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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산만들기] 김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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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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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16일(금) 11:40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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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이후 온양행궁의 변화된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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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일환(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 연구실장/대우교수) | ⓒ 온양신문 | 사도세자가 영조36년(1760) 7월에 질병치료를 위하여 온양행궁을 다녀간 이후 오랫동안 국왕의 온행이 끊겼다.
순조 34년(1834)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이 질병치료차 다녀가면서 남긴 ‘온정기(溫井記)’에 의하면 이때만 해도 온궁은 상당히 퇴락했지만 그런대로 건물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한다. 그러나 고종 집권 초인 1871년에 오면 온궁은 크게 변형이 와서 기존의 내정전(內政殿)과 외정전(外政殿) 등과 부속건물 중에 상당수는 이미 무너져 버렸다.
이후 그 빈터에 온천욕에 관심이 많았던 집정자 대원군에 의해 함락당(涵樂堂)과 혜파정(惠波亭)이 새로 지어졌다. 이 두 건물이 있던 위치는 정확치 않으나 정조대 그려진 ‘온양별궁전도’를 볼 때 온궁의 북쪽에 위치한 옛 구탕(舊湯)지역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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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20년대 온양온천과 신정비각 | ⓒ 온양신문 | | 이런 사실을 통해 고종초에 이르면 온궁터는 신정비를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양분되어 북쪽 지역은 함락당과 혜파정이 새로 지어져 대원군의 온천별장으로 이용되었고, 남쪽에 있던 옛 탕실 주변은 정조대왕이 민간에 온천을 개방하라고 명한 이후 백성들이 사용하는 민간 욕장이 되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민간욕장은 온궁을 지키는 탕직이들이 관리하되 그 주변에 소규모의 욕탕이 여러 개 지어져 있었다. 1923년 일본인들이 발간한 ‘조선지질조사요보(朝鮮地質調査要報)’에 의하면 조선인 욕장 구역 안에는 병탕(竝湯), 특등탕(特等湯), 특등가족탕(特等家族湯)으로 구분된 건물이 있었다. 이것을 통해 1904년 일본인들이 온궁을 탈취할 때에도 조선백성들이 사용하던 욕장은 계속 사용토록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쪽에 위치한 함락당과 혜파정 등 왕실과 관련된 공간과 시설은 자기들이 차지하고, 남쪽에 조선 민간인들이 사용하던 구역은 한동안 관행대로 조선인들이 이용하도록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이 당시 일본인들이 찍은 사진과 도면을 보면 예전에 온궁 정문이던 동문(東門)에는 큰 대로가 있고 길 가운데 신정비각(神井碑閣)이 있다. 혜파정은 온양관(溫陽館)이란 이름으로 개명되어 일본인 여관으로 바뀌었다. 거리 중앙에 있는 신정비 뒤, 구탕 자리에는 소위 내지인탕이라 하여 일본인 전용욕탕을 만들고 그 앞에 입욕권 매매소를 두었다.
조선인 욕장지역은 기존의 탕실을 중심으로 작은 집들이 여러 채가 모여 있었다. 그 서쪽 옆에는 일본육군 용산위수병원분원(龍山衛戍病院分院) 부속 욕실이 붙어 있다. 그 다음 지방법원 출장소가 위치하였다. 그 다음에 서쪽 온천천까지 공간은 미루나무가 심어진 공원이었다. 온천천 넘어 언덕 위에는 위수병원분원 건물이 있었다. 그 병원 부속 욕실이 병원과 떨어져 있는 것은 독자적으로 온천공을 파기 전까지 기존의 조선인 욕장 탕실에서 나오는 온천수를 나누어 쓰기 위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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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선총독부 지질조사소, ;조선지질조사요보’(1928). 신정관이 신축되기 바로 전 1927년 1월에 조사된 지도이다. | ⓒ 온양신문 | | 이런 사실을 종합하면 원래 온궁이 자리한 공간의 넓이는 지금 온양관광호텔 부지 전체를 아우르는 규모가 아니고 지금 면적의 절반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현 온양관광호텔전체 부지가 온궁지라고 알고 있던 우리 상식과 다른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다.
이후 이 온천단지는 1926년에 경남철도가 매입하여 ‘신정관(神井館)’으로 상호를 바꾸고 대대적으로 온천장시설을 확장했다. 이때 기존 공원까지 온천장부지가 확대되고 신정관 출입로에 위치한 신정비는 남서쪽으로 이설됐다. 그러나 기존의 혜파정은 한국 전통가옥의 풍치(風致)가 있어 보수한 후 조선식 여관으로 활용하였다.
한편 이전에 온궁의 북서쪽 끝에 있었던 영괴대는 뒤편 토지까지 온천장이 확장돼 개발됨에 따라 신정관이 지어진 이후에는 지금처럼 온천단지 중간에 나와 위치하게 됐다.
앞으로 새로 온궁을 복원한다면 이러한 점들이 철저히 고증되어야만 역사적 실체에 가까운 문화재 복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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