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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산만들기] 김일환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4년 04월 24일(목) 16:32 [(주)온양신문사]

 

해방직후 충무공동상 건립운동

↑↑ 김일환(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 연구실장 / 대우교수)

ⓒ 온양신문

민족의 수난기이던 일제시대를 지나는 동안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략을 격퇴하고 국가와 민족을 지켜낸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강고한 일제의 식민지지배로 부터 민족을 구원할 수호신으로 인식되었다.

1931년 위토보상과 현충사 중건문제가 세인들의 관심을 끌면서 충무공에 대한 추모와 그 정신을 선양하려는 한국인들의 열기가 뜨거웠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충무공을 기리는 추모사업의 핵심으로 동상건립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이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당시 동아일보(1931년 5월 14일자)는 민족적 선열위인을 위하여 비각을 짓고 동상을 세우며 혹은 기념박물관, 기념도서실을 두며 그의 출생한 집 등을 보존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국가가 남의 나라에 지배되고 있어 충무공의 동상과 그의 기념관, 그의 도서실, 그의 박물원이 세워지지 못함을 통탄하였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하에 충무공의 동상은 독립정신의 상징이 될 수 밖에 없어 조선인들이 공공연히 건립을 주장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해방이 되자 내적으로 감추었던 충무공에 대한 민족적 숭모와 선양의 열기는 뜨겁게 달아 올랐다. 그동안 망실되거나 방치된 충무공의 사당과 사적, 비석들이 속속 복구되었고 충무공의 위업을 기리는 많은 서적들이 발간되고, 그의 애국정신과 역사적 행적이 신문을 비롯한 언론에 연재되어 국민적 추모열에 부응하였다.

나아가 미군정 산하에 조선 해안경비대가 창설되자 충무공의 구국정신을 새론 건국될 나라의 해군정신으로 삼고자하는 열의가 커졌고, 1947년 2월 최초로 해군이 건조한 국산 함정을 ‘충무공정(忠武公艇)’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진수(進水)후에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를 참배하고 전승지였던 한산도일대를 일주하였다.

이러한 추모의 열기를 수렴하여 그의 동상을 건립하자는 오랜 숙원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미군정 시절부터 시작되어 1948년 4월 17일 충무공 탄생 403주기기념일과 노량해전승리 350년을 기점으로 해안경비대가 주도하여 기념사업으로 충무공동상 건립이 추진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동상설립 열기가 달아올라 그해 5월말 일제 식민지지배의 상흔과 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충무공의 위업을 우리러 모시고 조국정신을 발양한다는 목적 하에 과도정부의 통위부장, 경무부장, 문교부장, 공보부장 등과 정부 책임자를 비롯하여 역사가, 과학자, 언론기관 등 각계인사들이 모여 충무공동상을 세우는 동시에 그의 정신을 널리 계몽 선전하기 위하여 ‘동상건립기성회’를 결성하고 각 방면으로 활동을 개시하였다.

동 기성회에서는 서울의 중요지점에 대표적인 동상을 세우기 위해 2천만원의 기금을 조성하면서 약 일천만원은 모금으로 충당키로 하여 국방해안경비대원들이 4월부터 봉급의 일부를 갹출하였다.

그러나 충무공 동상건립운동과 선양사업은 미루어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계기로 다시 활발해진다. 그해 12월 충무공이 순국한 350주년이 되는 12월 19일을 앞두고 기존의 동상건립위원회를 확대한 ‘충무공기념사업회’가 거족적으로 발족한 것이다.
그 결과 동상건립과 기념관설립을 위해 동월 19일 상오 9시 서울 시공관에서 기념식을 거행하는 한편 출판물을 간행하여 충무공의 위훈을 추모하기로 하였다.

이 기념사업회의 발기인은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저명인사들이 망라되어 신익희, 김약수, 김동원, 이범석, 안호상, 유동열, 이청천, 안재홍, 김성수, 정인보, 최규동, 장리욱, 현상윤, 이병도, 방응모, 최두선, 하경덕, 윤보선씨 등이 참여하였고 이충무공사업회 취지서를 공표하였다.

이듬해 1949년 9월 21일에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추앙하기 위해서 전라남도 순천의 지역유지들의 모임인 순우회(順友會)가 중심이 되어 순천에 충무사(忠武祠)를 다시 세우고 충무공의 영정과 동상을 봉안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서울 조선호텔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여기에 이중화(李重華), 유동열(柳東悅), 박종화(朴鍾和) 등 사학계, 문학계 등의 권위자 20여명이 모여 이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후 충무공의 초상은 당대 최고의 동양화가이던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리고, 동상은 조각가 이국전(李國銓)씨가 제작하기로 의론되었다.

충무공의 영정 제작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김은호화백은 2개의 영정을 제작하였는데 하나는 사모관대와 관복을 착용한 모대좌상본(帽帶坐像本)이고 하나는 갑옷과 칼을 든 무장입상본(武裝立像本)이었다. 모대좌상본은 순천 충무사에 봉안되었고, 무장입상본은 한산도 제승당에 봉안되었다. 무장입상본은 향후 동상제작의 모본이 될 것을 의식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동상건립운동은 여의치 못했는데, 건립기금의 모금이 뜻대로 되지 못한 것이 이유인 것 같다. 그런데 1950년 3월 18일, 뜻밖에 외국인 독지가의 출현으로 서울시청 앞에 동상을 건립이 추진되었다.

독지가 월리암 드씨는 당시 32세의 젊은 실업가로서 총공사비가 약3천만원이나 들어가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동상을 건립하겠다고 정부에 자진 요청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정부로서는 충무공상 건립을 계획 중이었으므로 이를 쾌락하였다.

또한 PX를 운영하며 번 돈 5천 달러를 기부한 미국인 바이슨씨도 있었다.

↑↑ ▲최초로 서울 시청앞에 건립될 예정이던 충무공동상의 모형 - 경향신문(1950년 3월 18일)

ⓒ 온양신문

이 무렵 정부 및 요로에서는 충무공동상건립을 추진키 위하여 대한민족문화협회를 조직결성하게 되었다. 제작은 조각가 윤효중(尹孝重)씨가 담당하기로 되었고 당시 동상 모형은 사진과 같이 완성되었다.

동상건립 장소는 서울시 시청앞 로타리이며, 그해 11월말까지 건립을 완료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해 6월 갑작스런 6.25사변의 발발로 인해 최초의 충무공 동상건립운동은 좌초되었다.

이후 최초의 충무공동상은 전란 중이지만 같은 조각가 윤효중씨에 의해 1952년 군항 진해에 세워졌다. 서울의 충무공 동상은 1968년에 와서야 세종로에 조각가 김세중씨에 의해 세워지게 된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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