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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산만들기] 김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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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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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08일(금) 15:23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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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함정에 빠뜨린 요시라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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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일환(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 연구실장/대우교수) | ⓒ 온양신문 | 최근 정유재란기 이순신장군이 거둔 명량해전의 승첩을 그린 영화 ‘명량’이 날마다 신기록을 갱신하며 관람객을 모으고 있다. 가히 이순신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량해전은 조선정부가 일본의 간첩 요시라(要時羅)의 반간계에 속아 통제사 이순신을 하옥하고 고문한 뒤에 백의종군을 명하자, 실의와 분노에 빠져있던 이순신장군이 고통과 슬픔을 딛고 일어서 일본군에게 처절하게 복수한 싸움이었다.
요시라는 원래 대마도출신의 장사꾼으로 우리말을 잘하고 조선 사정에 매우 밝은 간교한 사람이었다. 임란이 발발하자 대마도주의 역왜(譯倭)가 되어 종군하였는데, 그의 장점을 높이 산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심복으로 삼아 임란 중에 조선정부와 접촉하는 창구 역할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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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영화 '명량'의 한장면 | ⓒ 온양신문 | 요시라는 경상 우병사 김응서를 상대로 조선 병영을 자주 방문하며 고니시의 뜻을 전달하고 우리의 병영사정을 탐지하였다. 그가 일본군 병영의 정보를 자주 흘리자 조선정부는 대단한 정보통을 잡을 듯이 그를 신임하고 벼슬을 내려주며 우대하였다.
그의 반간계의 절정은 정유재란을 앞둔 시점에 일어났다. 요시라는 귀국했던 가토오 기요마사(加藤淸正)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고 정유재란을 일으키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다는 정보를 경상우병사 김응서에 알렸다. 그리고 고니시와 경쟁관계에 있던 가토오를 이순신의 수군을 이용해 해상에서 요격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말에 속은 선조와 조정대신들은 이순신에게 가토오를 잡도록 명하였다. 이순신은 요시라의 간계를 의심하고 나름대로 가토오 포살을 준비하였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여의치 못한 사이에 가토오는 이미 서생포로 귀환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비화되어 이순신을 비난하는 조정여론을 들끓게 하였다. 분노한 국왕 선조도 왕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이순신을 통제사의 지위에서 파직하고 하옥시킨 후 심하게 고문하고 백의종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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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요시라를 시켜 이순신을 함정에 빠트린 고니시 유키나가 | ⓒ 온양신문 | | 이 상황은 정유재란을 앞둔 일본군이 재침시에 전쟁의 승리를 보장받으려면 불패의 수군명장인 이순신을 가장 먼저 제거해야한다는 고니시의 명에 따라 그 주구인 요시라가 만들어낸 요사스런 간계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후 이순신을 모함하던 원균이 신임 수군통제사가 되었지만 칠천량에서 대패하여 조선수군은 궤멸적 타격을 입고 전쟁은 파국적으로 흘러 국가존망이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 교활한 반간계의 성공으로 전쟁의 국면을 반전시킨 요시라의 운명은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서울을 향해 무섭게 북상하던 일본군이 직산전투에서 패배하고 남해연안으로 철수하게 되자 이듬해 요시라는 고니시의 밀명을 받고 또다시 강화회담을 명분으로 명지휘부와 접촉을 시도하기 위해 서울로 입경하였다.
칠천량의 패전으로 요시라의 진면목을 알게 된 조선정부는 요시라에 대해 극도의 원한과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또 정유재란 발발 후 일본군이 남원성을 방어하던 명나라 원정군을 격파하고 많은 수의 명군을 살해함으로써 명나라 지휘부의 분노도 사고 있었다.
명 파견군 지휘부와 빈번히 접촉하는 요시라를 의심스런 눈으로 보던 조선정부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 요시라를 잡아 중국으로 압송할 것을 명군 지휘부에 제안한다. 그 결과 요시라는 사신으로 파견되었지만 포로로 사로잡혀 북경으로 압송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 뒤에 요시라의 행방에 대해 오랫동안 조선정부는 알 수가 없었다. 몇 년 뒤에 알려진 그의 운명은 비참한 최후로 끝났다는 것이었다. 유성룡(柳成龍)의 저술 속에 남아있는 그의 운명은 다음과 같다.
왜장 고니시의 병졸 요시라가 강화하는 일로 경상우병사인 김응서의 진중에 왕래하고 있었는데, 이일 때문에 서울에 들어와 명나라 장수인 경리 양호(楊鎬)와 제독 유정(劉綎) 등 여러 사람을 만나볼 수 있었다.
1598년(선조31) 가을에 왜적들이 철수하여 남하하자 명나라 장수들은 그들이 힘껏 싸워서 적병을 물리쳤다고 황제를 속이고 상받기를 기대하는 요상심(邀賞心)이 발동하였다. 그 결과 왜장 정성(正盛 : 豊臣正成(?))을 사로잡았다고 속이고는 요시라를 왜장을 대신하게 하였다. 명나라 황제는 이 말을 믿고 몸소 나와 요시라를 국문하였다.
하지만 제독 유정 등 여러 사람들은 왜적의 죄상을 묻고 따지는 왜어역관에게 미리 뇌물을 주어 요시라가 한 모든 말을 바꾸어 통역하게 하고 황제에게 아뢰어 마치 왜장 정성(正盛)인 것처럼 꾸미도록 하였다. 마침내 국문이 끝나자 그를 끌어내어 거열형(車裂刑)에 처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돌려 보이도록 하였다.
이렇게 명나라 장수들은 모두가 왜적의 두목을 사로잡은 공으로 상을 받게 되었지만 우리 조정에서는 오랫동안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교활한 간계로 이순신을 모함하고, 파국적인 전쟁의 결과로 조선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간첩 요시라는 자신도 결국 황제를 속일 정도로 요상심에 눈이 먼 중국 장수들의 기만책에 희생물이 되어 사지가 찢기는 처참한 죽음으로 생을 끝내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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