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6-10-23 오후 03:42:39  

전체기사

사설

온천동메아리

기고문

기획기사

종합

칼럼

행복한아산

아산의 야생화

아산의 길

커뮤니티

뉴스 > 기고/칼럼 > 행복한아산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행복한 아산만들기] 천경석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4년 11월 03일(월) 11:35 [(주)온양신문사]

 

송악 강당골 용추 이야기

↑↑ 천경석(온양고 교사/ 아산향토연구회)

ⓒ 온양신문

송악의 강당골은 아산시민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광덕산 정상 주변 능선의 대략 북쪽에 있는 깊고 긴 골짜기다. 좁게는 현재 강당골 주차장이 있는 곳 조금 위쪽의 계곡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 위쪽은 멱시나 절골 등 별도의 명칭이 있다.

행정구역상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인 이곳을 왜 강당골, 강당리라 했는지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바로 외암 이간(李柬, 1677∼1727)이 공부하던 강당, 즉 외암정사가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간이 외암정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31세이던 숙종33년(1707)의 일인데 그해에 그는 당시 조선 최고의 학자였던 수암 권상하의 문인이 되었다. 말하자면 권상하의 문인이 된 뒤 학문에 더욱 전념하기 위해 짓게 된 것인데 이듬해인 1708년에 완성되었다. 그러자 권상하가 진리를 찾는 집이라는 의미의 관선재(觀善齋)라는 당호를 지어 편액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 온양신문

이간이 사돈이자 벗이었던 천서(泉西) 윤혼(尹?, 1676~1725)과 강학을 했던 이곳이 후에 외암영당을 거쳐 1816년부터는 외암서사로 서원 기능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흥선대원군의 철폐령을 피하기 위해 마곡사에서 관음상을 모셔다 놓고 절로 위장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강당사(講堂寺)라는 절도 겸하는 특이한 곳이 되었다. 아산시민들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외암 이간이 이곳에 외암정사를 짓게 된 것은 당연히 주변의 지형과 풍경을 고려한 것이었다. 아마도 외암리 인근에서 가장 아름답고 한적한 곳을 고른 끝에 이곳을 택했을 것이다. 오늘은 그런 강당골 중에서 용추를 좀 둘러보려고 한다.

이 관선재 겸 강당사가 있는 곳과 강당골 주차장의 중간쯤에 계곡 중 특별히 깊고 물이 많은 못이 있다. 속칭 출렁다리라고 하는 현수교 바로 아래 지점인데 용추(龍湫) 또는 석문용추(石門龍湫)라고 부른다. 참고로 관선재·강당사로 들어가는 용담교 조금 아래쪽은 작은 용추라고 부른다. 다들 잘 알고 있고 용추 표지판도 오래 전부터 서 있어서 글씨가 희미해졌을 정도다.

용추라는 곳은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은 편이다. 또 그런 곳에는 이곳 용추와 마찬가지로 거의 공통적인 두 가지의 전설이 전해진다. 한 가지는 이무기가 용이 되어 올라갔거나 용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 한 가지 이야기는 물이 얼마나 깊은지 명주실 한 타래를 다 풀어도 끝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못을 가리키는 한자어로는 추(湫)외에 소(沼)와 담(潭)이 많이 쓰인다. 우리 고장에서는 계곡이나 개울 중에서 물길이 굽이를 트는 부분의 깊어진 곳을 ‘도깨비 툼벙’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이곳 강당골 용추는 강당골은 물론이고 아산시에 있는 계곡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좀 낮고 비스듬하기는 하지만 폭포 비슷하게 물이 쏟아져 내려오는 부분부터 못의 양쪽이 높은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마치 문과 같다고 보아 석문(石門)용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이미 이간 시기에도 용추라 했다.

ⓒ 온양신문

그런데 이 용추 이곳저곳의 바위에는 사람의 이름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한자말로는 석각(石刻)이라고 한다. 그곳에 있는 글씨는 다 한자를 음각한 것이다. 모두 1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 중 7명은 예안이씨 집안의 사람들이다. 이주열(李周烈), 이욱렬(李郁烈), 이용헌(李用憲), 이용빈(李用彬), 이용오(李用五), 이용대(李用大), 이백선(李伯善) 등이다. 가까이에 관선재가 있고 이 일대가 예안이씨 소유 토지였기 때문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외암마을 입구 반계에도 巍巖洞天(외암동천: 이용찬 서)과 東華水石(동화수석) 석각이 있는데 동화수석은 이곳에 이름을 새겨 놓은 이백선의 글씨다.

참고로, 예안이씨 외암리 입향조인 이사종(李嗣宗)이 예안이씨 8세(世), 그의 5대손인 외암 이간(李柬)이 13세다. 근대 이후의 인물들 이름에 쓰인 항렬자는 열(烈,19세)-용(用,20세)-선(善,21세)-준(準,22세)이다. 그러니 용추 일대 바위의 이름들은 대부분 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새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중 이욱렬(1874-1959)은 아버지 이상익의 뒤를 이어 건재고택을 완성한 바로 그 사람이며 외암 이간의 6대손이다.

그 외에 윤태희(尹泰熙), 윤홍(尹泓), 서영석(徐榮錫)이 있는데 서영석은 글씨체나 얕게 파인 것 등으로 보아 더 후대에 슬그머니 파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윤씨 둘은 파평윤씨로 보인다. 아마도 이간의 벗이었던 윤혼의 후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이름을 새길 수 없었을 것이다.

석각으로 4자성어 세 가지가 있다. 우선, 언제 누가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글씨체와 위치로 보아 같은 사람이 쓴 글씨를 새긴 것으로 보이는 山高武夷(산고무이)와 洞深華陽(동심화양)이 있다. 직역을 하면 ‘산이 높아 무이와 같고 골이 깊어 화양과 같다.’ 정도로 새겨볼 수 있겠다.

‘무이’는 성리학(주자학)을 집대성한 중국 남송 주희(주자)의 무이정사가 있던 무이산에서 유래한 것이다. ‘화양’은 조선후기의 성리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머물렀고 그를 기리는 화양서원이 있는 화양동(충북 괴산의 골짜기)에서 비롯되었다. 주희가 무이산의 여러 계곡을 무이구곡가로 읊었던 것처럼 송시열도 화양계곡에서 볼만한 곳 아홉 곳을 정해 각각 이름을 짓고 화양구곡이라 칭했다.

세 번째 4자 석각은 寒水秋月(한수추월)이다. 바로 아래에 같은 글씨체로 이용헌(李用憲)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글씨를 새긴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추월한수의 네 글자 중 秋(추)자는 마치 활자처럼 좌우가 뒤집혀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글씨를 새긴 석공의 실수였는지, 일부러 그렇게 했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인지 필자는 아직 알지 못한다.

한수추월은 본래 주자의 시 ‘재거감흥(齋居感興)’(20수) 중 제10수에 있는 ‘공유천재심 추월조한수(恭惟千載心 秋月照寒水)’, 즉 ‘천년 동안 이어져온 성인(공자)의 마음을 삼가 헤아려보니 가을 달빛이 차가운 물을 비추는 것과 같구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중 ‘한수’는 이간의 스승인 수암 권상하의 또 다른 아호 한수재(寒水齋)로 갔는데 그것은 제천의 황강에 강당을 마련한 수제자 권상하에게 스승 송시열이 지어준 당호였다. 그런데 이간이 관선재라는 당호를 받고 감사하며 스승 권상하를 직접 찾아가 인사를 올리자 권상하가 이번에는 이간에게 자신의 호(한수재)와 이어지는 추월헌(秋月軒)이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이는 제자에 대한 최고의 예우임과 동시에 학통의 전수를 뜻하는 일이었다.

용추 주변의 석각들은 말하자면 광덕산을 무이산에, 강당골 계곡을 화양구곡에 등치시킨 것이니 이간의 관선재가 있는 이곳이 그런 곳들과 같은 유교의 중심지 혹은 성지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이간이 조선 후기 성리학 주류의 적통자인 권상하의 계승자임을 강조하고 확인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성리학의 창시자(집대성자)인 주희, 조선후기 성리학의 지존이었던 송시열과 그의 수제자 권상하를 이간이 계승했다고, 즉 이간이 성리학의 적통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좁게는 이곳 용추, 넓게는 강당골 계곡을 ‘일명 양화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등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 상당수가 다른 사람의 글이나 자료를 그대로 따다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곳을 양화담이라고 한 자료 중 현재까지 필자가 확인해본 것으로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아산군에서 일본어로 발간한 ‘아산군지’가 가장 오래 된 자료다. 온양 인근의 관광지 중 하나로 관선재를 소개하면서 용추를 양화담(陽華潭)이라고도 한다고 기록해놓았다. 그 뒤 식자연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용추보다는 고상한 이름이라 생각해서인지 자꾸 양화담이라고 하면서 지금의 이런 오류가 생기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담’은 못인데 ‘양화’는 뭘까? 필자는 일제 강점기의 일본인들이 저지른 오류라고 생각하고 싶다. 당시까지도 오른쪽부터 읽는데 여전히 익숙했던 한국인이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고 본다. 즉, 명치유신 이후의 가로쓰기에 이미 익숙해져 있고 고사나 역사에 무지한 일본인들이 석각 중에서 ‘동심화양’을 왼쪽부터 읽고서 앞의 두 글자 양화에 담을 붙여 양화담이라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제 용추 혹은 강당골 이야기에 ‘일명 양화담’이라고 하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지역정신 온양신문”
- Copyrights ⓒ(주)온양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온양신문사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온양신문사

 

 

[건강칼럼] 턱관절 장애, 어떤 증상이 나타나고 어떻게 치료할까.. [온양신문사] 기자

[칼럼] 전통에 깃든 관념과 금기도 고려했어야 [온양신문사] 기자

천경석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김일환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신세균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맹주완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홍승균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이전 페이지로

 

 최근기사

 

삼성전자 온양캠퍼스, 친환경 차..  

하이트진로 천안지점, 성금 600만..  

아산시립합창단, 헝가리와 문화예..  

모종중학교, 체험으로 배우는 건..  

충남동부·서부보훈지청, 월남전..  

국방기관 유치 힘쓰고 산업·교통..  

충남도, 재선충병 피해목 제거 ‘..  

“인형극으로 배우는 효, 함께 만..  

충남도, 잇따른 산재 사망사고에 ..  

‘안면도 소나무림’ 산림유전자..  

충남도의회, ‘전기차·산업현장..  

㈜광진기계 방문 화재안전 현장지..  

한올고, 일상 속 사물에서 지식의..  

충남다우리학교, 전통문화 체험으..  

온양고, 2026학년도 신입생 입학..  

쌍룡초 남현우 학생 전국과학전람..  

신창중, 책장을 넘어 작가와 마음..  

숲체험교육원, 가을 곤충과 함께 ..  

호서대, 대학 경영의 중심에 ESG  

기후살인 막는다…도·시군 머리 ..  

회사소개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구독신청 - 기사제보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배너모음

 상호: (주)온양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312-81-25669 / 인터넷신문사업 등록번호: 충남, 아00095 / 제호: i온양신문 / 주소: 충남 아산시 남산로8번길 6 (온천동 266-51) / 발행인,편집인: 신민철
등록일 : 2010년 9월 24일 / mail: ionyang@daum.net / Tel: (041) 532-2580 / Fax : (041) 532-458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민철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