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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산만들기] 천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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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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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0일(화) 16:56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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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우 비를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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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천경석 (온양여고 교사 / 아산향토연구회) | ⓒ 온양신문 | 멀쩡하던 문화재가 훼손된 것을 보는 일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몹시 안타깝고 화가 나는 일이다. 그 문화재가 유명하고 덜 유명하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며칠 전에 다른 일로 송악면의 평촌리 앞 온양천 둑길을 지나가다가 뭔가 좀 이상했다. 차를 세워놓고 지났던 길을 되돌아와 다시 천천히 걸어가면서 살펴보았다. 있어야 할 것이,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길가에 서 있었고 서 있어야 할 비석이다.
온양천 둑길에는 평촌1리와 평촌3리로 가는 진입로가 따로 있고 각각 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그 중간쯤 되는 지점의 하천 쪽 길가에는 비석 한 기가 서 있었다. 온양군수를 지냈던 이응우라는 사람을 기리며 세운 영세불망비다.
이응우(李膺愚, 1824~?)는 경주이씨이며 아산시 지역 출신은 아닌데 어느 지역 출신인지는 알 수 없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1863년에 음직으로 처음 관직에 나갔다. 여러 관직을 거치고 고종 8년(1871) 6월에 온양군수로 부임했다. 그해는 미국이 강화도를 침범했던 신미양요가 일어났던 해였고 흥선대원군이 섭정(1863~1873)을 하던 때였다.
이응우는 1874년 7월에 무주부사로 부임해서 떠날 때까지 만 3년 동안 온양군수로 재임했다. 재임 중에 그는 여러 가지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세수가 적어지면서 군의 재고가 부족해졌을 때 그것을 따져서 강제로 거두어들이지 않고 자신의 녹봉을 내놓아 충당하였다.
그가 기부한 금액을 합치면 3천여 금(金)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금’은 ‘냥’과 같고, 1냥이 동전(엽전) 100개이니 그가 내놓은 돈이 엽전으로는 30만개가 넘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그의 이러한 선정 사실은 조선왕조실록(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가 무주부사로 이임한 뒤인 1874년 10월에 암행어사 김명진이 이와 같은 사실을 고종 임금에게 보고하였고 그로 인해 그는 포상승진을 하게 되었다.
당시 제출된 암행어사 김명진의 서계(보고문)에 ‘9개면이 비를 세워 이를 밝히고 있다.(已著臥治之績九面樹碑尤見去思之情)’고 하였으니 이 비석이 바로 그 비석들 중 하나인 셈이다.
비석은 원래 최근의 위치에서 대략 서쪽으로 70~80m쯤 떨어진 곳, 들판 가운데 논둑에 세워져 있었다. 20년쯤 전에 그 일대에 경지정리가 이루어지면서 이 자리로 옮겨 세웠던 것이다.
처음에 세울 당시에는 당연히 주요 도로 옆에 세웠을 것이다. 지금의 송악면 중 북쪽, 즉 마곡리·궁평리에서 평촌리·외암리 지역에 해당하는 온양군 남하면(남하면)의 들머리에 해당되는 지점이었다.
39번국도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송악면 일대에서 구온양 지역으로 오가던 주요 도로가 그곳으로 지났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141년 전인 1874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석은 이응우의 치적 외에도 간접적으로는 이렇듯 예전의 도로와 하천 흐름을 알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되기도 했던 문화유산이다.
필자는 온양천 제방으로 옮겨진 뒤에 이 비석을 처음 보았는데 그 때도 비석에 콘크리트가 직접 닿아 있던 것이 참 속상했었다. 길에서 볼 수 있도록 하려고 그랬겠지만, 길 쪽이 글씨가 있는 앞면이었고 그것도 대략 1/3에 해당하는 아래 부분 일부가 흙과 콘크리트에 묻힌 상태였다.
그래서 ‘世不忘碑(세불망비) 부분은 보이지 않고 ‘郡守李侯膺愚永(군수 이후응우 영)’의 7자만 보였다. 몇 해 전에 콘크리트 위에 아스콘을 덧씌우면서 또 그대로 그렇게 했다. 물론 마을 조사를 다닐 때도 이 비석이 왜 이곳에 서 있는지 아는 주민들은 없었고 전해지는 이야기도 없었다.
이응우의 선정은 공주갑부로 널리 알려진 친일파 김갑순이 국권피탈 직후 아산군수로 재직하면서 일제의 세금감면을 악용해서 공금을 포탈하고 그 돈을 기반으로 재산을 불렸던 일과 비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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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3년 초의 비석 모습. 부서진 사진을 싣고 싶지 않다. | ⓒ 온양신문 | | 아산시 지역 출신의 수령 중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대표적 인물이 조상우 선생의 아들인 조이숙(1616~1660)이다. 회덕현감으로 재직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녹봉을 내어 먹을 것을 제공했고 정작 본인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해서 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일찍이 인조 승하 때도 3년간 채식을 해서 병을 얻었던 사람으로서 충신정려가 내려져서 그와 아버지의 정려가 정문거리에 세워지기도 했다. 그 정려가 온양온천역 뒤의 장골산으로 옮겨졌다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공주로 옮겨졌다. 지역의 문화유산 한 가지가 줄어들었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온양군수 이응우의 선정을 기리는 비석이 세 토막이 났다. 드러나 있던 부분이 잘려서 두 토막이 나 있다. 고의였는지 실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고의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근처에 팽개쳐져 있는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조금 다른 얘기로, 요즘 아산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모아 그렇게 비를 세워주고 싶을 만한 아산시장이 있다면 참 행복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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