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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메아리] 정도전의 야망과 정치

2014년 02월 07일(금) 16:16 [(주)온양신문사]

 

↑↑ 리한구 온양신문 대표이사

ⓒ 온양신문

청주에서 배를 타고 단양 쪽으로 가면 월악산 아래쪽 호수 중앙지점에 외롭게 자리한 정자가 있다. 이 정자는 이씨 조선 건국공신 ‘정도전’이 수학(修學)과 수신하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도대체 정도전은 누구인가? 기록을 살펴보면 대략 이해가 간다. 정도전(鄭道傳)은 1342-1389년,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에 역사의 중심에서 새 왕조를 설계한 인물이며 본래 봉화지역의 향리였다고 한다. 정도전은 22살 때 충주사록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고, 공민왕의 유학 육성 사업에 참여해 성균관 교관에 임명됐다.

이 때 정몽주, 이승인이 함께 참여했으나 공민왕의 급사는 정도전에게 시련의 시작이었다. 그는 백성의 생활을 직접 목격하고 위민의식(爲民意識)을 키웠다. 이성계의 추천으로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 됐으며, 이성계의 군대를 보고 이성계가 자신의 포부를 실현해 줄 것으로 확신했다. 정도전은 평소 취중에 “한나라 고조가 장자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이용했다”라고 말했다.

즉, 한고조를 이성계에 빗댄 것인데, 그렇다면 결국 자신이 이성계를 이용했다는 말이 된다. 한 대장부의 거대한 야망을 느끼게 한다. 한편으로는 정도전, 조준과 같이 급진적 개혁세력도 있었다고 한다.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되면서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궤멸하였다.

정도전은 경복궁 및 도성의 자리를 정하는 새 왕조의 설계자 역할을 했다. 정몽주가 피살된 후 이성계 추대세력이 가속화 되면서 1392년 5백년 고려왕조는 역사 속에서 종말을 고했고, 새로운 조선왕조가 들어섰다.

정도전의 활약은 대단했다. 천도하는 과정을 비롯해 현재의 경복궁 및 도성자리를 정했고 수도 건설의 총 책임자로 임무를 수행했다. 성문의 이름과 한성부의 5부 52방 이름도 지었다고 한다. 요동 진출문제와 관련해 정도전은 태조에게 외이(外夷: 중화질서 속에서 중국 이외의 민족지칭 개념)로서 중원에 들어가 왕이 됐던 사례가 있음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는 중국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도 중원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표현이었다.

또한 정도전은 첫째 부인 한씨 소생보다 둘째 부인 강씨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하였다. 조선 건국이 가속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던 이방원 등 첫째 부인 한씨 소생들의 불만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더구나 사병 혁파 문제로 새로 갈등을 보이던 중 1398년(태조7년) 제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고 정도전은 이방원이 이끄는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 후 조선조 내내 신원 되지 않다가 고종 때 관직이 회복되었다. 고종 때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정도전의 공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정도전이 죽게 된 동기는 둘로 본다. 첫 번째는 중국 고사 장자방을 자처하며 “한나라 고조가 장자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이용하였다.”라고 말한 것이고, 두 번째가 세자 책봉에 둘째 부인 강씨 소생인 방석을 책봉하도록 한 것이다. 방석이 왕이 됐을 때 방석으로 하여금 중월 침략을 단행하여 자기 포부를 실현하고자 하는 야망 때문이다.

말과 처신은 신중해야 한다. 마치 ‘북쪽 참모총장이었던 이용호가 불평 섞인 어조로 김정일은 몰라서 완화 정책을 안했나?’라고 한 말을 정보 책임자가 밀고해 삭탈관직 당한 것과 같다. 한번 뱉은 말은 쓸어 담을 수 없듯이 잘못하면 죽엄을 당하는 예가 허다하다.

요즘 민주주의라 하여 정치인들이 할말 못 할말을 함부로 하고 있으니 유감이다. 늙은 사람의 기우일까?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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