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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자 마 당 이기영형님 영전에 이준권(전 언론인) 삼가 이기영 형님 영전에 고합니다. 당신은 1999년 12월 4일 11시에 지병으로 투병하다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먼곳으로 떠나셨습니다. 당신께서 평생토록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하셨기에 온양, 아산의 많은 사람들의 슬픔은 한층 더합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룩하신 역할은 너무나 막중했습니다. 그만큼 존경과 기대가 컸기에 당신의 영결을 고하는 우리의 마음은 이처럼 애통합니다. 당신은 ROTC전역후 고향인 배방에서 과수원과 축산업을 시작으로 33세에 전국 최연소 아산축협조합장이 되신후 2선을 연임하면서 오늘날 아산축협의 기반을 닦아 놓으셨습니다. 88년 총선시에는 JP가 신민주공화당 출마를 권유하였지만 김세배씨와의 인간적인 정리로 인해 고사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후 3당 합당 후 민자당 사무국장으로 당내 화합을 이루어 91년 지방선거, 92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당신의 포용력 있는 리더십이 아니면 그와 같은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후 아산시의료보험조합 대표와 모산신용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하시면서 지역민과의 정서적 유대를 쌓아 오시던 중에 치룬 95년 아산시장 선거의 패배는 당신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상처였을 것입니다. 그당시 민자당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은 자민련이나 무소속 출마의 길을 갔고 당신은 지역바람이 회오리를 일으키는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결과만을 떠 안으셨습니다. 제가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축협조합장 시절이었습니다. 언제나 침착하고 다감한 분위기를 갖게했고 무슨 말이든 진지하게 경청하고 성실하게 대해주셨습니다. 더욱이 대학원 동문으로 가까이 접할 수 있을때 보여주신 각별한 우의와 소탈한 일면은 저를 인간적인 면에서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이 가신 12월 4일날, 토요일이라 우체국 업무가 끝난 시간인데도 26명의 집배원들은 퇴근시간을 반려하고 자신들이 부고를 돌려야 한다고 나설 정도로 당신의 덕은 크셨습니다. 당신에게 저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온양, 아산지역은 훌륭한 지도자 한분을 잃었다고. 당신의 타계는 지역사회의 커다란 손실입니다. 우리는 부드럽고 포용력있는 민주적 리더십의 지도자를 다시 볼 수 없는 아쉬움에 젖어 있습니다. 항상 스스로를 낮추시고 진지한 몸가짐으로 사셨던 당신의 일생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사표로서 길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당신의 높고 깊은 인품을 다시는 뵙지 못하게 되니 슬프고 안타까 운 심정 가눌 길이 없습니다. 존경하는 형님! 부디 편히 잠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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