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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 메아리 홍 병 선 시인·예총 아산시지부장 문화고장의 전통을 이어가자 맹고불이 7월달 문화인물로 지정되어 한국예총 아산지부와 국립국악원 공동 주최로 맹고불 학술회의와 국악공연 행사를 우리 아산에서 뜻있는 분들의 성원과 격려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성황리에 마쳤음을 기쁘게 생각하며 참여 해주신 분들의 높은 문화 수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작년에 충무공이 순국 400주년 행사와 함께 12월의 인물로 선정되었고 이어 금년 7월은 맹사성의 달로 이어지면서 우리 아산이 한국에서 빼놓을수 없는 충절의 고장이요 정신 문화의 발상지임을 널리 선포한것이다. 옛날부터 아산 이순신, 온양 맹고불이란 말이 전해 내려오던 것을 사실상 확인시켜준 셈이다. 그동안 우리 아산은 이순신, 맹고불, 장영실, 김옥균, 이토정을 비롯한 많은 선비와 명인의 유적이 남아있고 백제때부터 전해오는 1300년 전통의 온양온천이 있고 역대왕의 행차로 신정비, 온궁, 어의정, 영괴대등 역사적인 사적과 기록등이 많이 남아있다. 일찍이 원효선사가 아산, 예산, 홍성, 당진, 청양 지역이 우리나라의 내장과 같이 중요하다하여 내포지역이라 일컬었거니와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요새이고 은밀한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이 곳곳에 있어 어느 도시보다도 손색이 없는 곳으로 우리는 그 문화유산의 큰 혜택을 받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산업사회로 시대의 구조가 변하고 급격히 발전할때 우리 아산인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그 문화의 꽃을 피우며 안일한 향수에 젖어 준비를 게을리해서 우리아산은 자연히 퇴락하는 길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 아산이 시대 상황의 변화에도 꿋꿋하게 존재하고 이나라 문화의 중심사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선조들이 남긴 문화와 전통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묵과 할 수가 없지 않은가. 하늘에 먹구름일고 천둥번개가 쳐서 세상이 천지개벽이라도 일것처럼 보이지만 하늘은 언제나 푸르고 청청하듯 우리아산은 선조들이 이뤄놓은 그 문화유산이 지켜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맹고불 행사를 위하여 전국의 유명한 학자들이 내온하였고 미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었다. 그들과 매우 유익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충고도 많이 있었는데 그 일부분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한고위직 관리가 아산을 오기위해 차를 탔는데 아산이 어디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중앙행정부에 근무하는 기사조차 아산을 모르고 있다가 온양온천이라 했더니 금방 알아차리더라는 것이다. 아산시민은 온양온천과 관광명소로 먹고사는 곳인데 왜 문패를 바꿔달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지 모르겠다며 아산시(온양온천)라는 안내라도 있어야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 아산을 홍보하기 위하여 돈을 쓰고 온갖 신경을 다 쓰는 꼴이 우습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산이 온천도시라하여 기껏 안내받은 곳은 개발이 되고있는 산골짝(아산온천)이고 향수의 온양온천을 미궁속에 숨겨 두느냐고도 묻는다. 아산만개발, 현충사, 현대자동차, 서해안 고속도로와 첫번째 전철역등으로 아산을 자랑삼아 홍보하고 있지만 세종대왕이 마련해 준 온양온천과 그 많은 유적온양의 이름아래 이루어진 전통과 유래 그향수는 어디있으며 청일전쟁때 전승지여서 일본인에 의하여 붙여진 아산의 이름만 활보하고 있느냐고 했다. 우리것을 찾고 외치는 이때 우리의 자존심과도 관계되는 일이요,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는 미래의 아산을 걱정하면서 그들은 떠나갔다. 사실 아산만 시대는 당진, 서산과 안산, 평택등 서해안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아산의 문화권을 점점 벗어나고 있으며 새로운 곳을 찾아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 아산시가 버틸 수 있는 것은 어느 누구도 바꿔 놓을수 없는 옛 문화의 복원이며 전통있는 문화의 계승사업 뿐이라고 했다. 그래야만 아산만 시대와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가 시민들의 무관심속에서도 외지인들로 하여금 성황리에 끝났다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남원시는 전설속의 인물을 가지고 전국명소가 되어있으며 진해는 벚꽃을 심어서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하늘이 주신 문화유산을 활용못하고 있는 아산시의 처지가 안타깝다.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거니와 우리 아산은 외부에서 더 많은 관심과 기대를 가진 도시이다. 일제때는 동아일보가 앞장서서 충무공의 영혼과 현충사를 복원하였고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중건, 세계적 명소가 되었으며 이조의 역대왕들이 행궁하여 명소와 전통을 살려왔고 청일전쟁이후 아산만은 일본인의 정치, 경제의 밀실과 요새지로 이어오다가 지금은 중앙정부의 관심속에서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아산시민은 99년 4월 28일 충무공 동상을 시민의 뜻과 정성으로 세워 전국을 대표하는 표준동상을 준공하였다. 이번에는 청백리의 표상이신 맹고불의 좌상을 기념비적 상징으로 세워야 한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찾아내고 개척해야만 살수가 있다. 일제 36년과 6·25사변등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 통일과 안보가 최우선이었기에 충무공에 대한 국민의 향수는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문화의 시대가 온다고한다. 세상은 많이 변해가고 있다. 세계화, 정보화 지방화시대에 살아남을수 있는 길은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로서만이 경쟁과 승부에서 이길수 있는 길을 가능하게하며 아산시는 그 모든 경쟁을 할 수 있는 특유문화와 여건과 저력을 가졌다고 본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우리는 충과 효의 진원지임을 새삼알렸다. 이제 이위대한 사상과 정신을 선양사업으로 계승시켜야 하며 시민운동으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 지방화시대는 시민의 여론과 창안을 받아 들여 공감대를 형성해서 상호 신뢰하고 협조하는 애향심과 의지가 합쳐질 때 크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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