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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왕대비 한꺼번에 온양나들이 역사통해 단한번 있었던 드문 행차 온양신문 창간 10주년 기획 이덕일의 역사속의 온천 온궁의 형성과정 온양에 다녀간 임금과 왕비들(6)…성종의 삼대비① 조선시대에 형식상 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히 임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임금이 아니라 대비(大妃)이다. 임금도 대비에게 자신을 지칭할 때는 소신(小臣)이라고 낮추는 법이다. 대비전은 대궐의 동쪽에 있었으므로 흔히 동조(東朝)라고 불렀는데, 임금도 때때로 대비전에 문안을 가야 했다. 그런데 조선 9대 임금 성종은 무려 3명의 대비를 모시고 있었다. 나라의 임금이지만 층층시하였던 셈이다. 유독 온양을 좋아했던 세조 비 정희왕후 윤씨와, 성종의 생모인 소혜왕후 한씨, 그리고 예종의 계비인 안순왕후 한씨가 그들이다. 소혜왕후와 안순왕후가 모두 한씨이므로 그 관계를 이해하려면 좀 설명이 필요하다. 이시기에는 유독 한씨들이 왕실과 많은 외척관계를 맺었다. 소혜왕후는 한확의 딸이고, 안순왕후는 한백륜의 딸이었다. 예종은 안순왕후 이전에 장순왕후를 두었는데, 그녀 역시 한씨로서 한명회의 딸이었다. 장순왕후가 병사하자 다시 맞아들인 왕비가 안순왕후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왕은 이씨라면 왕비는 한씨 일색인 이상한 시기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성종의 첫 번째 왕비인 공혜왕후도 한씨로서 한명회의 딸이었다. 성종에게 예종비 장순왕후는 숙모였고, 공혜왕후는 자신의 부인이었으나 둘 다 한명회의 딸이었다. 숙모의 누이동생이 부인이 되는 이상한 혼인관계였던 것이다. 물론 권력때문에 이런 기묘한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확의 딸인 소혜왕후 한씨는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의 세자빈에 간택되었으나, 의경세자가 스무살에 요절함에 따라 왕비가 되지 못하고 사가로 물러났다. 야사에는 단종의 모후인 현덕왕후 권씨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네가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고 저주한 후 의경세자가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의경세자가 죽은 후 한씨는 사가로 물러났으나 예종의 뒤를 이어 자신의 둘째 아들인 성종을 즉위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왕비와 대비가 될 수 있었다. 성종이 즉위함에 따라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은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었고, 그녀는 왕후로 책봉되었다가 이어서 대비로 책봉되었으니, 유명한 인수대비가 바로 그녀이다. 대왕대비인 정희왕후 윤씨, 흔히 양대비로 불렸던 소혜왕후 한씨와 안순왕후 한씨, 이 세여인이 한꺼번에 온양의 온궁에 행차한 것은 성종 14년(1483)2월이었다. 시어머니인 대왕대비 윤씨가 신병으로 온양에 가는데 며느리인 양대비가 병간호 겸 온천욕 겸 해서 따라온 것이었다. 대왕대비는 세조의 유명을 핑계로 성종을 임금으로 만들어 준 인물이었다.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살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치고 임금으로 만들어 준 인물이 바로 대왕대비였다. 이런 대왕대비를 비롯해 삼대비가 한꺼번에 온양에 가는데 성종이 무심할 수 없었다. 그해 2월 16일 성종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먼저 주정소(晝停所)에 이르러 삼대비를 지송(祗送)하려고 하다가, 주정소에 도착한후 “여기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마음이 편안하지가 못하다”면서 한강까지 나가서 지송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래서 한강가에 장엄한 행렬이 펼쳐지는데, 삼대비의 수레가 도착하자 임금은 무릎을 꿇고 백관들은 바닥에 부복(俯伏)하였다. 한강에는 대비가 타고 갈 배가 마련되어 있어서 삼대비가 배에 오르자 비로소 임금은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삼대비는 강을 건너 다시 연(輦)에 올라 온양으로 항했다. 삼대비를 한꺼번에 맞이해야 했던 온양군은 완전히 비상이 걸렸다. 나라의 제일 웃어른인 대왕대비와 두 대비가 한꺼번에 행차한 것이다. 이런 일은 조선뿐만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역사를 통해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조선시대 여인의 행차 자체가 드문일이었는데, 대비 세 명이 한꺼번에 행차하는 것이니 말할 나위가 없다. 대비가 탄 세 연(輦)이 수많은 군사들의 호위속에 행차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장엄하다. 이행차는 우리나라 전체 역사를 통해서 단 한 번 있었던 특이한 행차였다. 당연히 이를 기리는 행사나 기념물이 있어야 할 터인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마저 없으니 무심하다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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