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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죽고, 헤쳐야 산다 정운영(경제평론가) - MBC100분토론 진행자 연전에 수안보 온천에서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다른 볼일 때문에 일행보다 늦게 도착한 저는 숙소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주위에 길을 물을 행인도 없고 해서 택시를 탔는데, 불과 200여미터쯤 가다가 슬며시 서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기사에게 물었더니 다 왔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기가 막혔지만 돈을 내려는데 요금 계산기가 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냐고 했더니 1500원이란 것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1200원인데 관광지여서 그런가보다 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러나 씁쓸한 기분은 지울 수 없어서 호텔 종업원에게 택시 기본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1200원이란 대답이었습니다.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관광지에서 거스름돈 300원을 챙길 만큼 각박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일은 경우가 좀 다릅니다. 울컥 치미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그만 인근 파출소를 찾아갔습니다. 담당경관이 신고자의 신분을 물었을 때 비로소 저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심은 그게 아니었지만 아무튼 관광지 세미나에 와서 쩨쩨하게 돈 300원을 따지는 제 몰골이 더없이 부끄러웠고, 더욱이 택시 회사에다 해당기사의 ‘즉각 출두’를 명하는 경관의 전화 통화를 들으면서 그 기사의 처지가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이 생각처럼 간단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돈을 돌려받겠느냐, 기사의 처벌을 원하느냐는 등속의 문답으로 경관의 ‘공무 집행’에 지루하게 협조한 뒤, 저는 장난기 어린 그 기사의 행동에 회사와 경찰이 주의나 한번 주면 그만이지, 생업에 지장이 가는 어떤 처분도 피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파출소를 나섰습니다. 젠장 신고하러 갔다가 선처를 부탁하고 나오다니…. 그러면서도 행여 그 기사가 잡아뗄 경우에 대비해 그가 거슬러준 500원짜리 동전을 내놓고, 거기 묻었을 그의 지문이 증거가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숙소로 연락이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그에게 별 일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안보 인심과 온양의 인심을 견주어 고향에 -그렇게 부를 자격에 제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무슨 희떠운 조언이나 권고의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돈 300원의 장난이 관광지의 인상을 흐렸듯이, 장관 감투 하나 혹은 의원 자리 하나를 더 차지하려는 지역의 ‘인심’이 자칫 돌이키지 못할 실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서 위의 얘기를 꺼냈을 뿐입니다. 얘기를 바로하지요. 영남과 호남의 신물나는 지역 다툼 불길이 어느덧 충청권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시민 단체가 공천 반대자 명단을 발표한 뒤, 충청도는 -특히 충남은- 가마솥에 콩튀듯이 민심이 들끓는 듯합니다. 낙천운동이 충청도가 내세우는 어느 인사를 정치적으로 죽이려는 ‘음모’의 소산이라는 반발 때문이니다. 반면 충청 도민의 분기와 동정심을 부추겨 선거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특정 정당의 ‘역음모’가 아니냐는 의심도 일고 있습니다. 정치는 수시로 ‘음모론’ 따위를 퍼뜨리며 유권자를 홀립니다. 설사 누구의 음모일지라도 그 음모에 속지않는 일이 중요합니다. 박정희 집권 초기 부산 시민은 특별히 그 정권을 반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투표를 며칠 앞둔 어느날 대문 앞에 떨어진 ‘삐라’ 한 장이, 그러니까 ‘전라도민이여 단결하라’는 선동 한마디가 편안한 시민의 마음을 마구 들쑤셔 놓았습니다. 전라 도민의 단결을 외치는 괴문서를 부산 시민의 집에 누가 어떤 의도로 뿌렸을지는 직접 보지 않고도 능히 짐작할 만합니다. 정보 기관의 사주로 이 일을 벌인 작자는 그 대가로 좌익사범 전력을 벗고 일본으로 피했습니다. 이토록 추악하게 조종되는 지역 정치의 망국적 폐해에 대해서는 더 말씀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영남과 호남이 뭉치는데 충청도라고 못 뭉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충청도 출신이 총리가 되고 장관이 됐을 때 느끼는 기분과 이런저런 ‘이익’을 어찌 지역 이기주의라고만 탓하겠습니까? 그러나 300원짜리 장난기 ‘욕심’이 관광지 명성에 오점을 남기듯이, 도민 일부의 원색적인 흥분과 반발도 나라의 장래를 해칠 수 있습니다. 영남과 호남에 이어 충청도가 다시 나라를 찢어 ‘무림’을 만들고, 정치가 그 방주(幇主)들의 장풍에 놀아난다면 우리는 정말 구제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충청도마저 뭉치면(?) 나라는 죽고, 충청도라도 헤쳐야(!) 나라가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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