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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산만들기] 김기승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3년 11월 25일(월) 16:58 [(주)온양신문사]

 

신창이 낳은 명재상 포저 조익의 기록정신

↑↑ 김기승(순천향대 스마터아카데미원장·국제문화학과 교수)

ⓒ 온양신문

포저(浦渚) 조익(趙翼, 1579~1655)은 고불 맹사성과 함께 아산이 배출한 명재상이다. 조선시대에 그를 제향하는 도산서원이 신창에 세워졌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 조치로 훼파되었으며, 남아있던 건물도 예산의 신양리의 도산사로 옮겨져 아산에서는 도산서원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신창면의 신창초등학교 앞에 그와 관련된 유적을 찾을 수 있다. 신창초등학교 앞에는 지방 관리들의 선정을 기리는 공덕비가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송덕비가 포저 조익의 공덕비이다. 그것은 충청도 지역 대동법을 시행하여 지역 주민들의 조세 부담을 크게 덜어준 포저 조익의 선정을 칭송하는 기념물이다. 조익은 학식과 덕망, 그리고 관리로 지낼 때 선정을 베풀어 정승에까지 이르렀다.

조익은 1579년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1594년 16세에 신창에 사는 군수 현덕량(玄德良)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면서 신창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24세인 1602년 문과 급제하였는데, 광해군 대 북인들의 정치에 실망하여 1613년 관직을 버리고 선영이 있는 광주로 내려가 처사로 지냈다. 40세가 된 1618년 생활이 어렵게 되자 가솔을 이끌고 처가가 있는 신창으로 이사해 살았다. 여기서 희암(希庵) 현덕승(玄德升), 잠야 박지계(朴知誡), 만회(晩悔) 권득기(權得己)와 사귀면서 학문을 강론하고 덕행을 닦았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신창을 떠나 다시 벼슬길에 올랐는데 이 때 그의 나이가 45세였다. 이조좌랑이 되어 새로운 정국의 인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새로운 정국인 만큼 인사 담당자로는 당대 최고의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중론에 따라 조익이 이조좌랑으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조익은 인조반정으로 서인 세력들 사이에서 서인 중심의 새로운 집권체제를 수립하는데 필요한 인재 선발의 실무를 담당할 만한 적임자로 손꼽혔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조익이 1618년부터 1623년까지 5년간 신창에서 보낸 기간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만한 능력과 덕망을 갖추게 되는 시기였다고 하겠다.

이후 조익은 승지, 이조참판, 대사헌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636년 병자호란 시에는 의병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59세가 된 1637년 신창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 후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계속 사양하다가 70세가 되어 다시 벼슬길에 올라 1648년 대사헌, 1649년 예조판서가 되었다. 이 해 인조가 승하한 후 우의정에 임명되어 인조 장례를 주관했으며, 효종 원년인 1650년 좌의정이 되었다. 1655년 향년 77세로 별세했으며, 묘소는 충남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다.

신창과 주변 지역 인사들의 발의로 도산서원을 짓고 제향하였다.

조익은 학식과 덕망에서 출중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한 존재라고 여겼다. 그는 잘못을 뒤늦게야 깨닫고 후회하면서 살아가고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였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질책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 잘못을 고치고,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기, 혼자 있을 때 삼가기, 용모와 의관을 단정하게 하기, 말조심하기, 계획한 일 실천하기, 사리사욕을 배제하고 의리를 실천하기, 계속 독서하기 등 매일 실천해야 할 10가지를 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스스로의 다짐을 제대로 실천했는지를 스스로 평가하는 ‘성기록(省己錄)’을 썼을 뿐만아니라 ‘탁마일록(琢磨日錄)’이라 하여 스스로 수양하는 내용을 매일 기록하였다. 그는 ‘공서일록(攻書日錄)’이라는 독서록도 썼다. 그는 32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아는 것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면서 매일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이나 자신의 생각을 일기처럼 썼던 것이다.

스스로에게 엄정했다는 것은 48세 쓴 자송록(自訟錄)이라는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전사관(典祀官)이 되어 장마 그치기를 기원하는 기청제(祈晴祭) 책임을 맡았는데, 관례에 따라 제수 고기들을 제관과 하인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를 자신의 일가친척과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시간이 지난 뒤 이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공물을 사적으로 유용한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를 질책하는 자송록을 썼던 것이다.

몸과 마음이 혼란하거나 지적으로 부족함을 느낄 때 사람들은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조익이 학식과 덕망을 갖추면서 명재상으로 선정을 베풀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잘못을 고치고 부족함을 채우려는 끊임없는 노력 덕분일 것이다.

자신의 노력을 매일 매일의 기록으로 남긴 정신은 아산의 인물 이순신의 ‘난중일기’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오늘의 아산시민들이 이러한 선인들의 기록정신을 살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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