생의 약력이 새겨진 aql를 세우고 제막하기에 이르렀다. 순국으로써 애국애족의 정신을 드높힌 최병수 선생은 해주 최씨 문원공 부사공파 후손 종사랑 최순의 장자로 1885년 7월 25일 선장면 대정리에서 태어났으며 선생의 손자인 최상균(75)옹은 서울특별시 금천구에 현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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