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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산만들기] 김일환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4년 10월 29일(수) 17:43 [(주)온양신문사]

 

남구만의 온양온천 유람기

↑↑ 김일환(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 연구실장/대우교수)

ⓒ 온양신문

온양온천은 조선초 태조부터 세종, 세조대까지 국왕과 왕실가족들이 빈번히 찾아 온 유명한 왕실온천이었다. 세종대 온궁이 세워지고 그후 확장되면서 온양은 온천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세조이후에는 국왕의 온행이 중단되고 성종대 이후 왕실가족들의 방문도 뜸하게 되자 온궁은 점차 쇠락하였다.

이것을 더욱 촉진한 것은 임진왜란이었다. 선조 30년(1597)에 왜군의 재침으로 정유재란이 발발하였다. 전라도를 유린한 왜군이 서울을 향해 북상하면서 공주를 지나 온양을 급습하였다. 이 환란으로 온양은 초토화되었고 온궁도 불타버렸다. 파괴된 온궁은 폐허로 방치된 채 60여년이 넘도록 복구되지 못하였고 병든 백성들만 치료를 위해 찾아와 목욕하였다.

임란이후 피폐된 온궁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바로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 남긴 ‘온양온천북탕기(溫陽溫泉北湯記)’라는 기록이다. 이 유람기는 왕실이 아닌 사대부가 남긴 최초의 온양온천유람기로 역사적 가치도 대단히 클 뿐 아니라 내용도 흥미롭다.

 

↑↑ ▲보물 제1484호 남구만 초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온양신문

 

남구만은 조선 후기 유학자 송준길(宋浚吉)의 제자이며 소론의 영수로 숙종대 두 번이나 영의정을 역임했던 인물이며 유명한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의 작자이기도 하다.

그가 온양온천을 찾은 시기는 그의 나이 31세일 때인 현종 1년(1660) 8월 22일이었다. 두풍(頭風)으로 인한 어지러움증을 앓고 있는 모친 안동권씨를 모시고 치료코자 온양온천에 왔다가 피폐된 온천장과 온궁을 목격하고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당시 온궁은 임란 때 파괴된 후 복구되지 않아 담장이 무너지고 섬돌이 망가져서 하나도 성한 것이 없었다. 궁전도 무너졌으며 세조때 서하군(西河君) 임원준(任元濬)이 기록한 신정비(神井碑)만 글자의 획이 닳고 마멸된 채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옛날 온천탕 위에 있던 단청한 누각도 광해군 12년(1620)에 퇴락하여 무너져 버렸다. 온천 주변을 보면 깨진 기와조각과 자갈이 우물 속에 가득 차 있고 풀뿌리가 우물가를 빙 둘러싸고 있어서 황폐하고 질척거렸다 한다. 이런 상황을 목도한 남구만은 선왕(先王)의 유풍을 생각하고 태평성세가 이미 멀어짐을 개탄하여 하루 종일 머뭇거리며 자못 마음을 가누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목욕하는 공간인 탕실은 전래의 삼탕(三湯)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탕실에 있던 온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물이 너무 뜨거워서 살을 데어 목욕할 수가 없어 구리로 만든 통으로 온천의 수맥을 끌어다가 오른쪽에는 남탕(南湯)을 만들고 왼쪽에는 북탕(北湯)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남탕, 북탕은 각각 한 구역에 우물이 두개가 있었다.

그 중 남탕은 궁전 터의 오른쪽 약간 앞에 있는데 세조대왕이 목욕하던 곳으로 남구만이 온양에 왔을 때에는 이곳만 개방되어 임시로 일반 백성들이 지붕을 만들어 목욕을 하고 있었다. 북탕은 대비와 왕비들이 목욕하던 곳이라 돌을 다듬은 정교함과 아름다움은 남탕보다 나았지만 파괴 정도는 더 심각하였다 한다.

더구나 북탕은 폐쇄되어 온천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춘분, 추분 때에 원근의 사녀(士女)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와 성황을 이루었지만 남탕 하나만 이용할 수 있어 이곳에서 남녀가 번갈아 목욕하고 있었다.

원래 하탕(下湯)으로 일반 백성들이 목욕토록 만든 외탕(外湯)은 한때 악창(惡瘡)을 앓는 환자가 와서 목욕한 다음부터 목욕을 하지 못할 정도로 더렵혀져 온천장 자체가 폐지되었다.

그러자 외탕은 가죽을 다루는 피장(皮匠)들이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더럽혀 놓아서 남구만이 온양을 찾았을 때에는 차마 냄새를 맡을 수가 없을 정도의 심한 악취로 오염되어 있었다. 이렇게 임란 후 온궁은 무너지고 온천수는 오염되어, 피폐하다고 할 정도로 철저히 파괴된 채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것이다.

임진란 이후 파괴되고 더럽혀진 온궁이 다시 복원된 것은 조선 후기 현종 초였다. 현종은 지병인 습창과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동왕 6년(1665)부터 전후 다섯 차례나 온양온천을 찾아왔다. 이때부터 온양온천은 다시 화려한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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