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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산만들기] 김기승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3년 08월 12일(월) 14:24 [(주)온양신문사]

 

다섯 명의 자손들을 독립운동가로 키운 박안라 여사

↑↑ 김기승(순천향대 스마터아카데미원장/국제문화학과 교수)

ⓒ 온양신문

아산에는 국가로부터 독립운동 포상을 받은 5명의 독립운동가를 3대에 걸쳐 연이어 배출한 독립운동의 명가가 있다. 이규풍과 이규갑 형제는 각각 애국장과 독립장을 받았으며, 이규갑의 부인 이애라는 독립장을, 이규풍의 장남 이민호는 애족장을, 손자 이길영은 애족장을 받았다.

일제의 침략과 지배라는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가족 3대가 대대손손 계속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삶을 사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요소는 무엇인가?

그들은 아산이 배출한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후손이었다. 16세기말 왜군을 물리쳤던 이순신 장군의 구국정신이 4세기가 지난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그의 후손에게서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이규풍 가문은 이순신의 후손으로서 4대에 걸쳐 무과 급제자를 배출한 무반 명가였다. 증조부 이사수, 조부 이조빈, 부 이도희는 물론 이규풍 자신도 무과에 급제하였다. 조선 후기에 충무공의 후손들은 충무공의 뒤를 이어 수군 지도자가 되는 경우도 많아 충무공이 많았던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후손들도 여러 명이 배출되었다.

조선 정부에서도 충무공의 후손들을 무관으로 발탁하여 중책을 맡겼다. 이로써 조선 시대에 충무공 후손들 사이에서는 나라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강하게 형성되었다. 따라서 구한말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충무공 후손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한 독립운동에 헌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충무공의 12대손으로 만주 지역의 독립군 지도자로 활동했던 이세영은 충무공을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의병전쟁에 참여했다고 말하였다. 또 일제 강점기 충무공 후손들은 ‘왜적에게서 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 장군이 너의 조상’이라는 이야기를 못이 박히게 들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그런데 이규풍 가문에서 충무공의 구국정신이 다른 집보다 굳건하게 계승된 데에는 충무공 후손의 가문에 시집 온 여성들, 즉 며느리나 부인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지대하였다. 이 여성들은 충무공 가문의 식구가 되어 온갖 역경을 이겨내면서 지아비나 아들의 독립운동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가산을 탕진하는 일이었으며, 집안의 일을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었다. 집안의 남자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선택을 했을 때, 집안의 살림살이와 자식 교육은 온전히 여성들의 몫이었다. 그것도 먹을거리조차 변변치 않은 지독한 가난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행여 남자들이 옥고라도 치르게 되면 옥바라지도 여성의 몫이 되었다. 독립운동이란 집안 여성들의 희생적 결단 없이는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 점에서 이규풍 가문의 여성들의 선택과 활동에 경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이규풍과 이규갑 형제의 어머니는 박안라 여사인데, 이 분이 3대 5명의 독립운동가를 키운 큰 어른이다. 본관은 밀양이며 황해도 배천 출신 양반 가문의 딸로 아산의 이도희에게 시집을 오게 되었다.

이도희는 충무공 이순신의 9대손인데, 61세인 1902년에 작고하였다. 이후 집안은 혼자 남은 박안라 여사가 이끌어 갔다. 1905년 이후 나라가 멸망해가는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집안을 이끄는 책임을 온전히 떠맡게 된 것이다. 박안라 여사는 1905년 이후 국권이 실추되자 이규풍과 이규갑 두 아들에게 매국노 처단 상소를 올리도록 하고 의병 전쟁에 참여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장남 이규풍은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령으로 가서 안중근 등과 함께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차남 이규갑은 홍주 의병에 참여하였다. 박안라 여사는 두 아들이 집안일을 걱정할 때마다 따끔하게 훈계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도록 하였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국외에 있던 이규갑이 어머니의 안부가 걱정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에 큰아들을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네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만약 귀신이라면 그 자리에 있어도 좋지만 사람일진대는 냉큼 물러가라.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죽어서 돌아온다면 환영하겠지만, 살아서 에미를 만나러 오는 법이 어디 있느냐!”

이 말을 들은 이규풍은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그 길로 다시 국외로 가서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둘째 아들 이규갑은 국망 이후 국내에 남아 있다가 1919년 3.1운동 후 임시 정부를 조직하기 위한 비밀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중에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가 어머니로부터 다음과 같은 꾸중을 들었다.

“내가 너 같은 못난 자식을 둔 줄 몰랐었구나! 지금이 어느 때라고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 내 걱정을 하고 사람을 보냈느냐?”

이규갑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어머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대의 앞에 몸 둘 바를 몰랐다.”고 했다. 이후 그는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에 있는 충국순의비(왼쪽)와 박안라 여사 문중 무덤, 충국순의비에는 박안라 여사와 며느리 이애라 여사를 비롯하여 덕수이씨 가문의 독립운동 공적 내용이 적혀있다.

ⓒ 온양신문

이렇듯 이규풍과 이규갑 형제의 독립운동은 어머니 박안라 여사의 애국적 가르침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두 형제의 부인인 오세라 여사와 이애라 여사도 시어머니 가르침을 따라 지아비와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리고 그 결과 박안라 여사의 손자 이민호와 증손자 이길영 또한 독립운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박안라 여사에 의해 3대 5명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된 데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후손이라는 자긍심과 책임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가풍의 가치를 지키려는 여성들의 숭고한 결단과 희생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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